먹판화의 멋에 빠지면서 그가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불교 문화이다. 수도승의 수도 행각과 함께 추만호 시인의 「번뇌의 시」를 새겨 넣은 <번뇌의 시>, 화엄사에서 발행하는 『화엄』지 연재했던 <선재동자 구도기> 시리즈는 홍선웅 불교 판화의 대표작들이다. 이들 작품들은 그림과 함께 불경이 같이 새겨져 있는데, 그 글자체는 옛날 판본체를 그 나름대로 다시 만들어 새긴 것으로 탁본이 같이 곁들어졌다.

우리 선대 각수들의 정신과, 우리나라의 판각 문화에 대해 연구하면서 시작한 판각 기행은 그가 최근에 큰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은 진경판화를 만들어냈다. 그전부터 답사를 다니면서 간간이 스케치는 하고 있었지만 작년 한해 월간 『우리교육』에 연재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진경판화를 시작했다.

“작년 한해를 전부 거기에만 쏟아 부었다고 할 수 있지. 그리고 지금도 계속 하고 싶고. 조선 시대에 정치, 문화, 사회, 경제적으로 모든 것이 중국적인 것에 치중되어 있었잖아. 그러다 보니 모든 그림도 중국적이었어. 조선 후기 문인이자 화가인 김창업은 우리 조선적인 문화를 창출하기 위해서 애썼고, 그 제자가 시에 있어서는 이병현, 그림에 있어서는 겸재 정선이라고 할 수 있지. 정선은 금강산을 비롯해서 관동팔경이니 뭐니 해서 안 가본 데가 없다고, 해인사를 비롯해 도산선원 등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우리 조선적인 풍경을 그린 사람이라고. 그래서 정선이 대단하지”

천년을 내다본 팔만대장경판과 규장각 판에서 발견한 고판화의 참뜻, 천궁을 다려 간 먹물에서 배어 나온 음기서린 먹빛, 경(經)과 함께 새겨진 불교판화, 그리고 조선적인 풍경을 담은 진경판화에 이르기까지 그가 칼을 잡고 각을 새기는 정신적 토대는 무엇일까?

“각수로서의 철학, 물론 불교적 배경도 있지만 불운한 고려의 국운을 부흥시키고 독립시켜내기 위한 고려인들의 정신이 그 시대 각 속에 살아 있다고 봐. 그때부터 민족의 자주 정신, 독립 정신들이 각 속에 살아 숨쉬었다는 거지, 그만큼 철저하게 농축됐고, 철저하게 과학적이고, 장인적인 거지. 750년이나 된 우리나라의 판각문화 실체들이 아직도 건재하게 있는데. 다른 나라에는 없어요. 그만큼 무서운 장인적 정신을 가지고 있었던 거지. 민족의 독립 정신을 고취시키고 자주 정신을 부각시켰던 팔만대장경, 우리의 주체적인 문화를 강조했던 겸재의 진경산수화, 민중의 삶, 서민의 삶을 정신적 토대로 깔고 있었던 실학 정신과 실학 사상. 이 큰 고리에서 시작된 것이지. 물론 이후에 동학에서부터 광주로까지 가야 되겠지만. 우리의 과거사를 보면서 내가 찾고자 하는 부분들이 거기에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