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가 남궁 산. 이것이 1970년대 오윤에서 비롯된 민중 판화의 대를 잇던 그가 돌연 '생명'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십여 년간 꽃과 나무 그리고 새를 그려온 이유라면 이유다.
"저는 1980년대와 지금 판화의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대중과 작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을 고민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죠"

실제로 그는 지난 1995년 이후 대중과 친밀한 미술을 위해 장서표 운동을 벌인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엽서나 달력 등을 제작하여 다수가 소장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일에 힘을 기울이는 것에서도 그가 대중과 함께 호흡하고 싶어하는 작가임을 알 수 있다.
"장서표에 대한 인식이 '남의 도장 파는 일' 같아서인지 작가들이 잘 하지 않으려고 해요. 나야 뭐, 도장 팔 일이 있으면 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는 장서표가 판화의 한 장르로만 머무르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기왕 장서표가 '실용성'을 위한 것이라면 출판사와 연계하여 좀 더 대중적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그림은 쉽다. 그래서 유홍준 교수가 그의 그림을 일컬어 '조선 화투짝 같다'는 표현을 썼던가? 하여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미술 작품이라 칭하기에는 그의 판화는 뭔가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어려운 그림보다는 쉬운 그림이 사람을 잡아끄는 법. 빨간 바탕에 노란 핵을 가진 어떤 모양의 꽃을 보고 사람들은 금방 그것이 남궁 산의 '동백꽃'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판화가 남궁 산이 대중을 잡아끄는 힘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사물을 단순하게 보는 것을 좋아했다는 그는 일부 사람들이 그림에 회화성이 없고, 너무 도안화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에 대해 이렇게 반박한다.
"판화에서 회화성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고 생각해요. 회화와 판화는 그 역사성부터가 다른데 말입니다. 판화는 출판, 인쇄와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판화마다 고유의 언어가 있습니다"라며 잘라 말한다.
자연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기에 사람들은 그를 시골 촌놈인 줄 알지만 그는 서울토박이다.

"그 당시의 서울 역시 시골이었어요. 어릴 적 기억은 시골 놈이든 서울 놈이든 다 같은 것 아닌가요? 자연을 벗삼아 논다는 점에서 말이죠. 솔직히 마땅히 가지고 놀 것도 없을 때였잖아요"
논과 밭뿐이었던 지역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도시가 되어버린 일산에 작업실을 틀고 있는 그는 어디에서든 서울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지 못할 것 같다. 내면에 자연을 담고 사는 사람 남궁산. 그가 새긴 '생명, 그 나무에 새긴 노래' 60여 점의 작품들은 서울의 한복판 인사동 학고제에서 9월 16일(일)까지 전시된다.

최은경 기자 ckpress@artnstud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