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는 즐거움 가운데 무시할 수 없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은밀함이다. 소설은 결국 작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독자들에 의해 작가 자신의 삶의 이력으로 읽히고 만다. 그런 뜻에서라면, 부인할 필요가 없다. 이 소설은 자전적이다.

이를테면, 독자가 작가 자신의 이야기로 읽고 싶어 한다면, 꼭 내 이야기만은 아니지만 뭐 그냥 허락해 주겠다는 그런 말이다. 재미있는 건 다른 작가들의 자전적 소설의 후기에도 대개는 이 비슷한 말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건 내 이야기요, 하기가 아무래도 쑥스러워서일 것이다. 그리고 실상 작가 자신의 체험이 밑바닥에 있다 할지라도 막상 소설 형식으로 쓰기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수많은 허구가 덧붙여지는 건 사실이다. 그것이 소설의 운명이다. 그러니 위의 말이 공연한 위장만도 아닐 것이다.
이 소설은 조금 독특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청탁을 해온 편집자에게 이미 밝힌 바대로, 나는 이 글의 필자로 적합하지 않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소설가인 화자 ‘나’가 어느 출판사의 기획 시리즈인 <작가 탐구>의 필자로 요청되어 박부길이라는 다른 한 작가를 취재하는 형식으로 돼 있다. 화자는 박부길이라는 작가의 작품들과 그와 가진 여러 차례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작가의 삶이 그의 문학에 어떻게 반영되는가’를 꼼꼼하게 추적한다.
결국 이 소설 전체가 박부길이라는 작가의 삶과 문학에 대한 취재 기록이며, 따라서 이 소설 속의 화자는 흔히 ‘1인칭 관찰자 시점’이라고 부르는 역할로서 소설을 풀어가는 하나의 보조 인물에 불과하고 실제 주인공은 취재 대상인 박부길이라는 작가이다.
이 박부길은 당연히 이승우의 분신일 터인데, 이승우는 짐짓 다른 작가를 살펴보는 척 객관적인 거리를 두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내가 읽은 그의 소설들과 그에 대한 기사들과 두 번의 인터뷰 내용을 두루 섭렵해 가면서 (중략) 작가의 의식 안쪽에 단단하게 붙어 그의 삶과 문학을 지배해 온 질기고 억센 몇 개의 큰 흉터가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그렇다, 작가는 흉터를 지니고 사는 이들이며, 항상 그 흉터가 소설의 시발점이 된다. 소설은 그래서 고백의 미학이다. 이 소설 또한 박부길이라는 가공의 인물을 통하여 작가 이승우가 자신의 삶과 문학을 지배해 온 흉터를 고해하는 기록인 것이다.
소설에 그려지는 박부길의 유년기는 초라하고 고독하고 황량하다. 어두운 유년기를 다룬 소설들에 흔히 등장하는 상황들이 여기에도 역시 나타난다.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 마을에 떠도는 이상한 소문들, 까닭을 알 수 없는 몇 가지 엄한 계율, 배척과 소외, 탈출의 열망, 그런 것들이다. 이러한 유년기란 종종 한 사람의 정신세계를 운명적인 예감으로 채워 버리곤 한다. 닥쳐오는 모든 것이 불가사의하게 예정된 필연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그러니까 지독한 절망감에 빠져 있거나 알 수 없는 무력감에 젖어 있는 그런 세월에 불쑥 운명적인 예감 하나를 건져 올리며 조바심 가득 어떤 날을 기다리고는 한다.
나 또한 이십 대 초반에 ‘7년 후에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라는 근거도 없는 예감에 온통 휩싸였던 때가 있었다. 7년이 어떤 계산으로 튀어나온 것인지, 무슨 일이란 대체 어떤 종류의 일인지도 모른 채 가슴을 온통 뜨거운 예감으로 채우고 다닌 적이 있었다. 삶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하며 온몸으로 촉수를 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렇듯 운명적인 예감이란 게 불쑥 찾아든다.
소설에 그려지는 가장 뜨거운 삽화인 ‘나이 많은 여자와의 사랑’이 바로 그런 예감 중의 하나일 것이다. 박부길은 일찍부터 나이 많은 여자와의 사랑을 예감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예감이라는 단어에 대한 설명이 아주 인상적이다. 이 설명 자체가 박부길을 지배하고 있는 정신세계에 대한 훌륭한 묘사라고 할 만하다.

모든 예감에 비극의 냄새가 묻어 있다는 것을 나는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숙명의 울림 때문이다. 예감은 열람이 금지된 숙명의 세계를 부지불식간에 엿보고 만 자의 머리 위에 그 부정에 대한 징벌로 떨어지는 벼락, 그 벼락 같은 천재지변의 떨림이다.

박부길은 어느 날부턴가 자신이 언젠가는 자기보다 나이 많은 여자와 사랑을 하게 되리라는 예감에 사로잡힌다. 전혀 근거 없는 예감이었지만 그 예감은 굵은 밧줄처럼 박부길의 정신을 옭아맨다. 그리고 마침내, 박부길은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어린 나이에 어느 교회의 지도교사인 여자를 만나고 사랑을 시작한다.
이 사랑은 오랫동안 예감에 시달려 온 만큼이나 처음과 끝이 모두 극적이다. 박부길은 통금에 쫓겨 불쑥 들어간 한 교회에서 여자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듣는다. 그 선율은 “깊고 그윽했고 탄력이 있었”으며, 놀랍게 안락했다. 운명의 서곡이었다.
박부길은 이 여자로 인해 신학교 입학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하게 되며 생의 목표를 가지게 되는 것이지만, 결국엔 이 여자로 인해 그의 생애 중 가장 깊은 절망의 나락에 빠지고 만다. 그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이었다.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한 법인데, 박부길은 그 기술을 습득할 만큼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했던 것이다. 여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나 관대함은 없이 그저 사랑의 감정이 주는 맹목적인 열정에 취해 있기만 했다. 자기만큼 절대적이고 순수하고 모든 것을 다 바쳐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고 스스로는 생각했지만, 여자는 남자의 거친 사랑 앞에서 수많은 상처를 받는다. 그러다가 결국엔 떠나고 만다.
박부길의 내면은 여자를 알기 전보다 더 심하게 황폐해진다. 또 한번의 전락이었다. 하지만 이 절망은 글쓰기로 이어진다. 많은 작가들이 그러하듯 자신의 가장 아픈 상처로부터 꿈틀꿈틀 글쓰기의 욕망이 불거져 나왔던 것이다.
이 때의 글쓰기란 도피이며 자학이며 고해성사이다. 그러면서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 세상에 자신의 몫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어서 그저 충동적으로 매달리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매달리는 가운데 구원이 온다. 그러면 한 작가가 탄생하는 것이다.
결국 이 소설 <생의 이면>은 한 작가의 탄생 비화이다. 어떤 상처와 죄의식과 은폐된 욕망이 맞물려 한 외로운 사내를 글쓰기로 이끌어 갔는가에 대한 치밀한 추적의 기록이다.
작가 이승우는 상당히 분석적인 기질의 소유자일 거라는 게 내 느낌이다. 그것은 우선 이 소설의 형식에서 받은 느낌이다. 이 소설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추적하여 그 삶을 재구성하는 형식으로 돼 있다. 이 소설의 화자는 작가와의 인터뷰, 작가의 여러 소설과 에세이들, 그리고 자신의 견해를 적절히 배치해가며 조각그림 맞추듯 한 사람의 삶을 복원해간다.
이러한 형식은 자칫 산만해지거나 지리해질 수 있는 결코 만만치 않은 형식인데, 분석적 기질이 있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주제의 밀도를 높이면서 스스로도 글쓰기의 재미를 즐길 수 있는 형식이기도 하다.
이 작가의 분석적인 기질은 소설 안에서도 끊임없이 드러난다. 이승우는 하나의 상황이나 개념을 이야기할 때마다 다소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세하게 정의를 내리고 있다. 아래의 구절은 그 한 예이다.
“너무나 뜻밖이어서 그 사실이 잘 믿어지지 않았다”라는 것이 이 바로 윗 문장인데, 이렇게만 끝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나 분석적인 이 작가는 거기에 만족치 않고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야말로 감격의 조건이다. 믿어지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기대하지 않았던 일의 뜻밖의 실현은 사람을 감격의 회오리로 몰아붙인다. 감격의 요인은 실현된 일의 내용(크거나 중요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실현된 형식에 있다. 그 갑작스러움과 의외성… 그는 진정으로 감격했다.

소설의 많은 부분이 이런 식이다. 정황의 의미를 일목요연하게 규정하고, 그 각각에 내포된 의미를 분석적으로 개념 정의하는 일에 이승우는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한다. 이 작가의 다른 소설들도 대개 이처럼 분석적이며 논증적이다. 어떤 독자는 이러한 글쓰기 스타일에 뻑뻑해하며 부담을 가질 것이지만, 또 어떤 독자는 이 빈틈없는 서술에 묵직한 공감을 느끼며 빠져들 것이다.
이 소설은 분석적이면서 한편 비장하다. 문장 하나하나가 평론적이라고 할 만큼 분석적이면서도 거기에 담긴 정서는 건조하지 않고 오히려 은은한 비장감으로 가득 차 있다. 그 비장감이야말로 이 작가의 진지한 통찰의 정신이 만들어 낸 독특한 감칠맛이다. 이승우는 경건할 정도로 진지하다. 그건 정말 흔치 않은 미덕이다.
나는 진지한 작가만 만나면 무조건 반갑다. 솔직히 말하면 이 작가의 분석적인 기질은 나와 조금 비슷하기도 하다. 때문에 이 작가의 흔치 않은 미덕이 90년대의 날렵한 정서를 이겨낼 수 있을지 내가 공연한 걱정을 해 보는 것은, 그것이 바로 내 고민이기도 해서이다. 이승우의 진지함이 이 가볍고 소란스러운 90년대를 이겨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