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대사가 아무런 지문도 없이 이어지지만, 이 속에는 두 남녀의 성격과 결혼 생활의 분위기까지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상당한 순발력이며 고도의 생생한 묘사이다.
4장에서 몇 차례 튀어나오는 아내 姸의 대사도 감칠맛이 있다.

“선생님, 선생님 - 이 귀염성스럽게 생긴 姸이가 엊저녁에 무엇을 했는지 알아내면 용하지”
“여보시오, 여보시오, 이 姸이가 저 이층 바른편에서부터 둘째 S씨의 사무실 안에서 지금 무엇을 하고 나왔는지 알아맞히면 용하지”

소설 안에서 이 구절은 아내의 대사가 아니다. 굳이 따지면 화자(즉 이상 자신)가 아내의 부정을 연상하며 떠올린, 이를테면 아내의 내숭을 말로 옮겨 본 화자 자신의 독백이 되겠는데, 이 절름발이 부부와 S라는 사람의 묘한 삼각관계를 잘 드러내는 절묘한 수법이다.
이 한 구절에는 아내의 당당한 내숭과 남편의 덤덤해하는 듯하면서도 절망하는 태도들이 매우 실감 있게 담겨 있다. 심드렁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불쑥 끼여드는 이 구절들은 마치 채플린 영화에서와 같은 느낌을 만들어 낸다. 이를테면 독자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기묘하게 일그러져 있는 화자의 심리와 더불어 그 얼굴 표정까지 눈에 본 듯 느끼게 된다. 탁월한 페이소스의 연출이다.

일단 이 정도 짚어보고 <봉별기>로 넘어가 보자.
이 소설에는 작가가 요양차 백천 온천에 내려갔다가 알게 되었던 술집 작부 금홍이가 나온다. 알다시피 금홍은 이상의 첫 번째 아내가 되어 ‘제비’라는 다방과 ‘쓰르’라는 카페를 차리게 되고, 바람이 나서 몇 차례 ‘왕복엽서’ 같은 가출을 되풀이 하다가 결국엔 이상과 헤어지고 만다. <봉별기>는 그 만남에서 이별까지의 기록이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스물 세 살이오 - 3월이오 - 각혈이다.’
금홍은 열여섯에 머리를 얹고 다음 해에 아이를 낳았으나 그 아이가 돌만에 죽어 버린 기박한 과거를 가지고 있는 여자이다. 그 금홍은 첫눈에 이상에게 정을 준 이후로 몸을 팔아가며 용돈을 대어주는 등 여리고 천진하기만 여자이기도 하다. 이 여자 금홍이 서울로 돌아가는 이상과 작별하는 장면에서 나는 다시 채플린의 <시티 라이프>를 떠올린다.

“정거장에서 나는 금홍이에게 10원 지폐 한 장을 쥐어 주었다. 금홍이는 이것으로 전당잡힌 시계를 찾겠다고 그러면서 울었다.”

10원 지폐란 무엇인가? 그것은 금홍이 몸을 팔아 엊그제 이상에게 건네 준 용돈이다. 거기에 붙여 덤덤하게 이어지는 ‘전당잡힌 시계’니 ‘그러면서 울었다’는 서술은 단순하면서도 참으로 애틋한 절제의 묘사이다.
이제는 <실화>에서와 유사한 (그러나 풍경은 전혀 다른) 두 남녀의 대화 한 장면을 보자. 금홍이 어느 남자를 따라 가출했다가 다시 돌아온 후에 이 부부는 서로 한바탕 울고 나서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그렇지만 너무 늦었다. 그만해두 두달지간이나 되지 않니? 헤어지자, 응?”
“그럼 난 어떻게 되우, 응?”
“마땅헌데 있거든 가거라, 응?”
“당신두 그럼 장가 가나, 응?”

<실화>에서처럼 짧고 장난 같은 대사로 두 사람의 내면을 드러내는 수법이 가히 일품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은 이렇다. 그렇게 두 번째로 떠났다가 그러나 다시 돌아온 금홍, 엽서를 받아들 듯 속절없이 금홍을 받아들이는 이상, 이어서 두 사람은 술상을 준비해 주고받으며 육자배기 한 마디씩을 뽑는 것인데,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굽이 뜨내기 세상 그늘진 심정에 불질러 버려라 운운”
자, 이상은 여전히 매력으로 남아 있는가?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물론 우리는 이상의 작품에서 사회의식의 결여를 짚어낼 수 있고 지나치게 사적이고 영탄적이라는 아쉬움을 말할 수도 있다. 그 점,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이상은 그 자신의 삶에서나 문학적으로나 하나의 ‘비극적 결말’인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의 개성이나 문학적 미학은 이천 년대의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상은 계속 읽힐 만한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