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시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작품은 동학농민운동을 주제로 한 신동엽의 서사시 「금강」을 내용으로 한 <금강화곡> 연작 판화다. 이 작품은 아직도 계속 진행중인 작품으로 이번 전시에는 6편까지 선보일 예정이다. “「금강」은 80년대 우리들을 운동의 전선으로 많이 뛰어들게 한 그 작품이지. 언제가 꼭 한번 작품으로 표현해야겠다고 맘먹고 있었는데, 시작을 못하다가 결국 이제야 하게 된 거지. 사실 이번 작품하면서 예전에 민예총 국제부에서 같이 활동하던 호근이 형 생각 많이 났어. 호근이 형도 이 작품에 애착을 많이 갖고 오페라도 만들었잖아. 시나리오 쓴 것 같이 검토해 보기도 하고 그랬거든” 아무래도 이런 이유에서 그가 이 작품에 특별히 애착을 가지는지도 모르겠다.

이래저래 전시를 앞두고 설레이기도 하고 지난 세월이 스쳐지나가면서 착잡하기도 하나보다. “이건 너무 예쁜 것 아닌가, 이건 불교 색이 너무 짙지?” 아무래도 민중판화운동의 선두라면 선두였던 그는 아직도 통일의 정서가 짙게 배인 작품들을 기대하고 있을 사람들에게 곱기만 한, 고결해 보기만 작품들을 내놓기가 괜시리 미안하기도 한가 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참뜻을 읽을 수 있는 방법 하나를 제시해줬다.

“우리 선조와 우리 민족의 고판화와 옛 각수들의 정신들과 내 판화가 어떻게 연계되고 있는지를 잘 살펴보면 현대 판화와의 차이점을 알아낼 수 있어서 좋지. 내 판고를 봐서 알겠지만 모두 수공업적인 것이라 프레스기로 찍어내는 현대 판화와 비해 너무 전 근대적인 게 아니냐고 묻을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아. 먹판화는 손맛이 나고, 그러면서도 현대 판화에 뒤떨어지지 않는 고귀한 색깔도 낼 수 있지. 먹판화는 절대 구태의연하지 않아. 오히려 더 현대적 일수 있지. 기계로 완벽하게 인쇄하듯이 찍어내는 것보다 더 고귀하고 가치 있는 문화로서 전달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요즘 그동안 『인천민족예술』에 「홍선웅의 판각기행」으로 연재했던 글과 월간 『우리교육』에 「진경판화기행」으로 연재했던 글을 모으고, 다듬고, 새 원고들을 추가해 『홍선웅의 판각기행』(미술문화)라는 책 발간을 준비중이다. 첫 개인전에, 책 펴내는 것까지 차곡차곡 쌓아놓은 작업을 한꺼번에 토해내느라 요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의 시간을 너무 많이 앗은 것 같아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기자의 맘이 편치 않았다. 교직을 떠난 지 10년이 가까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그는 너그럽고, 은혜로운 친절한 옛 스승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서울로 되돌아오는 기자가 버스에 오르는 것을 끝내 보지 못하고 가는 것이 안타까운지 연거푸 먼저 들어가라는 기자의 말에 못내 아쉬워하면서 발길을 옮기는 그의 배려깊은 마음에서 다시 한번 읽을 수 있었다. 후대들을 배려한 판각문화에 그가 심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오늘도 판화가 홍선웅은 천년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칼을 들고 한각 한각 목판에 새겨나갈 것이다. 깊은 각 속에 우리 민족의 혼과 정서를 담아, 천년 후에도 우리의 후대들이 고귀한 민족 정신을 이어 받을 수 있도록.

* 이 글은 월간 『민족예술』 2001년 11월호 [민족예술이 만난 사람]에 실린 인터뷰 기사입니다.
민예총 홈페이지(www.kpaf.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