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여름의 일이다. 막막했던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친정어머니가 몹시 편찮으셔서 우리 집에 와 계신 적이 있다. 핏기 없는 노란 얼굴에 바싹 마른 팔 다리, 걸을 힘은 고사하고 일어나 앉지도 못하셨다. 어찌나 속이 상하던지, 밥을 함께 먹어도 목욕을 시켜드려도 목이 메었다. 병원에서도 이유를 알 수 없단다. 어머니는 그토록 모질게 그러쥐었던 삶의 끈을 왜 놓아버리려고 했는지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그런 어머니께 바람 쐬러 가자고 졸랐다. 이렇게 기운 없이 누워있다가는 영영 걷지 못할 것 같아 나는 내내 가슴을 졸였다.
   상당산성을 지나 양쪽에 산등성이를 끼고 낭성 고갯길을 내달릴 때였다. 옆자리에 타고 있던 어머니가 차 창문을 내리면서 냅다 소리를 지르셨다.
   어이, 시원타!
   운전하던 나도 놀랐고 지나가던 바람도 놀랐을 것이다.
   그 다음에 터져 나온 어머니의 노랫소리에 난 그만 목이 메여 어머니를 쳐다 볼 수도 뭐라고 말을 건넬 수도 없었다.
   ~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
   간신히 울음을 참고 어머니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울고 넘는 박달재가 이토록 슬픈 노래인 줄은 미처 몰랐다.
   한참을 돌아 어머니와 나는 장암방죽으로 향했다. 7월 한 여름이니 연꽃이 올라와 있을 것이다. 저만치 푸른 연잎이 방죽 위로 넘쳐 났다. 아련한 분홍빛 연꽃이 여기저기 피어 있다. 수줍은 새색시처럼 볼그레한 얼굴을 연잎 뒤로 살짝 감춘 것도 있고, 간절한 발원을 담은 촛불처럼 오롯이 솟아오른 봉오리도 있었다. 어느 것은 벌써 연밥을 맺었다.
   어머니는 연꽃의 향기로움에 취한 듯 방죽가에 하염없이 서계셨다. 진흙 뻘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도 맑은 대를 뽑아 올려 세상 근심 다 안아 줄 것 같은 널따란 이파리와 천상의 등불 같은 꽃으로, 그간 고달팠던 생의 짐을 덜어 놓으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나도 연꽃을 바라보며 빌었다. 애면글면 살았던 한 평생, 어머니가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허무해하며 생의 끈을 놓아 버리지 않길 바랐다. 당신의 삶은 방 죽 위에 핀 한 송이 연꽃처럼 맑았으며 따뜻했고 의연했다고 말씀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힘없이 떠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방죽가를 거닐기만 했다. 잡은 손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더욱 세게 잡으며 말없이 걷기만 했다. 말하지 않아도 어머니는 다 알리라. 푸른 이파리 위에 연분홍 연등 켜고 길을 밝혀주는 연꽃도 다 알고 있다는 듯 바람을 타고 일렁였다.
   힘겨웠던 여름이 지나자 어머니는 다시 기운을 차리셨다. 그리고 올 여름, 어머니는 생기 있는 목소리로 내게 물으셨다.
   올해도 장암 방죽, 연꽃 피었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