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천변의 벚꽃이 진다. 하르르 꽃잎을 날리며 봄은 또 그렇게 간다. 화사한 꽃무리를 보며 한숨 질 새도 없이 꽃은 또 그렇게 진다.

   올해는 유난히 그랬다. 활짝 핀 꽃을 보면 저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실은 탄성인지 한숨인지 모를 소리이다. 소나무 밑 무리무리 연분홍 꽃망울을 터트린 진달래를 보며 그랬고 하얗게 치장한 산성의 벚꽃 길을 걸으며 그랬다. 질 것을 염려한, 꽃의 덧없음을 미리 읽어 버린 탓일까. 아니면 세월의 속절없음을 꽃에 덧입혀버린 탓일까. 아무튼 올해 내게 꽃은 한숨이었다.

   벚꽃이 질 때쯤 야산 그늘에 기지개를 켜는 꽃이 있다. 노루귀꽃 진 자리를 아쉽게 더듬는데 봄볕에 눈이 부신 듯 잔뜩 꼬기작거린 잎을 막 펴고 있는 족두리풀을 보게 되었다. 나올까 말까 망설이다 나온 것처럼 잎은 잔뜩 구겨져 있고 꽃은 까맣게 물이 올라 뺀들뺀들 눈치만 보고 있는 것 같다. 어쩜, 아직 벌어지지 않고 입을 꼭 다문 꽃은 마치------, 차마 표현할 수 없어서 자지러지게 웃고 만다. 궁금하신 분들은 사진을 보시라, 단박에 이미지가 떠오를 테니.

   족두리풀은 그늘지며 약간 습한 곳에서 자란다. 몇 해 전 여름, 상당산성 북쪽 성벽 길을 걷다가 심장 모양의 특이한 잎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손으로 젖혔다가 기겁한 적이 있다. 무성한 풀 아래 누룩뱀 한 마리가 스르륵 지나가는 게 아닌가. 엄마야, 하고 내 빼다가 고만 그 풀이 궁금하여 되돌아가 다시 한 번 살핀 것이 바로 족두리풀이다. 그래서 족두리풀하면 으레 누룩뱀 한 마리도 슬그머니 기어 나온다.

   여름이면 꽃은 지고 잎만 무성하게 자란다. 꽃이 몹시 궁금하여 찾아보니 신기하게도 꽁꽁 숨겨 놓은 듯 이파리 아래 꽃이 피는 게 아닌가. 흔히 꽃의 속성으로 볼 때 잎보다 먼저 피어 눈에 띄고자 하고 잎과 함께 나온다고 해도 잎보다 더 화려하게 더 높이 피는 게 꽃이 아니던가. 그런데 족두리풀은 그런 꽃의 속성을 완전히 뒤엎는 것 같았다. 꽃 색깔도 땅이나 낙엽 빛깔에 가까운데 마치 눈에 띄지 않게 위장한 것처럼 보였다. 왜 그럴까. 족두리풀의 사연이 궁금하다. 꽃을 보면 새색시의 머리 위에 파르르 떠는 족두리가 떠오른다. 그래서 족두리풀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새색시를 닮아 넓은 이파리 아래 조용히 피는가? 그러고 보니 부끄러움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꽃이다. 아마도 족두리풀은 땅속 곤충들에게 소중한 먹이를 제공해줄 것이다.

   특이한 것은 꽃잎이 없다는 것이다. 꽃덮이(꽃받침)가 둥글게 암술과 수술을 감싸고 있을 뿐이다. 보면 볼수록 오묘한 꽃이다.

   어느새 벌어진 꽃은 제비새끼가 어미에게 먹이를 달라고 입 벌리고 있는 모양 같다. 봄볕이 더 짙어지면 금빛 수술을 단 화려한 족두리가 탄생하게 될 것이다.

   한숨 소리 속에 봄은 간다. 족두리풀 지고 나면 또 어떤 꽃이 필까? 한숨을 그냥 한 숨으로 그치게 할 또 다른 꽃을 기대하며 봄날 어느 한 때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