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11월이다. 1년이 다 갔으되 아직 가지 않은, 1년 동안 무얼 했나 가장 많이 되돌아보며 가슴 치는 달이다. 11월에 대한 이러한 소회는 나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많은 시인들이 11월의 암담함을 담담한 시어로 노래했다. 고맙게도 11월을 노래한 시를 읽으며 반갑게 공감하기도 위로받기도 했다. 그래도 매년 찾아오는 11월은 그 해의 빛깔과 무관하게 힘겹기만 하다.
눈이라도 내릴 것 같은 끄무레한 날에는 아무 일도 손에 잡지 못하고 서성대기만 한다. 서성대는 저 시선 끝에 단풍나무가 걸리고 빨갛게 단풍든 물 고스란히 받아 나도 붉어지고 공연히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때다.
올해는 유난히 단풍이 곱다. 일교차가 크면 단풍이 곱다더니 무르익은 봄볕 같던 가을 날씨가 어느 날 써늘하게변심하더니만 그예 온 산천을 붉게 물들였다. 사실 단풍은 물든 것이 아니라 원래 갖고 있던 나뭇잎의 색소가 밖으로 나온 것뿐인데 물든 것이라고표현하여 마치초록색이 붉게, 노랗게 변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가을이 되면 나무들은 생장을 멈춘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영양분을 만들 필요가 없다.엽록소로 광합성을 하던 나뭇잎은 그 속에 가려 있던 붉은색, 혹은 노란색을 내놓으며 겨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단풍을 보며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자연이 준 또 하나의 호사를 누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계절이 가는 아쉬움을 그렇게 위로 삼기도한다.
가을도, 그렇다고 겨울도 아닌, 1년이 다 간 것도, 그렇다고 안 간 것도 아닌 어정쩡한 11월. 그래서 가장 어찌할 바를 모르는 11월이다.
   ‘더 이상 그리워 할 일도
   사랑할 일도 한 점 남아 있지 않는
   담담하기만한 11월의 하늘‘*
이라고 어느 시인은 노래했다. 지금의 내 심정이 딱 그러하다.
‘스위트 노벰버’라는 영화가 있다. 이것도 순전히 ‘노벰버’, 11월이라는 말에 이끌려 본 영화이다. 어떻게살길래 11월이 달콤할까. 온몸에 암이 퍼져 시한부 인생을 사는 주인공이 죽기 전에 삶에서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한사람이라도 일깨워주며,죽음이 목전에 올 때까지 기꺼이 자신의 사랑을 나눠주는 이야기이다.
반성이 되었다. 어설픈 투정을 부린 내가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래도 어쩌랴, 나를 찌르는 가시는 여전히 나에게는 들보만 하니. 아무것도 내려놓지 못하고 욕심으로 똘똘 뭉친 제 마음이 겨워 힘든 것인데 공연히 아무 죄 없는 11월만 탓하고 있다. 11월에게 미안하다. (2009,11)

* 최갑수의시 ‘11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