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중에 예쁘지 않은 꽃이 어디 있을까마는 시새워 피는 많은 꽃 속에 묻혀 그 아름다움의 진가가 드러나지 않는 꽃이 있다. 어딜 가도 쉽게 볼 수 있되, 벚꽃처럼 탐스럽지도, 목련처럼 송이가 크지도 복사꽃처럼 빛깔이 애잔스럽지도 않아 눈에 띄지 않는 꽃이다.
   꽃들이 만개하는 봄에 몸을 붉게 불사르는 명자나무가 그러하다. 명자나무는 키가 작은 관목이다. 관목은 밑동에서 여러 갈래로 줄기가 뻗어 나와 작은키를 이루는 떨기나무를 말한다. 명자나무는 공원이나 아파트 화단에서 쉽게 볼 수 있으며 생울타리용으로 많이 심는다.
   올봄엔 우연찮게 명자나무를 자세히 살필 기회가 있었다. 붉은 꽃잎 다섯 장이 노란 수술과 암술을 에두르듯 피어있는데 야무지고 똑똑한 처녀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 살던 집 화단에 명자나무가 있었는데 부러 허리 숙여 눈여겨보지 않았다. 꽃에 대해 일부러 도감을 찾아가며 공부해도 여전히 눈에 들어오지 않는 유일한 꽃 중의 하나였다.
   왜 그랬을까? 우선 꽃 피는 위치가 여느 꽃과 다르다. 흔히 잎이 패기 전, 줄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탐스럽게 피는 것이 봄에 피는 꽃의 특징인데 반해 명자나무는 빼곡한 줄기 다발 속에 듬성듬성 꽃을 피운다. 꽃보다 나무줄기가 더 눈에 띄니 탐스럽고 소담한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거기다 꽃이 필 때쯤엔 잎이 패기 시작하여 꽃을 가리니 쉽게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꽃빛깔 또한 은은하게 사람의 마음을 잡아당기는 아련함과는 거리가 멀다. 붉은색 꽃이 꽃자루도 없이 나무줄기에 듬성듬성 떡떡 붙어 핀다.
   그런데 올 봄, 그동안 명자나무를 마음에 들이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똑 떨어지게 예쁜 꽃이었다. 줄기 사이사이에 숨어 피듯 붉게 피어올린 선홍빛 봄이 그 속에 타오르고 있었다. 작은 동백꽃이라고 해야 하나? 옛날부터 명자나무를 울타리 안에 심으면 집안의 여자가 바람난다는 말이 있다. 이는 명자나무 꽃의 고운 빛깔을 보면 여인들은 장옷을 쓰고 집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도록, 마음을 달뜨게 하는 힘이 있다는 뜻이다.
   그 말을 듣고 공연히 호기심이 일기도 했지만, 우연찮게 명자나무 분재를 건네주는 사람이 있어서 좋아라 집으로 모셔와 키우게 되었다. 우리집 울타리 안에도 명자나무 한 그루가 있게 된 것이다. 기특하게도 선홍빛 꽃 한 송이가 피어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그러다 며칠 후 명자나무는 시나브로 말라 죽게 되었다. 집주인이 게으른 탓이다. 바람? 그렇게 바람은 시나브로 빠져나갔다.
   나무 이름 중에는 '자'자 들어가는 나무가 꽤 있다. 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씨앗'과 '가시'이다. 씨앗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는 대개 그 씨앗이 약재용으로 쓰일 때이다. 구기자, 오미자, 치자 등이 그러하다. 가시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는 가시가 돋는 나무를 말하는데 명자, 탱자, 매자, 당매자 등이 그러하다. 명자나무에도 가시가 있다. 가시가 자라 줄기로 변하는 것이다.
   꽃이 지고나면 명자나무에는 모과보다 작은 열매가 달리는데 약재로 쓰이며 향기가 좋아 그대로 먹거나 술을 담가 먹기도 한다. 명자꽃 또한 술을 담가 먹는다. 꽃부터 열매까지 쓰임새가 여간 요긴한 게 아니다.
울타리 아래서 붉게 꽃을 피워 봄을 알리고 여인네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명자나무의 매력에 흠뻑 빠진 봄이다. 나에게도 여간 다행스러운 게 아니다. 하마터면 명자나무의 매력을 올 봄도 놓치고 그냥 보낼 뻔 했다.(201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