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겨울은 유난히 눈이 자주 내린다. 요 몇 년 동안 느끼지 못했던 한파도 자주 오는 편이다. 지구촌 곳곳이 폭설과 한파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온난화를 막기 위한 지구의 몸부림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실제로 흰눈이 쌓이면 햇빛을 반사하게 되고 지표의 온도는 내려가게 된다. 요즘 날씨를 보건데, 온난화를 견디지 못한 지구에 영화 ‘투모로우’처럼 빙하기가 올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드는 건 사실이다.
 어쨌든 눈이 많이 내려 한파가 오든, 길이 미끄럽든 눈은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힘이 있다. 공중에 하얀 눈이 하나 둘 흩날리기 시작할 때 이미 심장은 좀 전과 다르게 뛰기 시작한다. 눈은 순백으로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 깨끗하게 만드는 이미지가 있고, 눈 덮인 산야가 푸근하게 보이는 건 흰 솜이불을 덮은 것 같은 따스한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실제는 그렇지 않다. 눈 때문에 가지가 찢기거나 쓰러지는 나무가 있을 것이며, 먹이를 찾지 못한 야생동물들은 굶주리거나 얼어 죽기도 할 것이다. 깨끗하고 푸근해 보이는 건 잠시 뿐, 눈 온 뒤의 거리는 무척 지저분하고 위험하다.  그래도 사람들은 눈이 갖고 있는 설렘의 이미지를 아주 오랫동안 갖고 있다. 허공을 빼곡하게 메우는 함박눈이 내릴 때는 눈 속에 갇힌 듯한 안온함까지 느끼니, 눈의 마술은 대단하다. 얼마 전 눈 덮인 내소사를 가게 되었다. 서해 쪽에 내린 폭설로 내소사는 그야말로 딴 세상이었다. 눈 덮인 전나무 길은 겨울만 있는 북극의 어느 나라의 풍광 같았고, 눈 덮인 내소사의 전각들은 두툼한 솜이불을 덮고 따뜻한 햇볕에 겨워 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족히 30cm가 넘을 것 같은 눈이 쌓인 경내 눈밭에서 난생 처음 철없이 뒹굴어보기도 했다. 그러다 눈 쌓인 산수유나무에 눈이 가게 되었는데 그야말로 눈 속에서 홍보석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눈을 잔뜩 이고 얼굴만 빠끔하게 내민 것처럼 붉은 산수유열매는 윤이 반들반들 했다. 붉은색과 흰색의 대비가 만들어 낸 또 하나의 꽃이었다.  천 년된 할아버지, 할머니 느티나무도 흰눈으로 분단장을 하셨고, 울울창창 추운 겨울에도 푸른 잎을 자랑하던 전나무에도 눈꽃이 피었다. 이렇게 흰눈은 온 세상을 눈꽃으로 피워내 색다른 세상을 만들기 때문에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흔드나 보다. 눈이 내려 가속도가 붙은 온난화를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다면, 눈꽃으로나마 잠시 사람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그것 모두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올 연말부터 집 앞의 눈을 치우지 않으면 과태료를 100만원이나 물린다고 하는데, 그러면 눈 오는 것이 얼마나 달갑지 않을까. 그때도 눈의 마술은 유효할까? 궁금해진다.(2009.12.1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