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다른 도시를 가게 되면 가로수를 유심히 보는 버릇이 생겼다. 아니 가로수는 유심히 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것 중의 하나이다. 거기다 가로 수종으로는 특이하다고 생각되는 것에는 더욱 관심이 가고 가로 수종을 고른 사람이 누구인지 단박에 궁금해진다.
   가로수는 그 도시의 미적 안목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내가 가본 도시 중 가로수가 특이한 곳이 몇 군데 있는데 그 첫 번째로 공주의 소나무를 꼽을 수 있다. 소나무는 쉽게 자라지 않으며 수형도 넓게 퍼지지 않고, 활엽도 아니기 때문에 가로수로 적합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백제의 옛 수도로서 역사와 전통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데는 소나무만한 것이 없을 듯하다. 가로수길이 좀 빈약해 보이긴 하지만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기엔 충분하다. 그래서 그런지 소나무 가로수가 그렇게 생뚱맞아 보이지 않았다.
   또한 군데 기억에 남는 곳은 제천의 남천동이다. 그곳의 가로수는 모감주나무이다. 정원수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인데 가로수로 도열해 있는 것을 보자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초여름, 노란 모감주 꽃이 한창일 때는 이 일대가 장관이겠다는 생각을 하며 노란 모감주 꽃길을 머릿속에 그려보기도 했다. 모감주나무를 선택한 시청의 어느 공무원의 얼굴이 궁금해지면서 그 길이 정스럽게 다가왔다.
   또 한 군데 기억에 남는 곳은 강원도 백담사 가는 길에 만난 마가목이다. 나는 운 좋게도 마가목 열매가 새빨갛게 익는 초가을에 그 길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렇게 고풍스럽고 고급스럽고 탐스러울 수가 없다. 빨간 마가목 열매가 가을햇살에 야무지게 반들거리는 모습은 이국적인 냄새가 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가로수는 막 조성하기 시작할 무렵에는 그 가치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 도시의 상징처럼 되는 경우가 많다. 청주의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이 그렇고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길이 그렇다. 그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으며 오랜 시간과 정성을 베푼 그 도시 사람들만이 받을 수있는 축복이다.
   가로수는 팍팍한 도심 속에서 편안하게 눈길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자연이다. 그 도시 사람들이 눈치 못 채는 사이 가로수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 하나의 정서로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이 우리 동네의 가로수는 무엇이더라, 정도의 관심만 보이더라도 더 많은 여유가 그들에게 오리라는 것을 눈치 챘으면 좋겠다. (200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