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천변에 벚꽃이 한창이다. 작은 솜뭉치들이 벙그러져 나뭇가지를 감싼 것처럼 온통 연분홍 일색이다. 잎보다 먼저 꽃이 피기 때문에 벌어진 광경이다. 벚나무의 생태가 그러하니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일순간 그 생태가 얼마나 축복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무가 어느 때, 이렇게 사람들의 사랑스러운 눈길을 받을 것이며, 사람 또한 어떤 나무로부터 이렇게 황홀한 봄을 선사받는단 말인가.

   당연히 4월이 되면 벚꽃은 피고 사람들은 꽃그늘 아래로 찾아 들어 꽃놀이하고, 이것이 봄마다 찾아오는 수순이며 풍경이었다. 그러다 올해는 그렇게 당연한 것들이 오묘한 자연의 신비이자 축복으로 다가와 절로 감사함이 인다.

   이렇게 같은 풍경이라고 할지라도 해마다 보는 느낌이 달라지는 것은 어느 한 때도 꼭 같지 않다는 증거이다. 올해 핀 꽃은 세상에 처음 나온 것이며 내년에 필 꽃 또한 그렇다. 작년에 꽃을 보던 나는 분명 작년과 다른 ‘나’인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새로움의 연속 아닌 것이 없다. 그래서 해마다 벚꽃을 보는 생각들도 조각조각 나뉘어져 새롭게 다가온다.

   나는 두 아이를 모두 봄에 낳았다. 큰 아이는 3월에 둘째 아이는 4월에 낳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아이 둘을 연년생으로 낳으면서 산후 우울증을 심하게 앓은 것 같다. 봄만 되면 우울증이 도져 지금도 뚜렷한 이유 없이 우울해지기 때문이다. 아이가 생겼다는 기쁨보다 막연한 책임감과 두려움, 그리고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나’를 접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척 무거웠다. 그 때마다 내 눈에 서글프게 들어와 박힌 건 무심천변을 하얗게 덮은 벚꽃이었다. 내 심사와는 상관없이 봄은 황홀하게 피어나 온 산천이 울렁울렁 설레고 있는데, 그 때 벚꽃은 내게, 너무 먼 당신이었다.

   살다보면 사람을 매몰차게 넘어트리는 돌부리를 만나게 되는데 나라고 그 돌부리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남편이 직장을 그만 두고 새 일을 시작했지만 때가 때인지라 잘 풀리지 않았다. 그 때 돌아온 봄은 내게 더욱 잔인한 것이었다. 세상 천지에 즐거운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무심천변에 어김없이 벚꽃은 피어났지만 꽃이 피면 무얼 하나 하는 생각에 하염없이 서글프기만 했다. 내가 언제 봄이 왔다고, 꽃이 피었다고 기뻐한 적이 있던가, 할 정도로 꽃을 보는 내 마음은 냉랭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해 봄은 그렇게 모래바람 자욱이 날리던 황사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모든 만물의 가치와 그 고요함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올해는 벚꽃이 피어난 그 자체가 축복이며 보는 사람들은 더 많은 축복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니 연분홍 꽃 잔치가 더없이 아름답게만 보인다. 왜 그런지 딱히 이거다, 라고 말할 수 없지만 아마도 그건 세월이 내게 준 ‘여지’에서 온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내년에도 무심천변의 벚꽃 풍경은 또 다른 모습으로 찾아올 것이다. 과연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은근히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한다. (200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