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산에 들어 겨울나무를 본다. 몸을 그대로 드러낸 채 하늘을 여백 삼아 서 있다. 담박하고 담담해 보인다. 아무것도 걸친 게 없다고 부끄러워하지도, 무성했던 지난 여름을 그리워하지도 않는다.
   나무들의 품이 눈에 들어온다. 그 품을 가늠해 본다. 느티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벚나무---. 나무마다 갖고 있는 품이 제각각 다르다. 사람도 저마다 갖고 있는 품이 다르듯이. 단단한 밑둥치와 널따랗게 가지를 뻗은 느티나무만한 품이 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견뎌야하는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 넓은 품 안에는 몇 십 년 아니 몇 백 년을 견딘 모진 시간이 아롱져 있을 것이다.
   엊그제 친정어머니와 목욕을 갔다. 팔순이 다돼 가는 어머니는 계단 하나 오르는 것부터 목욕탕에 발 딛는 것까지, 움직이는 그 자체를 두려워하신다. 젊어서 중병을 앓은 터라 유리그릇 깨질세라 고이고이 모신 어머니다. 어머니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잘한 일조차 자식에게 기대는 일이 많다. 솔직히 그런 어머니가 성가실 때도 많다. 한 달에 몇 번 병원 순례에, 목욕도 가야하고 그 외 자잘한 일로 자주 오라 가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도 어머니마저 옆에 계시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수그러들곤 한다.
   이제는 오히려 어머니와 함께 하는 정기적인 시간들을 기다린다. 맛있는 밥집을 찾아내어 함께 가기도 하고 목욕탕 순례도 시설 좋은 곳으로 바꿔가며 하는 것도 어머니와 내가 함께 누리는 재미중에 하나이다.
   탕 속에 들어가자 어머니는 몸이 자꾸 떠올라 못 담그겠다고 하신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 몸이 많이 줄었다. 어머니를 꼭 끌어안고 탕 속에 들어갔다. 내 품에 쏙 들어올 정도로 어머니 몸은 작아져 있다. 순간 내 가슴 속에 목욕탕 물보다 더 뜨거운 것이 꽉 차올랐다. 이제껏 어머니 몸에서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어려서 외출하다 돌아오는 어머니의 발짝 소리만 들어도 좋아했지만 정작 어머니 품이나 손에서 따뜻함을 느껴보진 못했다. 워낙 힘들 게 사신 분이라 자식들을 사근사근하게 챙기기보다 엄하게만 대해서 따뜻함보다는 매몰찬 것이 더 많은 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머니와 함께 나란히 탕 속에 앉아 얼굴을 마주 보고 있으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한편으로는 어머니와 몇 번의 목욕을 더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코끝이 매워오기도 했다.
   점점 가벼워지고 왜소해지는 어머니의 몸을 보며 삶의 시간이 그 몸에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본다. 많은 구비를 돌아 그 많은 시간을 담담하게 살아낸 어머니의 의연함이 엿보인다.
   나무의 수명에 사람을 대할까마는, 그리고 사람의 내공에 나무를 대할까마는, 오래된 나무가 갖고 있는 내공은 나이 드신 분들과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머니의 몸에서 시간의 무늬를 보듯 겨울나무에서 같은 무늬를 보기 때문이다.
저만치 묵묵히 서 있는 겨울나무를 통해 삶의 견딤을 본다.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200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