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를 만나게 되면 자연히 나무의 겨울눈 먼저 찾게 된다. 어떤 것은 막 꽃봉오리라도 터트릴 것처럼 부풀어 있고 또 어떤 것은 비늘로 세 겹 네 겹 꽁꽁 싸맨 채 털을 부숭부숭 달고 있다. 겨울을 대비하고 봄을 기약하며 자연의 순리를 철저히 따르는 그들의 본능이 경이롭다.
   그렇게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그들의 본능에 사람을 대입해 보게 된다. 그에 비하면 사람은 좀 어리석은 면이 많지 않은가 싶다. 순리를 역행하는 오만함과 내일을 대비하지 않는 무대책이 그런 것이다. 최고인양 으스대지만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라는 생각까지 미친다. 움직일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식물의 세계를 통해 겸손함을 배운다.
   씨앗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그 생존 방식에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씨앗의 갖가지 번식 방법을 통해 사람만 팍팍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얼마 전에 느릅나무 씨앗을 보게 되었다. 나뭇잎 모양만 눈에 익숙한 나무인데 올 해 처음으로 씨앗을 보게 되었다. 가지마다 갈색의 작은 씨앗이 어찌나 오글오글 달려 있는지 이것이 정말 느릅나무 씨앗일까, 하는 의구심이 일기도 했다. 씨앗이 이렇게 많이 달릴 정도라면 지난여름, 꽃은 또 얼마나 많이 피었겠는가. 느릅나무는 거기 그 자리 늘 있었으나 내 눈에 들인 것은 나뭇잎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새끼 손톱만한 크기의 느릅나무 씨앗을 따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쌀 톨 만한 씨앗을 길둥그렇게 감싸며 날개가 달렸는데 고 작은 생김새 속에 살짝 날개를 뒤틀어 놓아 바람을 잘 타게 만들어 놓았다. 그물막 같은 날개를 가진 씨앗은 대부분 바람을 타고 번식한다. 느릅나무 씨앗은 바람을 타고 더 멀리 날아가기 위해 날개를 한번 살짝 꽈 놓은 것이다. 더 멀리 더 많이 번식시키기 위한 식물의 본능을 읽을 수 있다. 엄마 나무나 동료들과 경쟁을 피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민들레나 고들빼기 등 국화과 식물은 갓털을 달고 번식하게 되는데 한 번 기류를 타기 시작하면 아주 먼 곳까지 날아갈 수 있다. 먼 곳까지 가는 것은 물론 한번 땅에 앉으면 절대 빠지지 않도록 씨앗에 갈고리 모양도 갖추고 있다. 고 작은 씨앗에 담긴 생존의 욕구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씨앗의 다양한 모습을 들여다보노라면, 식물도 번식을 위해 끊임없이 궁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수없이 잔소리를 하고 알려주어도 잘 고쳐지지 않는 게 있다. 학창시절에는 한눈팔지 말고 내가 해야 할 일에만 전념하라고 해도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씨름하다가 지치게 되면 어느 순간, 도대체 제 살 궁리를 하는 것인지, 아닌지 의문이 간다. 작은 씨앗도 살아가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쓰는데, 하물며 사람으로 태어나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씨앗을 모아 놓고 그들의 번식 방법을 알려줘야겠다. 씨앗들이 어떻게 살 궁리를 하는지 공부해 보면 ‘나’는 내 삶을 위해 어떤 궁리를 해야 하나 한번쯤 생각해 보겠지. 그것이 먹힐지 아닐지는 장담 못 하겠지만 한번 해봐야겠다.(20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