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은 곳에서 귀한 것을 보게 되면 그 기쁨은 두 배로 커진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장소에서 그 무엇과 맞닥뜨릴 때 먼저 놀라움과 의아함이 교차하고 반가움은 그 다음 일이다.
   청주북부도서관 뒷동산에서 용담꽃을 만났을 때 꼭 그랬다. 우리 고장에 시민을 위한 도서관이 하나 둘 생겨난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을 안고 찾은 북부도서관은 무엇보다 주변 환경이 마음에 들었다. 사천동 매봉산 자락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지라 책읽기에 더 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도서관을 둘러 본 후 자연히 발길은 매봉산으로 향했다. 그런데 매봉산은 더 이상 산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밭둑이나 경사로로 깎여나가 헐벗은 곳이 많았으며 수종 또한 단조로워 숲의 균형이 깨졌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더더욱 안타까운 것은 산을 깎아 만든 밭이었다. 숲의 균형을 가장 먼저 깨트린 것은 여기저기 일구어 놓은 텃밭일 터였다. 거기다 사방팔방 나 있는 반들반들한 등산로가 보태져 숲의 맥을 끊고 있었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매봉산은 얼마 가지 않아 곧 사라져버릴 것처럼 힘겨워보였다. 숲이 스스로 생명을 놓아버리는 경우는 없겠지만 사람들의 잦은 발걸음으로 더 이상의 면역력이 생기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숲이 숲이길 포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도심 주변의 산은 그 동네 사람들에게 매우 소중한 공간이다. 그런데 그 공간을 보살피거나 가꾸지 않고 이용만 하면 점점 더 척박한 환경이 될 수밖에 없다.
   매봉산 여기저기를 돌며 안타까운 생각을 떨칠 수 없을 때 리기다소나무 숲 아래서, 청보랏빛 푸른빛을 보게 되었다. 숲 주위에 비닐이 여기저기 널려 있어 쓰레기려니 했다. 눈을 의심하며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것은 영롱히 살아 있는 용담꽃이었다. 요즘엔 웬만한 산에서조차 만나기 힘든 가을꽃이다. 더군다나 땅바닥에 기다시피 뻗은 줄기에 피는 꽃이라 잘 살피지 않으면 쉽게 볼 수 없다. 길가에 제법 넓게 자리를 잡고 아주 건강하게 청보라색 꽃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용담 줄기 아래는 여전히 전설 줄에 철조망 같은 쓰레기가 있는데 이렇게 척박한 곳에 어찌 이런 귀한 꽃이 피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줄기마다 탐스럽게 피워 올린 꽃 속에서 대견함과 의연함을 엿볼 수 있었다.
   용담은 힘에 부쳐 겨우 지탱하고 있는 매봉산이 남몰래 품은 희망처럼 보였다. 아무도 돌봐주거나 귀하게 여기지 않자 숲이 스스로 위안을 삼기 위해 만든 소중한 보석 같기도 했다. 퇴락해가는 매봉산이 한 때의 풍요를 기억하며 품어 안은 자부심 같은 것이 바로 용담꽃이 아닐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매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매봉산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알 것이다. 그렇지만 매봉산의 신음소리를 듣고 있는지 그건 모르겠다. 매봉산이 누구도 몰래 용담을 키워내고 지켜낸 것처럼 이 동네도 매봉산을 건강한 숲으로 되돌려야 더욱 빛을 발하는 보석이 될 것이다.
   내년 가을, 전선줄과 철사줄로 얽혀 있는 척박한 땅에 용담꽃이 그 푸른빛을 다시 뿜어 올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어느 산소 아래 길가에 위치한 터라 사람들 발길에 썩 뭉개지거나 뿌리를 다쳐 다시는 이 자리에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매봉산에 용담이 자라고 있다는 것이 과거형이 되지 않길 빌 뿐이다.(20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