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벌초를 하러간다. 사촌오빠들은 새벽같이 내려와 찬 이슬 털어내며 한참 벌초를 하는 중이다. 예초기는 윙윙 돌아가고 예초기의 엔진만큼 달아오른 가을 햇살은 달궈진 바늘처럼 따갑게 내리 꽂고 있다. 햇살을 받은 초록물결은 무성하다 못해 반짝반짝 빛이 난다. 8월, 한참 물이 오른 들판의 생명들은 눈이 부셔 차마 바라볼 수조차 없다.
   아직 벌초가 되지 않은 아버지 산소에는 연보라색 무릇이 오롯이 피어있다. 곧 있으면 가차 없이 예초기에 날아갈 판이지만 이제껏 아버지 무덤을 지킨 건 저 무릇과 줄딸기와 패랭이꽃 몇 송이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한식 때, 성묘 후 어머니와 잡풀 제거를 하던 중 뭉텅 뽑힌 개망초 뿌리 아래, 작은 개구리 한 마리를 발견하고 기겁한 적이 있다. 개구리는 채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는지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터무니없는 생각이지만 잠시잠깐 아버지 혼령을 만난 듯 반갑기도 했다. 애틋한 마음이 일며 잘 모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경칩에 한차례 깨었다가 다시 봄잠에 든 것일 텐데 잠을 깨웠다는 생각에 공연히 미안하기도 했다. 도로 제자리에 넣어 흙으로 살짝 덮어 주었다. 개구리 역시 우리가 찾지 않는 사이, 아버지 무덤의 수문장 역할을 했는지도 모른다.
   이렇듯 아버지 산소에 갈 때마다 이러저러하게 많은 생각이 들고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 곤충 한 마리도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살아생전 부모자식 지간에 충분한 사랑을 주고받지 못한 미련이 이승에 이렇게 갖가지 모습으로 되살아나는 것인가.
   벌초가 끝나고 그늘막으로 심어놓은 소나무 아래 앉아 고향 마을도 올려다보고 사촌들과 옛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1년에 한번 조상님들의 산소가 즐비한 언덕에 앉아 사촌들과 함께 정담을 나누는 것도 쏟아지는 가을 햇볕만큼이나 달달한 것이다.
   익어가는 벼를 한차례 빗질하며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솔 내가 은은하게 배어있다. 절로 살이 찔 것 같은 노곤함이 들어있다. 아버지 무릎을 베고 달디 단 낮잠 한숨 자고 싶다. 아버지는 흔쾌히 무릎을 내어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실 것 같다. 아버지와 난 어떤 인연이길래 짧은 몇 해만 이승에서 함께 한 것일까.
   깔끔하게 단장한 아버지 산소를 바라본다. 내가 가버리고 나면 어쩐지 쓸쓸할 것 같다. 무릇 몇 송이 남겨 둘 걸. 패랭이꽃 몇 송이 남겨 둘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