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꽃 지고 나니 목련이 만개하고 벚꽃 또한 하얗게 벌어져 바야흐로 꽃 잔치가 벌어지는 완연한 봄이다. 하루 이틀 상관이지만 꽃 피는 시기가 조금씩 달라 쉼 없이 사람들의 눈을 호사하게 만든다.
   우리집 아파트 화단을 보면 제일 먼저 사람들의 봄눈을 틔게 하는 살구꽃이 아련한 연분홍으로 피어나고 뒤이어 희다 못해 푸르스름한 순백의 매화가 활짝 핀다. 그 다음엔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말아 올린 것 같은 목련이 피고 목련꽃 한 잎 두 잎 떨어지자 벚꽃이 환하게 불을 밝힌다. 내일이면 빨간 입술을 꼭 다물고 있던 복사꽃이 핑크빛 앙증맞은 꽃을 피워 올려 봄의 절정을 알릴 것이다.
   한꺼번에 일시에 만개하지 않고 시간을 두고 차례차례 꽃을 피워 올리는 자연의 순리를 꽃나무들을 통해 읽는다. 줄기마다 꽃을 다보록이 달고 있는 매화나무 아래에 서면 벌들이 붕붕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벌들이 어찌나 바쁘게 움직이던지 앉았던 꽃잎이 파르르 떨기도 전에 다른 꽃잎으로 옮겨가기 바쁘다. 만약 한꺼번에 꽃이 피고 진다면 벌이나 나비는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할 것이고 꽃나무들도 제대로 꽃가루받이를 못하게 될 것이다. 조금씩 시간차를 두어 제 차례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진득함 속에는 햇살 하나 바람 하나, 곤충들의 발길 하나라도 골고루 나눠 갖고자 하는 아름다움이 들어 있는 듯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바라보니 번차례로 피고 지는 봄꽃이 더없이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다.
   봄물이 오른 세상에 어느 것 하나 윤이 나지 않는 것이 없다. 먼 데 시선 끝에 걸리는 나무를 보면 연둣빛 새순으로 빛이 반짝반짝 난다. 물 고인 논바닥에는 개구리 알이 질펀하고 작은 수로에도 도롱뇽 알과 개구리 알이 반들반들 까맣게 떠 있다. 이르게 깨어난 알들은 우무질 안에서 움찔움찔 세상을 향해 발길질을 하고 있다.
   도롱뇽은 대개 맑은 물이 흐르는 곳에 알을 낳는데 그 해 봄, 가뭄이 들 것 같으면 냇가 가운데 알을 낳고 비가 많이 올 것 같으면 가장자리에 붙여 낳는다. 가뭄이 들어도 말라 죽지 않고 비가 많이 와도 떠내려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새끼를 보호하기 위한 어미의 본능이 인간의 과학보다 훨씬 뛰어날 때가 있다.
   그런데 어느 논바닥에는 물이 말라 개구리 알이 우무질 안에 싸인 채 딱 들러 붙어있다. 조금 있으면 따가운 봄볕에 타 들어갈 것 같다. 우무질 안에는 깨어나지 못한 수만 개의 알이 까맣게 물을 기다리고 있다. 이대로 두면 분명 말라 죽을 것이다. 그냥 두는 것이 순리라는 것을 알지만 어떤 급한 엄마개구리가 미처 물이 많은 수로까지 가지 못하고 이곳에다 알을 낳았나 하는 생각에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한다. 더군다나 개구리 한 마리 볼 수 없는 팍팍한 도심에서 살다보니 개구리 알 하나도 무척이나 소중하다. 이대로 이 많은 생명을 말러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오늘 내일 비가 온다면 모를까, 그것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안되겠다 싶어 우무질에 싸여 있는 개구리 알을 두 손으로 움키어 수로에 넣어주었다. 우무질이 얼마나 단단한지 논바닥에 들러붙어 잘 떨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물에 들어간 알들은 ‘어이, 시원타’할 것 같다. 햇볕에 달아 오른 내 얼굴이 다 시원해진다.
   봄꽃으로 화사한 요즘 여기저기 눈 줄 곳이 많다. 마음에 들여와 보지 않으면 아름다울 것도 그다지 의미 있을 것도 소중할 것도 없다. 마음에 따라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을 공짜로 눈요기하며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눈요기로 얼마든지 배부를 수 있는 요즘, 그러나 누구나 다 누리는 것은 아니다. (2008년 4월 내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