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에 비해 올해는 봄이 더디 오는 것 같다. 작년만 해도 2월 중순 경이면 두꺼비, 개구리가 나오곤 했는데 올해는 경칩이 돼서야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지구 온난화로 봄은 사라지고 바로 여름이 올 정도로 지나치게 따뜻했던 봄을 몇 년 동안 맞이했던 탓이다.
   올해는 아직 바람이 맵차다. 봄 가뭄도 심해 산길을 걸을 때 푸석푸석 먼지가 일고 마른 잎들은 바싹 바스러졌다. 봄비라도 내려야 잔뜩 벼르고 있는 꽃눈, 잎눈이 꼭 다문 입을 벌릴 텐데. 땅이 촉촉해야 무수한 야생의 뿌리들이 목이라도 축일 텐데.
   햇볕은 제법 따뜻한데 바람은 아직 겨울의 찬 기운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옷을 어떻게 입어야할지 난감할 때가 많다. 겨울옷을 입자니 충충하고 봄옷을 입자니 아직은 쌀랑하다. 문득 화사한 봄꽃이 그리워지는 때이기도 하다.
   아이들과 저녁 식탁에 모여 날씨 얘기를 하다가 어쩌다 아랫녘의 매화 얘기가 나왔다.
   “남쪽의 매화는 이제 막 꽃 몽우리를 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곳은 청주보다 따뜻하니까. 그래서 매년 엄마가 하동이나 구례에서 매실 사잖아”
그러자 큰 아이가
   “그럼 매화나무에서 매실이 열리는 거야?”
   큰 아이가 아, 이럴 수가, 하는 표정으로 깜짝 놀라며 반문했다. 매화는 사군자 중에 하나라 사극이나 옛 그림에서 흔히 접해 귀에 익숙할 것이다. 그런데 매년 보았던 청매실이 매화 열매라는 것은 미처 몰랐던가보다.
   “매-실, 매화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라는 뜻이잖아.”
   “아, 그렇구나. 엄마, 나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보는 거지?”
   딸아이는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한심하다니, 그건 아니다. 솔직히 얘기하면 나도 매실이 매화꽃 진 뒤 달리는 열매라는 것을 불과 몇 년 전에 알았다. 그래서 엄마도 얼마 전에 안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큰아이는 실제로 매화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거짓말하지 말라고, 매년 봄이면 매일매일 봤다고 일러주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우리 아파트 통로 현관 오른쪽에 있는 것이 바로 매화나무라고 일러주었다. 매화나무는 십 년도 넘게 그 자리에 있었노라고 했다. 딸아이는 더욱 놀라며 그 나무가 매실 달리는 매화나무였냐고 묻는 것이다. 꽃이 무슨 색이었는지 기억 나냐고 묻자, 큰 아이는 꽃이 참 지저분하게 지는 나무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거라도 기억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나무며 꽃이 눈에 들어오길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푸르스름한 빛이 돌 정도로 정갈해 보이는 흰꽃이라고 일러 주었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였다. 큰 아이는 이제 집에 드나들 때마다 매화꽃을 눈여겨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면 보이지 않고 관심두지 않으면 진주도 못 알아보는 것 아닌가. 몇 년 동안 코앞에 있어도 알아보지 못한 순결한 매화꽃의 아름다움을 기쁘게 바라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이 둘러 앉아 매화꽃 얘기를 나누니 매화꽃이 바람결에 분분히 지는 꽃그늘 아래 있는 것만 같다. 우리 가족은 때 이른 꽃 마중, 봄 마중을 그렇게 했다. 순간, 하얗게 핀 매화꽃이 그리워지며 얼른 봄소식 꽃소식을 전해 듣고 싶어졌다. 김선영(소설가, 자연안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