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평야를 달린다. 추수를 끝내고 가볍게 몸을 털고 있는 논 들판 위에는 따스한 겨울 햇볕이 평온하게 내려앉았다. 고고한 두루미와 재두루미, 바람만 불어도 후다닥 날아가는 분주한 쇠기러기 떼를 손님으로 모시고 논 들판 여기저기 이삭을 내놓은 철원의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이곳에 분단의 아픔과 피어린 전쟁의 상처가 그토록 깊이 있으리라고는 감히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평화로워 보인다.
   철원은 우리나라 분단의 아픔과 전쟁의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땅이다. 38선이 그어졌을 때는 이북 땅이었다가 6.25전쟁이 끝나고 휴전이 되면서 일부 남한 땅이 된 곳이 바로 철원이다. 뼈만 앙상히 남아있는 북한의 철원 노동당사가 있으며 전쟁 전에 김일성시절에 만들기 시작하여 전쟁 후 이승만 시절에 완공했다는 승일교가 그대로 남아 역사의 흔적을 증거로 보여주고 있다. 6.25전쟁이 얼마나 피비린내 나는 전장이었는지 알려주는 백마고지전적지가 있고 지금의 분단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제2땅굴이 있으며 북한땅을 지척에서 볼 수 있는 평화전망대가 있는 곳이다.
   북쪽으로 갈수록 남방한계선의 철책이 보이고 총을 멘 군인들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한 나라 한 민족이 철책선 하나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씁쓸하기 이를 데 없다.
   민통선 안으로 들어갈수록 지뢰표시는 더욱 자주 눈에 띈다. 길 가장자리에 나무가 있거나 작은 숲이 조성되어 있으면 그곳은 어김없이 지뢰밭이다. 지뢰가 많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곳이어서 저절로 숲이 되어 야생동물만 오가는 곳이 되었다. 야생동물은 예민한 후각으로 화약 냄새를 구분할 수 있어 지뢰를 쉽게 피할 수 있다고 한다. 자동차가 달리는데도 고라니 한 마리는 유유히 길을 건너 지뢰밭 숲으로 들어간다. 고라니의 생존이 존경스러워지기까지 한다.
   제2 땅굴 가는 길에 유난히 재두루미와 두루미를 많이 볼 수 있다. 두루미는 반드시 가족 단위로 다닌다. 한꺼번에 무리지어 있는 것이 아니라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짝지어 다닌다. 몸집이 좀 크다 싶은 두 마리는 대게 어른 두루미이고 좀 작되 목 뒤에 누르스름한 깃털을 달고 있으면 새끼 두루미이다. 그러니까 두 마리가 다니면 신혼부부이고 세, 네 마리 짝을 지어 다니는 것은 새끼를 한 마리나 두 마리 거느린 두루미 가족이다. 가족끼리 꼭 붙어 논 들판을 다니며 먹이를 먹고 있는 두루미의 모습은 정겨우면서도 신비롭고 고고해 보였다. 큰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가는 모습은 산수화나 병풍의 십장생도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었는데 눈앞에 펼쳐지니 그 또한 신비한 감동이었다. 내가 한폭의 그림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랄까.
   두루미는 천연기념물로 전 세계적으로 1600여 마리밖에 없다고 한다. 시베리아에 살다가 겨울이 되면 철원에서 겨울을 보내는 겨울 철새이다. 철원은 두루미를 볼 수 있는 국내 유일한 곳이다. 철원은 곡창지대이기 때문에 먹을 것이 풍부하고 한 겨울에도 온천물이 솟는 샘통 철새도래지가 있어서 물고기를 먹을 수 있어 철새들은 철원을 찾는다고 한다. 한탄강의 풍부한 물줄기를 받아 여기저기 만들어 놓은 저수지도 철새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한 몫 거들었을 것이다.
   두루미가족 한 무리가 논 한 가운데에서 부지런히 먹이를 쪼아 먹고 있다. 차 소리 때문인지 후루룩 날아올라 남방한계선 철책을 훌쩍 넘어가 버렸다. 두루미에게 갈라놓은 철책선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두루미들도 남북을 오가며 이상하게 여길지 모르겠다. 똑같은 생김새에 똑같은 말을 하면서 오가지도 않으며 서로 못 본 체 살아가니 말이다. 새처럼 훨훨 날아 자유롭게 남북을 오가면 얼마나 좋을까. 새의 자유로움이 한껏 부러울 따름이다. 나는 모른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북에서 흘러오는 한탄강을 본다. 아무렇지도 않게 비무장지대를 훨훨 날아가는 두루미를 본다. 우리도 그들처럼 분단의 장벽을 허물고 통일로 가는 그날을, 미래의 선물로 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