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히 길을 떠났다. 쪽빛 바탕에 목화솜 같은 하얀 구름을 띄워놓은 하늘 탓이다. 망중한이라고 했던가. 맘먹고 쉬려고 하루 비워 놓은 날, 가을 하늘이 가만히 내버려두질 않았다. 남녘의 하회마을에서는 ‘하회선유줄불놀이’가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소식이 들리는데. 마음이 급했다. 가을 햇살이 설핏 기울 무렵 안동 하회마을로 향했다.
   낙동강물이 휘돌아 나가는 하회마을에 도착한 건 해가 막 저물녘이었다.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 한창이라 하회마을은 사람들로 여간 붐비는 게 아니었다. 저녁놀은 강물에 점차 스며들고 강물은 그 빛을 받아 쉼 없이 반짝거렸다. 노을이 강물 위에 비치는 건지 강물이 노을을 먹는 건지 분간 못할 만큼 빛과 물은 하나가 되어 깊은 음영을 드러내었다. 해질녘의 강물은 그 속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강물의 속울음이 들리는 듯 했다. 사노라면 강물처럼 속으로 울어야 할 때가 많다는 것을 안다. 어느새 내 가슴 속에는 노을을 먹은 붉은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줄불놀이는 해가 완전히 진 뒤 저녁 일곱 시부터 시작되었다. 하회마을의 방풍림으로 심어놓은 만송정과 강 건너에 있는 부용대를 연결한 다섯 개의 줄에서는 서서히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부용대를 향해 점점 타올라가는 다섯 개의 줄불에서는 쉼 없이 불꽃이 튀었다. 불꽃은 타오르는데 소리는 요란하지 않았다. 여느 불꽃놀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자잘한 불꽃들이 은근히 잔잔하게 타들어갔다. 터지는 불꽃은 강물에 떨어지기도 전에 가뭇없이 사라졌다.
   줄불은 뽕나무 숯과 소나무 껍질 숯을 곱게 갈아 소금을 섞어서 만드는데 창호지로 된 좁고 긴 줄불봉지 속에 숯가루를 다져 넣고, 실로 몇 개의 매듭을 지어 만든다. 줄불봉지 밑에다 약쑥으로 불을 붙이면 숯가루를 태우면서 소금이 튈 때마다 폭죽처럼 한마디씩 터지게 된다.
   강물 위에는 청사초롱을 매단 배 한척이 유유히 흘러갔다. 배 위에는 기생들과 어우러져 줄불놀이를 즐기는 선비들이 흥청흥청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옛날 하회선유줄불놀이를 그대로 재연한 모습이었다. 어느 새 강 물살을 따라 발간 달걀불이 떠내려 오고 있었다. 하늘과 물과 불이 만들어 내는 장관이었다. 배 띄울만한 큰 물이 흐르고 바로 앞에는 높은 부용대가 있으며 줄불놀이를 할 만한 재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진 한바탕 꿈같은 불놀이인데 이 고장의 권력과 재력을 갖춘 양반들만을 위한 놀이였다는 게 보는 뒷맛을 씁쓸하게 했다. 흔연한 불꽃 아래 배를 띄우고 노니는 양반들의 모습이 여간 밉살맞아 보이는 게 아니었다.
   줄불이 사그라질 때가 되자 부용대 언덕 위에서는 또 하나의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낙화불놀이를 하기 위해서이다. ‘낙화야!’ 하고 소리 지르면 커다란 불덩어리는 부용대에서 강물위로 던져진다. 사람들이 일제히 ‘낙화야!’ 외치자 낙화는 부용대에서 떨어지다 중간 절벽 바위 위에서 처참히 부서지기도 하고 생솔나뭇가지에 걸리기도 했다. 불꽃은 산산히 흩어졌다. 벼랑을 등에 지고 서 있는 내가 보였고 무서운 힘에 떠밀려 낙화처럼 참담히 부서지는 내가 보였다. 눈물이 났다.
   낙화를 보여주기 위해 부용대 낭떠러지 끝에서 나무 더미에 불을 붙여 내어던지는 이의 심정은 어떤 것인가. 마치 제 몸에 불이 붙어 그 자신이 떨어지는 것 같은 착각은 아니 들겠는가. 흥건한 잔칫집 같은 분위기여야 할 불놀이는 오히려 슬펐다. 타오르는가 싶은데 어느 새 지고 마는 수많은 불꽃은 반짝하고 마는 우리 네 삶을 대변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대의 삶도 저 불꽃과 같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 많은 줄불놀이를 위해서는 한 치의 실수를 범하면 안 될 것이다. 모든 것이 착착 들어맞아야 하는데 그 옛날 하룻저녁 줄불놀이를 위해 몇날 며칠 노역을 해야 했던 노비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들은 화려한 양반들의 불놀이를 준비하며 반역을 꿈꾸지 않았을까. 하늘 아래 왜 사람은 평등하지 않느냐고 가슴 속에서 수없이 외치지 않았을까.
   옛 놀이를 재연하는 것이었지만 그 옛날에 감돌았을 심상치 않은 줄불놀이의 밤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강가에서 불구경을 하고 있는 수많은 관객들은 ‘낙화야, 낙화야’를 애절히 외쳤다. 그러면 커다란 불덩이는 부용대 낭떠러지에서 몸을 던졌다.
   ‘낙화야, 낙화야, 슬퍼하지 마라. 우리네 삶도 너와 다르지 않으니.’
   차마 처참히 부서지는 낙화를 바라보지 못하고 뒤돌아섰다. 밤하늘에는 지상의 불꽃보다 더 총총한 별빛이 뿌려지고 있었다. 오늘이 지나면 가을은 더욱 깊어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