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면 청주 근방에서 가장 가고 싶은 곳이 있다. 무심천의 발원지중 하나인 내암리이다. 아이들과 함께 체험학습을 하기 위해 철마다 찾지만 갈 때마다 고향 같은 따스한 품이 있는 곳이다. 봄이 되면 갖가지 희귀한 야생화로 꽃을 피우고 골골이 물길이 닿는 곳마다 개구리알, 도룡뇽알을 품고 있는 곳이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것들이 나왔을까 싶을 정도로 파충류와 곤충들이 운동회를 벌이듯 여기저기 튀어 오르고 날아다니는 낙원 같은 곳이다. 여름이면 사위질빵꽃이 흐드러지고 가을이면 낙엽송의 금비늘이 바람을 타고 떨어지는 곳, 가만히 앉아 바람에 일렁이는 내암리 계곡을 보노라면 가슴 밑바닥부터 울렁울렁 따스함이 고여 오는 곳이다.

  엊그제 아이들과 함께 내암리 계곡을 찾았다. 아직 피서철도 아닌데, 어느새 골짜기 안에는 고기를 굽는 어른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며 좋아라 소리를 지르며 내암리 생태를 관찰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밀려오는 삼겹살 굽는 냄새. 그 냄새가 그다지 좋게만 느껴지지 않은 건, 깨끗한 계곡에 와서 꼭 해야 하는 일이 고기를 구워 먹는 일밖에 없는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어느 여류작가가 그러한 우리의 모습을 비판한 적이 있는데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경치 좋은 데서 고기부터 굽고 보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물 맑고 경치 좋은 데 오면 조용히 산책을 할 수도 차를 마실 수도 있는데 삼겹살부터 굽고 보는 것이 문화가 된 것처럼 여겨져 씁쓸했다. 고기를 구워먹는 것까지는 좋으나 그 일로 인해 계곡의 청명함은 사라지게 되고 그 속에 살고 있던 많은 수서생물들이 사라지게 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여기저기 널어져 있는 쓰레기는 계곡의 깨끗함을 잃게 하며 찾는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준다.

  체험학습을 온 아이들에게 고기를 굽는 어른들의 모습은 또 하나의 교육이다. 이다음에 아이들이 자라 계곡에 오면 고기부터 굽게 될 것이라는 것을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계곡 속에 어떤 수서생물이 살고 있는지 알고, 너울너울 날아다니는 꼬리명주나비의 아름다움과, 부전나비의 신비한 푸른빛과 여기저기 튀어 다니는 메뚜기, 여치, 사마귀, 공중에 그림을 그리며 날아다니는 잠자리의 생태를 알게 되면 계곡에서 고기를 굽지 않게 될 것이다.

  아무리 작은 존재라고 하더라도 알면 관심을 갖게 되고 사랑의 눈길을 보내게 된다. 온전히 그들의 입장이 될 수 없지만 한번쯤 자연의 작은 생명들을 생각해 본다면 결코 계곡에서 뜨거운 연기를 피워 올리며 고기를 굽지는 않을 것이다.

  계곡에 오면 온몸으로 노는 사람은 아이들이다. 어른들은 계곡 주변에 앉아 하루 종일 먹거나 자거나 하는 것뿐인데 굳이 계곡을 찾을 필요가 무에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도시락을 싸오거나 조리된 음식을 가져와서 먹는 것이 쓰레기도 덜 만들고 계곡물도 덜 오염시키는 길이다. 이제는 경치 좋은 데 와서 고기부터 굽는 잘못된 인식을 바꿔야할 때이다.
엊그제 본 내암리 계곡은 이른 아침에 막 세수를 하고 나온 얼굴처럼 맑고 신선했다. 몇 년 전 내가 처음 내암리를 찾았을 때처럼 발이 시릴 정도로 물이 차가웠다. 비가 많이 와서 그런가? 작년부터는 계곡 속에 들어와도 차지가 않아 뭔가 내암리의 기운이 깨졌다는 생각을 했는데 엊그제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내암리를 돌아보며 다시 예전의 청명한 기운으로 돌아와 내내 보전하길 빌어 보았다. 사람들의 발길에 여름 내내 몸살을 앓게 될 내암리를 돌아보며 내암리의 여름나기가 힘에 덜 부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말간 물속에 자갈빛 등을 한 무당개구리가 펄쩍 뛰어 올랐다. 아이들은 ‘무당개구리다!’외치며 쫓아갔다. 형광 빛 빨간 배를 한 무당개구리가 제철을 만난 듯 뛰어다닌다.
온전히 보존된 맑은 자연 생태 속에서 아이들이 건강히 뛰어 노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내암리로 오래도록 보존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