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간 겨울보다 더 날카로운 바람이 불었다. 꽃샘추위라고 하지만 워낙 따듯한 겨울을 보낸 터라 유난히 매섭게 느껴졌다. 날 선 바람이 수그러들자 완연한 봄이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내암리에 벌써 노루귀가 피었다는 둥, 이목리에 앉은부채가 올라왔다는 둥.

   도저히 심란해서 집에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날 잡아서 노루귀 꽃자리를 찾아보고 앉은부채 자생지를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봄맞이를 하기로 했다.

   노루귀를 찾아 내암리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 논두렁 옆 수로에는 산개구리 알, 도롱뇽 알이 지천이다. 고인 물속, 우무질에 싸인 알들이 질펀하게 둥둥 떠 있다. 따뜻한 바람과 햇볕은 금방이라도 알들을 깨워 줄 것처럼 물 위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알들이 금방이라도 깨어나 물속을 헤엄칠 것 같은 봄날이다.

   헌데 알 낳을 곳이 줄어든 탓일까? 올 해는 유난히 한 곳에 개구리알이 많다. 이러다가 봄 가뭄이라도 들면 알은 채 깨어나기도 전에 말라붙을 텐데. 무사히 깨어난다 하더라도 한 곳에 개체수가 너무 많으면 살아남을 확률은 낮아진다. 공연히 걱정부터 앞선다. 내암리 주변을 돌아보니 길도 넓히고 나무도 베어 내어 개발의 손길이 빠른 속도로 미치고 있었다. 내암리는 무심천 발원지의 하나로 보존의 필요성이 있는 곳이다. 그런데 아무런 제지 없이 마구 개발되고 있는 것을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산길을 오르는데 땅 냄새 풀냄새가 코끝에 맴돈다. 확실히 봄은 봄이다.
커다란 나무 한 그루 쓰러져 있고 거기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노루귀가 있을 거라는 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세며 길을 찾아 들었다.
습하고 양지바른 곳에는 어김없이 괭이눈이 노란 눈을 뜨고 세상을 내다보고 있다. 햇볕으로 노란 물을 들인 듯 말갛게 피어있다. 노루귀를 찾는 눈길 끝에는 괭이눈이 반길 뿐 노루귀는 쉽게 보이지 않았다.

   그늘진 곳에 창백하게 피어 있을 노루귀를 그리며 찾았다. 한참을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개고사리만 천연덕스럽게 언덕 위에 퍼드러졌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자 연보랏빛 노루귀 꽃빛깔이 환영처럼 보이기도 했다. 도대체 어디 있다는 얘기지? 아무한테나 보이겠냐는 지인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그렇다면 내 눈에 안 보일 이유가 뭐야? 혼자 되물어 보기도 했다. 그러다 그러한 되물음이 곧 눈을 멀게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아무 때나 만나고 아무 곳에나 있었다면 이렇게 시간을 따로 내어 만나러 오기 위해 며칠 전부터 공을 들였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짧은 봄볕에 잠깐 얼굴을 내밀다 지고 말기에 더욱 앙증맞고 애잔한 꽃이다. 그래서 더욱 아슴푸레하게 눈에 밟히는지도 모르겠다. 꽃이 벌써 졌다 해도 그 흔적이라도 찾으려고 아무리 낙엽을 쓸어 샅샅이 뒤져도 끝내 노루귀는 보이지 않았다. 지난 번 앉은부채를 보러 갔다가 못 찾고 그냥 돌아왔을 때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워낙 길눈이 어두워서 왔던 곳에 다시 올 때면 엉뚱한 곳으로 가는 통에 한심스러울 지경인데 말로만 듣고 이 자리를 찾아온 게 섣부르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곳 어딘가에 오면 얼추 눈에 띨 줄 알았는데 행방이 묘연했다.

   노루귀는 그늘에 자라기 때문에 다른 식물들이 활개를 치기 전에 꽃가루받이를 해야 한다. 그래서 이른 봄 눈 속에 핀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워낙 이른 봄에 피기 때문에 보온용 솜털을 많이 달고 나온다. 꽃이 지고 잎이 나올 때 털을 보송보송 단 노루의 귀처럼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봄 마중을 너무 늦게 나온 것인가? 결국 내암리 계곡을 등에 지고 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고개는 왜 자꾸 뒤로 돌아 가는지, 아쉬운 마음을 오솔길마다 내려놓고 내암리를 나왔다.

   앉은부채로 마음을 달래려고 이목리로 향했다. 여러 번 갔으니 자생지를 찾는 데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면 뭐 하나, 여지없이 딴 곳을 기웃거려 동행했던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웃음을 샀다.

   이래저래 우세스러운 봄 마중이다. 그래도 봄은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