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중국 여행을 다녀왔다. 무척 넓은 땅이기 때문에 중국을 다녀왔다는 말보다 중국의 어느 지역을 다녀왔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지난여름에는 실크로드의 일부인 우루무치와 투루판을, 이번 겨울엔 산동지방을 다녀왔다. 중국 사람들조차 나라 땅 전역을 밟아보고 죽는 것이 소원이라고 할 정도로 드넓은 땅덩어리를 자랑하는 곳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지평선만 아스라한 중국의 드넓은 땅이 처음에는 얼마나 부럽던지.

   곧게 뻗은 도로와 끝없이 펼쳐진 들판, 그런데 어느 곳을 가도 똑같은 길이 이어져 차창 밖 풍경은 지루할 지경이었다. 크고 작은 산을 끼고 있어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는 우리나라 도로와 사뭇 대조적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이러한 풍경을 무척이나 좋아한다고 한다. 이번 중국 여행을 통해 우리 강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다시금 느꼈다. 바깥에 나가봐야 내가 몸담고 있는 곳이 얼마나 소중하고 좋은 곳인지 알 수 있다는 말이 새삼 실감났다.

   엊그제 속리산 천왕봉에서 첩첩이 펼쳐진 산자락을 보며 우리 강산의 아름다움을 다시 확인했다. 겨울산행인지라 추위와 미끄러움 때문에 잔뜩 긴장하고 산을 오르긴 했지만 속리산의 아름다움과 내가 살고 있는 땅에 대한 자부심을 한껏 느끼고 온 날이었다. 산을 오르는 내내 바람 한 점 없이 따뜻한 햇볕이 비춰주어 축복 받은 산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맑은 겨울 햇빛은 산자락 골골이 하얗게 덮고 있는 흰눈을 비추고 등산로마다 기세등등하게 맹위를 떨치고 있는 조릿대 잎사귀 위에 말갛게 부서지고 있었다. 맑은 날씨 덕분에 먼 곳까지 시야 트여 봉우리를 오를 때마다 장관을 볼 수 있었다. 그날 산행의 일등공신은 아무래도 맑은 날씨인 것 같았다.

   나는 이제껏 속리산을 두어 번 가보았는데 그 가봤다고 하는 것도 법주사 옆을 거쳐 문장대에 오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번 산행을 통해 속리산을 가보았다고 하는 말을 좀 더 신중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법주사를 지나 세심정을 거쳐 따뜻한 겨울 햇볕 아래 아늑히 졸고 있는 상환암을 지나 속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을 오르고 다시 천왕봉에서 비로봉으로 비로봉에서 입석대를 거쳐 신선대에 이르는 동안 속리산의 매력에 흠뻑 빠져 들었다.

   상상을 초월한 바위의 널따란 품을 곁에서 우러르는 것도 쉽게 맛볼 수 없는 장중한 기쁨이었다.

   입석대에서 바라본 속리산 자락은 마치 헬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시원한 풍경을 선사해 주었다. 먼 데 첩첩이 펼쳐진 산들이 발아래 놓여 있는데 마치 하늘을 나는 것처럼 가슴이 탁 트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좀 더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함께 하지 못한 사람들 얼굴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좋고 맛난 것을 보면 다른 사람들과 꼭 다시 찾는 내 습성이 입석대에서도 불쑥불쑥 솟아올랐다.

   아름다운 속리산의 풍광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연발하는 사이 해는 어느덧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눈 쌓인 등산로 때문에 얼른 내려가야 할 것 같아 신선대에서 산행을 접고 출발지로 향했다.

   산을 내려가는 도중 관음암의 풍경은 또 한번 마음을 사로잡았다. 칼로 바위를 자른 것처럼 돌 틈이 나있는데 딱 한 사람 정도 지나갈 틈이 나 있었다. 둥글게 휘어진 관음암으로 향하는 바윗길을 지나가는데 꼬부라진 길 뒤에 마을이 자리한 고샅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오묘하고 신비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산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눈은 감겨도 의식은 말갛게 개어와 보았던 풍경이 일일이 떠올랐다. 정녕 잊지 못할 풍광이었다. 우리 고장에서 속리산을 제일로 치는 진정한 의미를 이제야 느낀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산행을 함께 했던 사람들의 따스한 정과 멋을 한껏 느낀 날이기도 했다.

   이렇듯 우리 강산은 아름답고 멋지다. 밋밋하고 광활한 중국 땅덩어리를 부러워했던 것이 잠시나마 후회되던 순간이기도 했다.
   속리산은 그 날 내게 말했다.

   “넌, 내게 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