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끝났다. 수험생과 그 가족들은 가슴 졸인 시간을 보낸 후 시원함과 아쉬움을 느꼈을 것이다. 큰 나무로 자라기 위해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거쳐야할 통과의례의 하나를 지난 것이다. 부모라면 누구나 아이들이 곧고 튼실하게 자라서 제 몫의 삶을 누리길 바랄 것이다. 굳건한 나무들처럼.

   우연히 청주의 오근장역 맞은 편 공군부대 앞을 지나다가 곧게 자란 메타세쿼이아가 도열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한눈에 보아도 곧게 자란 모습이 가슴에 꽉 차오도록 웅장했다. 메타세쿼이아 아래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가지가 무수히 뻗었는데도 주 가지는 어느 한 군데 구부러진 곳이 없다. 그것은 줄기가 곧게 자라는 종의 특성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그 나무를 보며 아이들도 이렇게 곧게 자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엄마 품에서 조금씩 벗어나 제 색깔을 찾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고등학생들이 떠올랐다. 우리의 아이들도 이렇게 곧게 자라 준다면 무슨 걱정이 있을까, 한 눈 팔지 않고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가는 메타세쿼이아처럼 자라 준다면 고맙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햇볕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자신의 몸을 이리 저리 구부리며 자라는 우리 소나무가 떠올랐다. 소나무는 구부러졌어도 그 나름의 멋이 있지 않은가. 큰 바위 위나 산꼭대기에 홀로 푸른 소나무는 또 얼마나 멋진 풍광을 만들어 내는가. 소나무는 그렇게 홀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지 않는가.

   그렇다면 메타세쿼이아가 한 그루만 서있다고 생각해 보자, 과연 우리의 소나무가 풍기는 멋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메타세쿼이아는 장병들이 도열하듯 여러 그루 줄맞춰 서있을 때, 제 멋이 난다.

   청소년들은 지금 줄맞춰 서 있는 메타세쿼이아처럼 똑같은 모습으로 보이지만 나중에는 우리의 소나무처럼 홀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재목으로 자랄 것이다.

   길가에 떨어진 메타세쿼이아 열매를 보았다. 생각보다 무척 작아서 놀랐다. 멍석딸기 크기의 솔방울 모양인데 날개 달린 씨앗은 더욱 작았다. 세상에, 이다지 작은 씨앗에서 어떻게 이렇게 큰 나무가 나올까. 메타세쿼이아는 공룡이 살던 시대부터 살아남은 화석나무이다. 고 작은 씨앗 속에 그토록 끈질긴 생명력이 숨어 있는 것이다. 경외의 눈길로 메타세쿼이아를 올려다보았다. 작은 것 속에 큰 꿈을 품은 나무였다. 시작은 아주 작았으나 그 속에 품은 꿈은 억만 년이 흘러도 변함이 없었다. 웅장하게 자란 나무 둥치를 쓰다듬어 보았다. 믿음직스럽고 대견했다. 아이들도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해 큰 꿈으로 이어지듯 그렇게 웅장하고 끈질기게 꿈을 키웠으면 좋겠다.

   어느새 12월이다. 일 년의 막바지이다. 메타세쿼이아 그 길에 떨어진 바늘잎만큼이나 많은 생각이 오간다. 뭔가 시작하기엔 늦은 것 같고 그렇다고 마무리하기엔 아쉬움이 남는 그런 시간이다. 마무리는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다시 준비하고 힘을 비축하는 시간이다. 메타세쿼이아 끝자락에 주렁주렁 매달린 겨울눈처럼 말이다. 내년 봄에 새로이 피어날 이파리를 위해 메타세쿼이아는 금빛으로 물든 노란 잎을 하나하나 떨어트리며 아름답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

   우리의 아이들도 어른이 되어 이파리를 활짝 펼 수 있는 잎눈을 고이고이 키우고 있을 것이다. 나무처럼 많은 것을 나누어 줄 줄 아는 그런 사람으로 자라길 메타세쿼이아 아래서 빌어 본다.



* 메타세쿼이아(metasequoia):낙우송과의 낙엽 가는잎(침엽) 키큰나무(교목). 35미터까지 자라고 가을에 붉은 갈색으로 단풍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