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그것도 낙타행렬이 모래사막을 넘는 아스라한 그림으로 마음을 달래고 있던 실크로드로.  드넓은 중국의 일부인 서역의 신장웨이우얼자치구에 속한 우루무치와 투루판을 다녀왔다.
예상대로 건조하고 뜨거운 날씨였다. 고비사막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져 있고 풀 한포기 나지 않는 모래산이 즐비한 곳이었다. 지구의 모든 생명이 파괴되면 아마 이와 같은 모습이 아닐까, 할 정도로 초록색은 찾아 볼 수 없는 거친 땅이었다. 첫날 가게 된 곳은 교하(交河)고성이었다. 한나라 때 서역 일대에 있던 남차사 왕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교하는 말 그대로 두 개의 물줄기가 만나는 곳이라는 뜻이다. 두 개의 큰 강이 깎아지른 듯 높은 절벽을 만들어 천혜의 요새를 이룬 곳이다. 수천 년의 세월을 견딘 성의 흔적이 애처롭게 남아 있다. 얼룩덜룩 관광객의 발자취와 누런 모래바람만 나부낄 뿐 황량하기 그지없는 곳이었다. 이곳의 건물은 쌓아 올린 것이 아니라 거꾸로 위에서 아래로 파 내려가서 만들었다고 한다. 살아남기 위해 그들만의 지혜로 만든 요새였다.  멀리서 보면 마치 개미들이 만든 개미굴처럼 보였다. 이 성에 역사가 없었다면 우주인들이 진흙으로 손장난 해놓은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차례 뜨거운 바람이 불어오자 뿌옇다 못해 빨간 흙가루가 얼굴로 후욱 달려들었다. 한동안 눈을 뜰 수가 없다.
그렇게 성을 돌고 있는데 간혹 땅바닥에 나 있는 초록색 풀이 눈에 띄었다. 가시가 줄기처럼 뻗어 있어서 보기에도 무척이나 억세고 날카로워 보였다. 그것은 낙타풀이었다. 중국의 고비형 사막에서 자라는 낙타풀. 요즘이 꽃 피는 시기인지 콩과 모양의 자홍색 꽃이 만발한 것이 있는가 하면, 초록색 가시를 잔뜩 달고 고슴도치처럼 등을 구부린 모양도 있었다. 그것도 가뭄에 콩 나듯 가끔 볼 수 있었다. 물이 없는 사막에 잘 자라는 풀로 사막을 지나는 낙타의 유일한 먹이란다. 어렸을 때는 가시가 연해 양도 먹을 수 있지만 조금 더 자라면  가시게 억세져 낙타가 먹을 때 피를 철철 흘리며 먹는다고 한다. 낙타도 사막 속에서 살기 위해서는 가시에 찔려 입안이 다 찢겨져도 먹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살아 있다는 건, 살아야 한다는 건,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포함한 말일 것이다. 반면 낙타풀은 강파른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시를 달며 그래도 뜯어 먹는 것들로부터 제 몸을 보호하기 위해 날카롭게 가시를 벼른다. 이 극한의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가시를 삼켜야 하는 낙타와 낙타풀의 숨바꼭질 같은 숙명에 가슴 아파왔다. 낙타풀도 처음부터 가시가 있었던 건 아닐 것이다. 낙타풀이 어릴 때는 양들도 먹는다고 하지 않던가.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모진 사막 속에서 뜨거운 태양과 맞서 목마름을 견디고 피를 흘리며 뜯어 먹는 낙타로부터 제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렇게 모진 가시를 달았을 것이다.
 누가 처음부터 가시를 품고 이 세상에 나오겠는가. 살다가 살다가 견딜 수 없을 때 가슴에 가시 몇 개 돋기 시작하고 그것이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되고 때론 죽창도 되겠지. 삶의 고달픔이 안겨 준 흔적이리라.
그렇다고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해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가시는 제 몸을 향해 있어 날을 세울 때마다 더욱 아픈 건 제 자신이다.
낙타풀도 바람이 불어 가지가 흔들릴 때마다 제 스스로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낼까. 제대로 한번 마음 놓고 자신을 끌어안지도 못했으리라.
낙타풀도 처음부터 낙타에게 상처를 주고 싶었던 건 아닐 것이다. 피를 철철 흘리며 먹는 낙타보다 그렇게 날을 세우며 살아야 하는 낙타풀이 실은 더욱 아플지도 모르겠다. 우루무치 공항을 떠나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가슴 한 쪽에 접어 두었던 낙타풀을 꺼내 시(졸작이지만)로 써 보았다. 낙타풀 속에서 나 자신을 보고 그 누군가를 보았기 때문이다. 낙타풀, 그 애달프고 가련한 삶이여.
낙타풀 처음부터 가시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뜨거운 태양,
불어오는 모래바람 어디 한 군데
몸 숨길만한 곳도 없었어요.
물 한 방울 찾을 길 없었어요.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어요. 처음부터 가시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사막의 낙타도 양도
피를 흘리며 나를 먹지만 처음부터 상처주고 싶었던 건
아니에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