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간다. 차창 밖의 나무들은 여름 잔치를 준비한다. 나무 잎사귀는 연둣빛에서 초록으로 물들어간다. 참으로 풍성하다.

   얼마 전, 함께 했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의 모습은 5월의 나무들처럼 풍성했으며 아름다웠고 맑았다. 생각만 해도 절로 가슴 속에 따스함이 고여 온다. 처음으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된 만남이기도 했다.

   시내 모 초등학교에서 어린이와 어머니께 생태 안내를 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자매학교인 맹학교(시각장애인을 위한 학교) 친구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었다. 진행을 하다보면 아무래도 비장애인 위주의 교육이 될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어떻게 해야 모두에게 좋은 시간이 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며 집을 나섰다.

   수목원에서 맹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인솔 선생님께서 비장애인 친구들이 안내자가 될 수 있도록 짝을 지어 주라고 귀띔해 주셨다. 맞다, 그렇게 하면 되겠구나. 동그랗게 모여 소개를 한 후 서로 짝이 되어 지내자고 했다. 아이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먼저 안내자가 되겠다고 하였다. 그야말로 스스럼이 없었다. 순간 놀랐다. 조금은 머뭇거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놀란 내가 부끄러웠다.

   짝을 지어 초록으로 가득한 수목원 안으로 들어갔다. 비장애인 친구와 장애인 친구들이 손을 꼭 잡고 길을 걸었다. 옆으로 갈라진 벚나무 껍질을 손으로 느껴보자고 했다. 안내자가 된 비장애인 친구는 먼저 조심스레 장애인 친구의 손을 벚나무에 대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정말, 그러네. 환하게 웃던 아이들의 얼굴. 수목원을 도는 내내 아이들은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고 어느 누구도 짜증을 내거나 다투는 일도 없었다.

   아이들은 길 안내도 하고 선생님께 들은 얘기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조심해, 계단이 있는데 아래로 내려가는 돌계단이야. 이건 자작나무 이파리인데 잎자루가 무척 길대. 만져 봐. 이건 계수나무인데 잎이 하트 모양이래.”
   “정말, 그러네, 야 신기하다. 우리 먹어볼까? 무슨 맛이 나나?”
   곁에서 아이들의 대화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양 볼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전율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예쁠 수가 있을까. 수목원에 피어 있는 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서로 손을 잡고 뛰기도 하였는데 뛴다는 표현보다 날아다닌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앞이 잘 안 보여서 다니기 힘들어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은 기우였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들판에 나온 야생 토끼들처럼 두 팔을 벌리며 뛰기도 했고 큰소리로 웃기도 했다.

   맨발체험 하는 곳에서 양말을 벗고 손에 손을 잡고 걷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올록볼록 자갈길을 지나 황토가 있는 곳을 지날 때였다. 붉은 흙바닥에 검지손톱만한 연분홍 꽃잎이 떨어져 있었다. 모과꽃이었다. 마침 오후 프로그램이 떨어진 꽃잎으로 꽃 편지지 만들어 편지 쓰는 시간이어서 떨어진 꽃잎을 줍자고 했다. 큰 모과나무 몇 그루가 있는데 그 아래 낱 장 낱 장 떨어진 꽃잎이 제법 소복했다. 아이들은 꽃잎이 으깨질 새라 조심스럽게 줍기 시작했다. 모두 쪼그려 앉아 고개를 숙이고 꽃잎을 줍는데 장애인 친구들만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차,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엎드려 꽃잎을 줍던 아이들이 손 안에 가득한 꽃잎을 장애인 친구에게 넘겨주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또 한번 가슴이 울컥했다. 장애인 친구들은 두 손을 벌려 꽃잎을 받아 꽃봉투에 조심스레 넣었다. 이렇게 소중할 수가. 나는 그들의 손을 꼭 잡으며 감사한 마음으로 꽃잎을 받았다. 땅바닥에 떨어진 꽃잎을 주워 옆에 서 있는 친구 손에 넘겨주고 그 친구는 소중히 받아 들고 다시 선생님이 들고 있는 꽃봉투에 넣는 것을 여러 번 하였다.

   아이들과 함께 하며 깨닫는 건, 늘 아이들을 통해서 다시 배운다는 것이다. 모과꽃은 어여쁜 천사들 머리 위에 하늘하늘 꽃잎을 떨구고 있었으며 5월의 바람은 초록빛깔로 아이들 머리칼을 쓸어 주고 있었다.

   모과꽃은 꽃봉오리부터 활짝 필 때까지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모든 꽃이 그렇지 않을까마는. 과일 중에서 제일 못생겼다는 모과의 생김새와 꽃이 너무나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더욱 예쁜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모과꽃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감탄을 자아낼 만큼 아름답다. 음전하고 조신한 새색시의 볼연지 같은 꽃빛깔에 모양새 또한 조심스레 안으로 오므라들어 앙증맞기 이를 데 없다. 모과라는 이름은 목과(木瓜)에서 나온 것이다. 잘 익은 노란 열매가 마치 참외와 같아 ‘나무참외’라는 뜻이라고 한다.

   모과를 보면 사람들은 세 번 놀란다고 한다. 모과가 너무 못 생겨서 놀라고 못생긴 거에 비해 향이 좋아서 놀라고 향이 좋은 거에 비해 맛이 없어서 놀란다고 한다. 나는 모과나무를 보며 두 가지 더 놀란 점이 있다. 꽃이 말할 수 없이 예뻐서 그렇고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들의 맑은 모습을 모과나무 아래서 보았기 때문이다. 모과꽃잎을 줍는 아이들 머리 위로 새로운 꽃잎이 떨어진다. 온몸으로 바람과 꽃향기를 느끼는 친구의 머리 위에도 연분홍빛 모과꽃잎이 내려 앉는다. 이제 해마다 보게 될 모과꽃에는 이 아이들의 모습이 들어 있겠다.

   함께 맛난 점심을 먹고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그러자 맹학교 친구 중에 한 명이 오늘 짝꿍이 되어 주었던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찾았다. 친구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안녕, 오늘 고마웠어. 다음에 또 보자.”
   맑고 씩씩했다. 나는 또 한번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들이 마주 서서 인사하는 사이로 5월의 바람이 지나갔다. 향기롭다. 나는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2006.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