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내게는 평일보다 훨씬 복잡하게 얽히는 날이다. 자질구레한 집안일을 해야하고 시댁과 친정을 오가야 한다. 집안의 어른들을 일요일마다 찾아뵙는 것은 아니지만 별일 없이 집에 있는 일요일은 공연히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처럼 마음이 켕긴다. 그 날도 홀로 밥을 끓여 드실 친정어머니 생각에 부랴부랴 집을 치우고 친정으로 향했다. 저녁밥을 지어먹고 친정집 장독에서 헌 자배기 몇 개 챙겼다. 플라스틱 그릇에 담겨 있는 부레옥잠의 집을 옮겨주기 위함이다. 자배기에 수서식물을 넣어 놓으면 편안한 기분이 들면서 운치 있어 보인다.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향하다가 상당산성에 올라 일몰을 보았다. 산등성이 위로 이우는 저녁 해, 계절은 가고 사람만 남아 왠지 서글펐다. 황혼녘에 계신 양쪽 부모님들을 생각하며 인생이 무엇인지 원초적인 물음을 가져보았다. 생각할수록 사는 게 참 쓸쓸할 뿐이다.
   집에 도착하여 현관문을 따는데 열쇠가 돌아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면 문이 잠겨 있지 않았다는 것인데, 허겁지겁 나오다가 문 잠그는 것을 깜빡 했는가?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일어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섰지만 별다른 낌새는 없었다. 휴우~.
   친정 집에서 업어온 자배기를 들고 부레옥잠이 있는 베란다로 향했다. 얼마 전에 얻어온 부레옥잠과, 물배추, 생이가래와 개구리밥이 물 위를 초록색으로 물들이며 잘 자라고 있었다. 자배기로 집을 갈아주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싸들고 온 것을 풀며 부레옥잠을 들여다 보았다. 어머나! 이게 웬일이야. 나도 모르게 ‘어머나! 어머나!’를 연발하였다. 방에 있던 아이들이 베란다로 뛰쳐나왔다.
   “왜 그래? 뭐 도둑맞은 거 있어?”하고 큰 아이가 물었다.
   “이것 좀 봐, 부레옥잠이 꽃을 피웠어.”
   “에이, 엄마, 놀랬잖아. 도둑 맞은 거 있는 줄 알고…….”
   도둑? 맞다. 내게는 부레옥잠꽃이 도둑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한순간에 사로잡다니. 도둑도 보통 도둑이 아니었다. 나는 온통 부레옥잠꽃에 마음을 빼앗겼다. 안도감이 드는지 아이들도 부레옥잠꽃에 눈을 맞추었다. 부레옥잠꽃 한 송이가 연보랏빛 갑사한복을 차려 입고 물 속에서 솟아올라 있다. 마치 나 좀 보아 달라는 듯 거실을 향해 그 환한 얼굴을 활짝 펴고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질 리는 없고 분명 물에서 솟았을 텐데, 어찌하여 그간 아무런 낌새도 없었다는 말인가. 이렇듯 아무도 보아주는 이 없는 빈집에서 꽃을 피워내다니. 너무 놀라워 그 꽃을 바라보는 내 심사는 무아지경이었다.
   한참 동안 말없이 부레옥잠꽃을 눈으로 어루만졌다. 꽃잎은 여섯 장인데 그 중 한 잎에는 부챗살 모양의 진보랏빛 무늬가 있고 그 한 가운데에 노란색으로 포인트까지 주었다. 참 기묘하게 생긴 꽃이다. 무늬가 있는 꽃잎은 벌레를 유혹하기 위한 활주로인 셈이다. 부레옥잠은 충매화이기 때문에 벌레들이 제대로 수술부위에 닿아야만 수분이 된다. 수술 부위로 잘 안내하기 위해 그 부분은 무늬와 색이 화려하다. 물 위에 뜨기 위해 줄기마다 부레를 달고 있는 것처럼 식물은 살아남기 위해,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볼수록 기특하고 신비롭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물에서 솟은 선녀는 단 하루밖에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아리아리한 아름다움이 엿보인다. 활짝 편 날개옷은 물에 녹듯 단 하루만에 잦아 붙는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꽃이다. 꽃이 지고 나면 꽃대는 물 속으로 꼬부라든다. 자력에 이끌리듯 구부러진 모습이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뭍에 사는 식물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는 흔들린다. 특히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고개는 무척이나 힘에 부친다. 식은 바람에, 햇빛의 기운이 한풀 꺾이는 노을에 쓸쓸함이 파도처럼 덮쳐온다.
   계절이 넘어가는 길목에서 만난 부레옥잠, 내게는 귀하디 귀한 손님이었다. 아니 내 마음을 훔친 도둑이었다. 계절을 보내는 아쉬움과 새 계절을 맞이하는 두려움을 잠시나마 잊게 한 뒤 살맛나게 만든 후 하루만에 훌쩍 떠나버린 손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