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껏 살아오면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 아픈 곳이 두 곳 있다. 한 곳은 나의 고향 땅이고 한 곳은 원흥이 방죽이다. 고향 땅은 젊은 아버지의 죽음이 있었고 아직 젊은 어머니의 힘겨운 삶이 무늬졌던 곳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고향 땅 이곳저곳은 내게 슬픔의 덩어리였다. 등허리를 빨갛게 드러낸 채 듬성듬성 봉분을 껴안고 있던 뒷동산, 문둥이가 살고 있다던 봄날 창꽃 핀 유매산골, 새까맣게 입을 벌리고 있던 부숫굴. 그것들은 두려움이었고 슬픔이었다.
   고향을 떠나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내 어머니가 혼자 되었을 그 즈음의 나이가 되었건만 어쩌자고 슬픔을 안고 있는 원흥이 방죽을 가슴에 들였는지 모르겠다. 방죽에 깃들어 사는 작은 생명들의 몸짓이, 방죽을 찾아오는 뭇 생명들의 몸짓이 애처로워 두 눈을 뜨고 차마 바라볼 수가 없다.

   원흥이 방죽은 청주의 도심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 욕심 없이 이웃과 정을 나누던 집 몇 채가 있었고 집 앞에는 너른 뜨락 같은 논과 밭이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방죽이 하나 있었으며 방죽 옆에 난 오솔길 위에는 작은 암자가 있던 그런 동네였다. 밤이면 고라니가 물 마시러 내려오고 오소리와 족제비 식구들이 산책을 나오던 그런 동네였다. 두꺼비와 개구리가 물뱀을 피해 먹이를 찾던 그런 곳이었다. 봄이 되면 쌍쌍의 금두꺼비가 짝짓기를하고 수십만 마리의 알을 낳고 새까만 올챙이 떼가 유영을 하던 그런 곳이었다.
   도시가 커짐에 따라 택지개발이 될 원흥이 땅은 지금 천갈래 만갈래 찢겨져 그 평화롭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숲이 우거졌던 구룡산 자락은 깎여 나가 터 고르기가 한창이고 뜨락 같던 논밭은 황토흙으로 덮여 인간들이 밟을 콘크리트를 깔기 위해 포그레인과 덤프트럭이 연신 드나들고 있다.

   그곳에 살고 있는 뭇 생명들을 위해 개발할 땅의 조금만 양보해 달라고, 최소한 그들이 살아갈 공간은 있어야 된다고 그렇게 애원하고 매달려도 토지공사나 그 땅에 들어올 청주 법원과 검찰청은 외눈하나 까딱 하지 않는다. 눈높이가 그렇게 위대하고 높으신 분들이 땅에 바짝 엎드려 사는 작은 생명들이 눈에 들어오기나 하겠는가마는, 그래도 그들도 이 땅에 살아갈 사람들인데, 그 들의 후손도 이 땅에 살아갈 사람들일 텐데. 사람이 살기 위해, 사람보다 더 가까이 그 땅에 사는 작은 생명들을 살려야 하는 것인데, 왜 그냥 거기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고 파헤치고 깔아뭉개야 하는지.

   점차 옛 모습을 잃어 가는 원흥이 방죽 일대를 둘러보면 인간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이기적인지를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부끄럽다. 몹시. 나도 사람이라는 것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픈 것은 그만큼 그곳에 대한 사랑이 깊기 때문이다. 내 몸에 흐르는 핏속에 그곳의 물과 바람과 나무들의 움직임이 진하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원흥이 방죽은 도심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도심에 살고 있는 각박한 어른들에게 편안히 숨을 고르게 할 수 있는 곳이고 무상으로 정을 베풀어도 아깝지 않은 작은 생명들이 있는 곳이다.

   아이들이 어른이 돼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가슴 아려오는, 두어 곳은 남겨 두어야 하지 않을까. 그게 지금을 살아가는 이 땅의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지 않을까.
   사람들은 언제 땅의 신음소리에, 작은 생명이 스러지는 소리에 귀가 트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