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웹진입니다.

꿀이 든 고깔모자, 물봉선

달을 향한 그리움, 달맞이꽃

첫눈이 내릴 때까지 봉숭아 꽃물이 손톱에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어느새 서늘한 바람이 불고 한 여름에 들인 봉숭아 꽃물은 송편모양이 되어 손톱 끝에 매달려 있다. 요즘엔 봉숭아 꽃물도 문구점에 가면 살 수 있다. 공장에서 가루가 되어 나오기 때문에 물에 개어 손톱에 올려놓고 십 분 정도 지나면 발갛게 물이 든다. 비닐로 싸고 실로 꽁꽁 동여맬 필요도 없다. 밤새 이불에 물들일 일도 없다. 그런데 백반과 소금을 넣고 돌로 빻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짓찧을 때 나는 봉숭아꽃의 독특한 향이 없고 정성스럽게 싸맬 필요가 없으니 정서는 사라지고 목적만 남은 아주 건조한 일이 되어 버린 것 같다. 매니큐어 칠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집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봉숭아는 옛날부터 아주 친근한 꽃 중의 하나였다. 바로 꽃물 들이기 추억 때문일 것이다. 산이나 들녘에서 볼 수 있는 봉숭아가 있는데 그것은 물봉선이라고 한다. 꽃 색깔이 분홍색이기 때문에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멀리서 보면 분홍저고리에 초록치마를 차려입은 새색시처럼 보인다. 물봉선이 바람에 흔들리면 얇은 께끼저고리와 치마가 한들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물봉선은 물가나 응달에서 자란다. 오염된 곳에서는 잘 자라지 못한다. 모래알이 보일 정도로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주변이면 물봉선이 자랄 수 있는 좋은 조건이다. 줄기는 붉으며 마디가 툭 불거져 소의 무릎처럼 보인다. 꽃잎은 세 개인데 꽃받침인 꽃뿔이 나비의 더듬이처럼 안쪽으로 감겨있는 것이 특징이다.
여름날 아침, 이슬을 달고 있는 풀숲에서 물봉선 꿀을 따먹던 일이 생각난다. 고깔모자처럼 생긴 꽃뿔의 끝을 따서 쪽쪽 빨아먹으면 달콤한 맛이 난다. 나비와 벌의 먹이를 훔쳐 먹는 기분이란, 달콤한 맛과 향내에 취해 그만 정신을 잃을 것 같지만 여전히 손은 꽃을 따고 있다. 발 밑에는 머리 속까지 깨끗하게 씻어주는 계곡물이 흐른다. 그래서 물봉선 하면 깨끗함이 연상된다. 맨발로 물에 들어가 꿀을 따먹던 그 때가 그리워진다. 주근깨 박혀 있는 꽃뿔을 입에 물고 달콤한 맛과 향내에 다시 한번 취해 보고 싶다. 먼발치서 어릴 때 놀던 자취를 더듬어 보면 고향의 산천도 허리가 굽는 다는 것을 느낀다. 물봉선 피워내던 계곡을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선뜻 그곳에 가지 못하고 뒤돌아 선다.

사진 자료는 생태교육연구소 <터>에서 주셨습니다.

총 게시물 165건 PAGE 17/33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85	Re..향기로 보는 들국화, 감국	허원	2003-11-07	18354
그 모양과 향이 너무 좋아서 코를 박고 있었는데, 참, 향기롭더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네요. 인사동 어느 찻집에 감국차를 판다던데, 머리도 지끈, 목도 칼칼. 그 차 한모금 마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84	Re..청주에 오면	김선영	2003-11-08	18444
청주에 오면 감국차 공짜로 마구마구 줄 텐데. 거기다 주인집 사랑까지 덤으로 얹어서. 원~ 다시 내려와!
83	Re..나도	김의경	2003-11-15	18251
나도 가고 잡다!1
82	Re..향기로 보는 들국화, 감국	김영란	2003-10-28	16619
선영씨 글 읽고 가슴이 먹먹해졌어요. 선영씨가 인고한 세월이 느껴지네요.고맙기도하고 부럽기도하고.내 닉이 소국인데 이 글을 읽고나니 갑자기 자신이 없어지네.지난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 그 정신 없이 지냈던 시간들을 돌아본 계기가 되었답니다.늘 같은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81	꿀이 든 고깔모자, 물봉선	김선영	2003-09-18	16390
[이전10개] ◀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다음1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