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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 보는 들국화, 감국
향기로 보는 들국화, 감국  가끔, 시골 정취를 느끼기 위해 들어가는 곳이 있다. 구불구불한 산길, 백양나무가 길 안내하듯 도열하고 서 있는 길을 달린다. 백양나무 아래는 시퍼런 강물이 숨을 쉬고 있고 요즘엔 노란 국화가 산자락마다 피어 환한 빛을 내고 있는 길을 간다. 가도가도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그 길도 끝이 나고, 산이 가로막고 있어서 비로소 길이 끝나는 그곳에 들어간다. 산등성이를 넘어 내려가노라면 오망한 동네의 하늘엔 홍시감이 둥둥 떠 있다. 동네 안에 들어서면 호박넌출 늘어진 돌담이 제일 먼저 반긴다.
이 곳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은 포구 가는 길이다. 지금은 쓰지 않는 포구여서 나무와 덤불이 우거져 있다. 그래서 더욱 포구 가는 길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가끔은 새끼 독사뱀이 등 말리러 바위틈에서 기어 나오는 곳, 떼죽나무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괜시리 배부른 곳, 빨갛게 물든 청미래덩굴 열매가 반들반들 윤을 내고 있는 곳, 까맣게 영근 산초나무 열매가 가을 햇살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얼굴을 말리고 있는 길이다. 그 길을 지나면 시퍼런 물이 쓸쓸한 포구를 지키고 있다. 배도 들지 않고 사람도 찾지 않아 포구는 잊혀진 곳이 되어 간다. 그곳에 들어서면 잊혀진 사람이 될 것 같은 쓸쓸함이 스민다. 포구에 앉으면, 들어오지 않을 배를, 돌아오지 않을 사람을 무한정 기다리는 여인이 되는 듯하다. 이럴 땐 담배라도 한 대 물고 싶다. 그곳에선 공연히 심상에 젖어들곤 한다. 버려진 포구처럼 사는 것도 참 쓸쓸하다고. 그래서 어떤 때는 소리내어 엉엉 울고 싶다고.
그 마을에는 도시에 살다 들어온 몇몇 사람이 있다. 그냥 무작정 들러 이말 저말 붙여보다 차 한잔 얻어 마시고 나올 때가 있다. 해맑은 얼굴에 편안한 목소리로 조근조근 사는 얘기를 들려준다.
"이번에 담은 국화차가 있는데 한 잔 드실래요?" "그래도 될까요? 고맙습니다."
"감국이 하두 흐드러지게 피어있길래 뜯어다 담가봤어요. 아직, 향이 너무 진해서 조그만 타야 은은할 것 같아요. "
노란 국화 꽃잎이 찻잔에 피어난다. 국화향이 피어오른다. 처마 밑에 무당거미는 배를 통통하게 부풀린 채 거미줄을 타고 있고 벌통의 벌들은 윙윙대고 서쪽으로 지는 해는 마루 끝에 매달려 차 마시는 사람들의 무릎을 덥혀 주고 있다. 꼭, 많은 것을 가져야 부자일까. 이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을까? 앞산의 산봉우리가 아침마다 가슴에 들어오고 계곡에 부는 바람이 머리를 맑게 빗질해 주고 철마다 옷을 갈아입으며 전위 예술을 하고 있는 자연이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그 속에 한 폭의 그림처럼 깃들어 산다면, 뭘 더 바랄 것이 있으랴. 마음이 부자이면 부자인 거지. 감국차 한 모금 입안에 궁글리며 이 생각 저 생각에 젖어든다. 달달 볶이는 무쇠 솥의 콩처럼 이리저리 뒹굴어 다니는 도심 속의 내가 떠오른다. 사는 모습이 이렇게 다를 수 있는 건데, 나는 얼마나 더 채우고 싶어서 안달을 부리며 사는가. 차의 끝 맛이 쓰다.
다음에 또 오겠다며 나오는 길, 산기슭에는 노란 감국과 산국이 지천이다. 보는 것보다 향기가 먼저 느껴지는 꽃이다. 향기가 진해 술이나 차를 만들기도 하고 베개 속에 넣어 베고 자면 두통이 없어진다.
국화 향의 유혹을 못 이겨 기어이 차에서 내려 한 움큼 꽃을 딴다. 나도 누군가를 위해 찻잔에 국화 꽃잎을 피워내고 싶다. 가을을, 쓸쓸함을 찻잔에 부어 말없이 마음을 나누고 싶음이다. 사진 자료는 생태교육연구소 <터>에서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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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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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참고 또 참는, 인동 |
달린다 |
2004-02-23 |
14723 |
| 89 |
Re..참고 또 참는, 인동 정말 오래 기다렸습... |
최명희 |
2004-02-22 |
15144 |
| 88 |
Re..오래 기다리게 해서 |
플로라 |
2004-02-22 |
15261 |
| 87 |
향기로 보는 들국화, 감국 |
김선영 |
2003-10-27 |
16246 |
| 86 |
Re..포구와 감국 |
마야 |
2003-11-08 |
176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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