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철이다. 따뜻한 햇살과 품으로 안겨드는 봄바람에 꽃봉오리가 터진다. 주체할 수 없어 벙그러지는 꽃봉오리들. 덩달아 보는 이의 마음도 부풀어 올라 눈길은 산과 들로 향한다. 눈길이 가면 발길도 가는 법, 꽃피는 시절이면 저절로 발길은 산에 올라 꽃들의 안부를 묻는다. 4월, 5월 하루하루 색을 달리하는 산이 부르고 양지녘의 들꽃들이 나를 부른다. 애써 집에 들어 앉아 있으면 바람이 문을 두드리고 햇살이 창 밖에서 손짓하며 속삭인다. 때가 지나면 볼 수 없는 것들이 소리 없이 피고 소리 없이 지고 있나니. 머뭇거릴 수 없다고.
   딴 볼일을 볼 수 없다. 지금 느끼지 못하면 내 생애 어느 한 순간의 봄을 영원히 놓쳐버리고 마는 것이다. 모자를 쓰고 운동화를 신고 봄 들판을 걷는다. 꽃다지가 노랗게 웃으며 한들한들 바람을 타고 있다. 나는 천천히 바람을 읽는다. 봄을 읽는다.

   나무의 잎이 패기 전, 땅 속에서 잠자고 있던 풀씨들이 싹을 틔우기 전, 먼저 꽃을 피우고 봄을 시작하는 꽃이 있다. 작은 꽃들이 둥글게 모여 피고 그 둘레에 부채처럼 특별하게 생긴 포가 감싸고 있는 모습이 마치 광배를 달고 있는 애기 부처 같다는 ‘앉은부채’가 그것이다.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청주에 앉은부채 자생지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들꽃과 인연을 맺은 지 꽤 오래되었지만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것도 내가 살고 있는 청주에 있다니. 반갑기도 하고 도감에서만 보던 그 신비한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시내를 빠져나가 산성 쪽으로 조금만 달려가니 냇가를 옆으로 흘리고 있는 작은 야산에 앉은부채 자생지가 있는 것이었다. 깊은 산속도 아니다. 보리가 심어진 밭둑을 지나 뾰족이 싹이 난 마늘밭을 지나 산으로 몇 발자국 떼자 앉은부채가 민틋한 산자락에 여기저기 솟아있다. 어머, 어머, 탄성을 지른다. 자칫 잘못했다간 펜촉처럼 솟아나기 시작한 앉은부채의 포를 발로 쓰윽 뭉개버릴 정도로 많이 솟아 있다.

   앉은부채는 꽃을 먼저 피운 후 잎이 나기 때문에 이른 봄에 볼 수 있는 것은 꽃을 정성스럽게 싸안은 포의 모습이다. 꽃을 보호하기 위해 연노랑 바탕에 갈색 무늬가 있는 포는 새끼를 감싸 안은 어미의 치마폭처럼 아늑하게 보인다. 자주색 꽃 대공에 노란 수술을 달고 포 안에 자리잡은 모습이 천상 앉아있는 부처님의 모습 같다.
   자생지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크고 작은 포를 달고 앉은부채는 산발적으로 퍼져 있다. 앉은부채의 서양 이름은 ‘스컹크 캐비지(skunk cabbage)’이다. 잎은 양배추처럼 먹기 좋게 생겼으나 냄새가 나고 독성이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이른 봄, 먹을 것이 없는 숲에서 일찍이 싹을 내밀게 되면 뜯어 먹으려는 산짐승들이 많을 것이다. 이를 방어하기 위해 냄새를 피우고 독을 품고 있다. 일 년 내내 힘들게 준비한 것을 내줄 수는 없지 않은가. 독성이 강해서 먹으면 입안이 아리고 부르튼다. 열매는 새빨간 알갱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달린다. 앉은부채는 천남성과 식물인데 옛날 사약을 제조할 때 주재료로 쓰였다고 한다. 하지만 약이 되는 독도 있으니 한약재의 재료로 쓰이기도 했다.
   포를 살며시 들추고 그 안에 숨어 있는 꽃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어디까지 자생하고 있는가 눈으로 훑으며 산을 내려온다. 앉은부채가 있는 곳은 잎갈나무 숲이다. 잎갈나무가 도열하듯 서 있는데 인공 조림한 듯, 숲 사이에 임도가 나 있다. 잎갈나무의 잎이 떨어지면 그 것을 이불 삼아 추운 겨울을 나고 이른 봄 누구보다 먼저 봄을 맞이하는 앉은부채. 보물을 산자락에 마구 펼쳐놓고 내려 오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혹여 누가 캐가지는 않을까. 지키는 사람도 없는데. 불안한 마음을 뒤로 하고 산을 내려왔다.

   며칠 후, 서울에서 손님이 내려왔다. 아무데서나 보기 힘든 앉은부채를 보여주면 그만한 선물이 없을 것 같아 몇몇이 다시 앉은부채를 찾았다. 마치 내가 발견하고 내가 보호하고 있는 것처럼 자랑을 하고 목에 힘을 주며 갔다. 아, 이런 것을 자부심이라고 하는구나. 내 고장에 귀한 식물이 있고 귀한 동물이 산다면 그 고장 사는 사람의 목에 힘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마늘밭을 지나고 보리밭을 지난다. 지난 번보다 더 많이 목이 길어진 꽃다지가 논두렁 밭두렁에 지천이다. 바람결에 노란색이 자잘하게 부서진다. 이렇게 들판을 걷노라면 나도 모르게 숨을 크게 쉰다. 숨통이 트인다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하는 것이 아닌가. 세포 하나하나가 바람을 느끼고 마음이 그것을 읽을 때 진정으로 숨을 쉬는 것이 아닌가. 가붓해진 몸으로 논두렁을 걷는다.
   잎갈나무 숲에 이른다. 곧 있으면 산자락에 즐비한 앉은부채를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을 보는 외지인들의 놀라는 얼굴을 그리며 산자락을 오른다.
   헌데, 어라, 이상하다. 분명 잎갈나무 숲이 있고 이 길이 맞는데. 그렇게 많았던 앉은부채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당황한 나는 산 속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닌다. 찔레나무에 옷을 찢기기도 하고 가시덤불에 손등을 할퀴면서 둘러보아도 앉은부채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게 많이 솟아났던 것이 며칠 새 녹아 없어질 리도 없고 누군가 캐갔다면 이 산자락이 이렇게 조용할 리는 없다. 잎갈나무 아래에 마른 수풀 속에는 산토끼 똥만 태연하게 수북하다. 함께 온 사람들에게 민망함을 감출 수가 없어서 황망히 찾아보지만 여전히 앉은부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순간, 나는 욕심으로 가득 찬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홀린 것인가? 무언가 알 수 없는 것에 홀려 내 눈과,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앉은부채. 산 속에서 귀중한 것을 잃어 버렸다면 그만 그 물건과 인연이 없으려니 하며 쉽게 뒤돌아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1미터도 넘는 뿌리로 땅 속에 박혀 있고 엊그제까지 펜촉처럼 나오던 싹들조차 흔적도 없다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행들은 나를 슬슬 위로하기 시작했다. 다음에 또 보러 오지 뭐, 그게 금방 녹아버리는 꽃이라 없어졌는지도 모르지. 등등. 끝내 앉은부채를 자랑하지 못하고 나는 산을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자랑하는 마음도 못된 마음인가? 나도 모르는 석연치 않은 기운이 나에게 있기에 그것을 깨우치게 하려고 내게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인가. 이러저러한 잡다한 생각들 때문에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얼마 후, 처음 함께 갔던 사람들과 다시 한번 앉은부채를 찾으러갔다. 그날 못 본 것에 대한 기가 막힘과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사람들은 싱글싱글 웃으며 왜 못 찾냐며 길치의 어리석음을 한껏 또 놀린다. 드디어 도착했다. 잎갈나무를 조림해 놓은 탓에 산의 모습은 엇비슷한 곳이 많다. 그 날 난 앉은부채를 바로 지척에 두고 엉뚱한 곳을 헤매다 온 것이다.
   앉은부채는 무르익은 봄볕에 상추 잎처럼 시퍼런 잎을 내놓고 있었으며 꽃은 이미 녹아들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시퍼런 잎들이 질펀하다. 풍성해 보인다. 이제야 놀란 마음이 가라앉는다.
   덕분에 앉은부채의 생태를 골고루 보게 된 셈이다. 싹이 날 때와 꽃이 지고 잎이 날 때, 잎이 무성할 때.
내게 앉은부채는 겸손을 생각하게 한 꽃이다. 잠시나마 내 안에 독처럼 퍼져 있는 오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준 미덕의 꽃이다. 순간이었지만 그것은 쉬이 경험하지 못할 자기 반성의 시간을 아찔한 현기증과 함께 가져다 주었다.
   지금쯤 앉은부채는 어떤 모습일까. 우거진 숲 속에 당당히 한 부분의 초록을 담당하고 있을 것이다. 다시 앉은부채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이번엔 혼자가도 자신 있게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