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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꽃이야! 개망초

어제 왔던 길을 오늘 다시 가보면 그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산과 들의 식구들 때문이지요. 어제는 무릎까지 닿았던 개망초가 어느 새 허리춤에 와 있는 걸 보면 어제 왔던 곳이 이 길이 아니었던가, 하는 착각이 일 정도입니다.

요즘은 초록색 이파리를 배경으로 깔고 털실 같은 하얀 꽃잎에 노란 수술을 피워 올린 개망초가 단연 눈에 띄는 시기입니다. 흔하디 흔하게 이 나라 산자락이나 들판 어느 곳이든 피어나는 꽃이기 때문에 이렇다할 대접을 받지 못하는 꽃이기도 합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참으로 정교하게 생긴 꽃입니다. 노란 통꽃을 가운데 두고 흰색으로 된 가느다란 혀꽃이 빈틈없이 두르고 있어서 꽃잎이 큰 것보다는 몇 배 더 공이 들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흰색의 혀꽃은 관모가 없거나 흔적만 있습니다. 가운데 있는 노란 통꽃이 나중에 관모가 되어 바람을 타고 번식을 하게 됩니다. 나름대로 공이 많이 들어간 꽃인데 지천으로 피어나다 보니 그야말로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름에 '개'자가 붙은 식물이나 과일은 대부분 꽃이 예쁘지 않거나 과실에 별 맛이 없는 의미로 붙이게 됩니다. 우리네도 '개'자가 붙은 말을 들으면 기분이 상하다 못해 싸움까지 벌일 판이지요. 그럼에도 우리 주변의 사물에는 '개'자가 붙은 이름이 많습니다. 이처럼 '개'자가 붙는 이름은 지칭하는 대상을 비하시키는 느낌을 줍니다. 천하게 여길수록 더 성해지는 것이 생명의 본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개망초는 더욱 극성스럽게 이 나라 들녘을 하얗게 덮고 있습니다.

"나도 꽃이야!!!"
길가나 빈터에 피어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시절, 소꿉놀이 할 때 주로 밥상 위에 올렸던 꽃이 바로 개망초입니다. 흔하디 흔해 꽃대궁 몇 개 따가도 별 표나지 않을 정도로 한 가지에서 여러 개의 꽃이 피어납니다. 개망초 꽃을 따서 사금파리 조각 위에 올려놓으면 영락없는 계란 후라이 모양이 됩니다. 계란 후라이까지 올린 진수성찬을 소꿉동무에게 내밀며 분명 이렇게 말했겠지요.
"여보, 계란 후라이 드세요."
노란 통꽃은 노른자이고 하얀 혀꽃은 흰자위가 되는 거지요. 그래서 일명 계란꽃이라고 부르기도 했답니다.

개망초는 원산지가 북미인 귀화식물입니다. 개망초라는 이름은 나라가 망하던 해에 피어난 꽃이라 하여 붙여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일제 치하에 들어가던 해, 처음 보는 꽃이 들녘에 피어나 우리네 조상들은 그 꽃을 바라보며 '망조들었네, 망조들었네' 하고 탄식하였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망초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망초와 개망초는 같은 국화과 식물인데 망초도 아닌 것이 망초와 비슷하게 피어나 개망초라는 이름을 얻었으리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참 사연이 많은 꽃입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더욱 극렬하게 이 땅에 뿌리를 박고 산천을 하얗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도 꽃이야, 나도 꽃이야.'
이렇게 속살거리며 땅 위에 도장찍듯 피어나나 봅니다.

개망초 칠월

이향아

칠월 들판에는 개망초꽃이 핀다.
개살구와
개꿈과
개떡과
개판.

'개'자로 시작하는 헛되고 헛된 것 중
'개'자로 시작되는 슬픈 야생의
풀꽃도 있습니다.
'개망초'라는.

복더위 하늘 밑 아무데서나
버려진 빈 터 허드레 땅에
개망초꽃 여럿이서 피어나고 있다.
나도 꽃, 나도 꽃,
잊지말라고.
한두 해, 영원 살이 풀씨를 맺고 있다.

개망초 지고 있는 들 끝에서는
지평선이 낮게낮게
흔들리고 있을 거다.

사진 자료는 생태교육연구소 <터>에서 주셨습니다.

총 게시물 165건 PAGE 22/33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60	Re..우와!	꽃부리	2003-07-09	18247
안녕하세요? 이렇게 좋은 코너가 있었다니... 반갑습니다. 저는 자귀나무 꽃을 볼 때마다 초등학교 운동회 날 부채춤 추던 생각이 납니다. 쪽두리가 내려가서 얼굴을 가리던 생각도요, ㅎ 이 꽃을 말려서 베개 속에 넣으면 부부 금슬이 좋아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얼마 안 되구요. 김선영님, 감상 잘 했습니다. 아이고 이런, 자귀나무 아래에 리플 단다는 것이 그만... 죄송합니다.
59	Re..잠자는 귀신, 자귀나무	달린다	2003-07-07	17904
중부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았어요. 고속도로가 무성한 나무에서 흔들리는 자주빛 수술들! 이상하죠. 전에도 보았음직한데, 플로라언니 글을 읽고 보면 그제야 아름다운 건!
58	Re..달린다, 땡큐!	김선영	2003-07-08	17838
식물도 사람과 같아서 알고 나면 그 매력에 푹 빠져드는 것 같아요. 처음 본 사람과도 몇 마디 속에 있는 말을 주고 받으면 금방 친해지는 것같은 느낌이 들잖아요. 오늘 그런 사람을 만났답니다. 그 사람의 한 마디에 그동안 얼마나 시난고난 살아왔는지를 느끼게 되더군요. 그래서 가슴이 한동안 짠했답니다. 풀이나 나무와의 만남도 사람과 다르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57	나도 꽃이야! 개망초	김선영	2003-06-09	16361
56	Re..아트걸님!!!	김선영	2003-06-20	17075
개망초 사진도 안 뜨네요. '개망초 한창'글은 조회수도 움직이지 않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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