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꾹, 뻐꾹"
   이맘 때 쯤이면 산자락에 뻐꾸기 울음소리가 아스라이 울려 퍼집니다. 뻐꾸기 소리는 이 산 저 산에 부딪혀 메아리가 되어 사람의 마음 속까지 울립니다. 뻐꾹, 뻐꾹 울어대는 울음 끝에는 왠지 말못할 사연이 숨어 있는 것처럼 구슬프게만 들립니다.
   뻐꾸기 울음소리에 이어 꾀꼬리가 울어대고 푸른 날개를 가진 물총새가 재빠르게 저수지 위를 훑고 지나가는 한낮입니다. 물총새 부리에는 물고기 한 마리가 매달려 있고 물고기를 나뭇가지에 지친 다음 짝에게 구애의 선물로 주게될 것입니다. 푸르게 묵묵하기만 할 것 같던 산자락은 여기저기에 보라색 연지를 바르느라 여간 분주한 게 아닙니다.

   키가 어른 허리춤에 닿을 정도로 자란 지칭개가 연보랏빛 꽃을 피우며 길가나 풀숲에 수를 놓고 있습니다. 은은한 보랏빛 지칭개가 지천으로 피어나는 때가 바로 늦봄에서 가을초입니다. 어린 싹일 때는 뜯어서 국을 끓여 먹었습니다. 맛이 좀 쓰기 때문에 뿌리를 자근자근 짓찧어 쓴 물을 우려낸 다음 날콩가루에 묻혀 된장을 풀어 국을 끓여 먹었습니다. 봄에 입맛이 없을 때 우리네 할머니들은 이런 나물을 뜯어다 잃어버린 입맛을 다시 돋궈 주곤 했지요. 잎 뒷면은 솜털이 밀생하고 있어서 하얀 분을 바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꽃대가 쑥쑥 자라 여러 갈래로 갈라지며 거기에 연보라 꽃이 여러 개 달립니다. 마치 고운 화장솔에 연보라색 섀도우를 발라 논 것처럼 아주 예쁜 통꽃이 핍니다. 한 가지 흠은 꽃대에 진딧물이 많이 낀다는 것입니다. 꽃이 필 때는 쓴맛이 단맛으로 변하는 것일까요?

   뻐꾹채는 뻐꾸기가 올 때 핀다고 하여 뻐꾹채라고 합니다. 지칭개에 비하면 꽃이 무척 큰 편입니다. 지칭개는 꽃대 하나에 여러 갈래로 갈라져 한꺼번에 여러 개의 꽃을 피우지만 뻐꾹채는 꽃대 하나에 한 개만 핍니다. 뻐꾹채 어린순은 찔레순처럼 먹을 수 있습니다. 아작아작 씹히는 맛이 있고 독특한 향이 납니다. 뻐꾹채와 엉겅퀴는 모습이 아주 비슷합니다. 버꾹채에는 가시나 끈끈한 것이 없습니다. 모난 것이 없다고 하여 멍구지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꽃봉오리를 보면 갈색으로 빛나는 비늘이 꽃을 감싸고 있는데 나중에 비늘은 꽃받침이 되고 그 곳에서 자홍색 털실이 뻗어나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뻐꾹채의 암술대이기도 합니다. 멀리서 뻐국채를 보면 자홍색 털방울이 한들거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뻐꾸기 올 때를 기다려 피는 꽃, 뻐꾸기는 구슬피 우는데 뻐꾹채는 그리 흔치 않게 숨어 피어납니다.

   한 여름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도도하게 서 있는 또 하나의 보라색 꽃이 있습니다. 태양 이 뜨겁게 내리쬐어도 절대로 고개 숙이지 않은 엉겅퀴가 그것입니다. 엉겅퀴는 가까이 보면 볼수록 온몸에 독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잎이며 꽃에 모두 바늘을 달고 있어서 함부로 만졌다가는 아얏! 하고 비명을 지르게 됩니다. 무엇이 그토록 독기를 품게 했을까요? 상처받지 않기 위해 다시는 핏물 배어나는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해 그렇게 모진 바늘을 달고 있는 걸까요? 꽃은 달려가 한번쯤 쓰다듬어 주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자태로 피어나지만 그런 손길조차 거부하는 엉겅퀴의 날선 도도함이 점점 익어 가는 태양빛에 반짝입니다. 바늘을 드러낸 채 태양을 향해 맞서는 엉겅퀴, 그것도 모자라 온몸에 끈끈이까지 달고 서 어떠한 것이든 범접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엉겅퀴를 보면 왠지 애잔한 마음이 듭니다. 엉겅퀴에서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까요? 상처받지 않기 위해 온몸에 가시를 세우고 늘 경계의 눈빛을 잃지 않는 우리네 사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제 산과 들판은 여름으로 내달리고 있습니다. 묵묵히 서 있기만 할 것 같은 저 푸른 산은 보랏빛으로 피어나는 꽃 들 때문에 얼마나 설렌 가슴을 누르고 있을까요. 우리도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기 전에 정성스레 화장을 하듯 산도 들판도 한바탕 치를 여름 잔치를 위해 화장을 하는 거겠지요.


엉겅퀴

김 순 금

송화가루 흩날리는
습기찬 해안 기슭

창 열고 지천으로
등 켜는 자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