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승의 얼굴처럼 해맑은, 동자꽃

    작년 이맘 때였습니다. 지인에게서 화분 하나를 건네 받았습니다. 작은 토분에 키가 조금 자란 야생화 한 포기가 심어져 있더군요.
    “이거, 자기니까 잘 키워, 곧 꽃이 필 거야.”
    “나라고? 그럼 이게 동자꽃이야?”
    지인은 빙그레 웃으며 물 자주 주라는 말을 덧붙이더군요. 제 얼굴에도 반가운 웃음이 넘쳐흘렀습니다. 이제껏 도감에서 눈요기할 정도였지 실제로 본적이 없는 꽃이었으니까요.
    동자꽃은 제 애칭입니다. 꽃과 나무를 공부하는 모임이 있는데 그 모임에서 제게 붙여준 이름입니다. 사연인즉슨 동자꽃의 모양이 동그랗고 예뻐서(?) 제 얼굴 이미지와 닮았다고 생각하여 붙여준 이름입니다. 어찌 감히 사람의 얼굴이 꽃을 따라갈 수 있을까요. 전 황공하게 그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 후 토분을 거실의 장식장 위에 모셔두고 틈나는 대로 들여다보았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밋밋했던 어린 소녀의 가슴에 젖몽오리 솟듯 빨갛게 꽃봉오리가 올라오더군요. 아, 드디어 꽃이 피겠구나, 생각하며 외출을 했습니다.
    장마철이라 며칠 동안 비가 오던 때였습니다. 외출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열고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한 귀퉁이에 세우다가 활짝 웃고 있는 해맑은 얼굴이 있어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주황색 맑은 얼굴이 활짝 피어 반겨주는 게 아니겠어요. 경탄스러워서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돌아오냐고, 여태껏 돌아오길 기다렸노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다가가 이리보고 저리 보며 눈으로 동자꽃을 한없이 쓰다듬었습니다. 기특했습니다. 가느다란 줄기에 부실해 보이는 이파리를 가지고 어떻게 이다지 예쁜 열정을 뿜어 올릴 수 있을까.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환하게 해주다니. 꽃이 주는 기쁨, 말없이 주기 때문에 더욱 깊은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동자꽃은 한 여름에 핍니다. 이슬이 촉촉이 맺힌 여름 아침 숲에서 동자꽃을 만나면 주황색 해맑은 얼굴로 나, 여기 있어요, 하고 외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어두운 숲에 백열등을 달아 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꽃잎은 다섯 장인데 어찌나 멋을 내는지 꽃잎 가장 자리에 잔 톱니가 있고 양쪽으로 깊게 갈라져 있어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멋스러운 꽃입니다. 흔히 꽃이 질 때는 꽃잎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떨어지지 않고 그 자리에 녹아버리는 꽃이 있습니다. 동자꽃도 그 자리에 녹아 붙으며 지는 꽃입니다. 잎은 타원형으로 마주나고 잎자루가 없으며 줄기와 잎에는 하얗게 잔털이 납니다.
    동자꽃에는 아주 애절한 사연이 들어 있습니다. 사연 없이 피는 꽃이 어디 있을까 만은 동자꽃에는 어린 동자승들의 못다한 삶이 배어 있어 더욱 애잔한 마음이 듭니다.
    옛날 스님 한 분이 탁발하기 위해 마을에 내려왔습니다. 그 마을에서 부모를 일찍 여윈 다섯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섯 명의 사내 아이들은 밥도 먹지 못하고 방안에 고물고물 모여 있더랍니다. 마을 사람들도 몹시 가난하여 아이들을 거둘 처지가 못되었습니다. 스님은 기거하는 암자로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가서 보살폈습니다. 그 해 겨울 식량이 모자라자 스님은 다시 마을로 탁발하러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큰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암자로 돌아가지 못하고 여러 날 마을에 있게 되었습니다. 눈이 그치자 부랴부랴 암자로 돌아갔지만 동자승들은 보이지 않고 다섯장의 꽃잎으로 피어난 동자꽃만 암자 뜨락에 피어있더랍니다. 기다림에 지친 모습으로.
    그래서일까요. 동자꽃은 조금만 소홀히 해도 금세 고개를 푹 수그리며 지쳐 버립니다. 추운 겨울, 산사에서 굶어 죽은 다섯 명의 동자승을 떠올리며 물이라도 열심히 시주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로에 물을 듬뿍 담으며.

사진 자료는 생태교육연구소 <터>에서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