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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그 시작을 위하여
지난 번 광주 여행 때 그곳의 자연물을 보며, 혼잣말로 수없이 뇌까린 말이 있었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이었죠.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갈 수록 가로수부터 시작하여 주변에 있는 자연물의 모습이 내가 알던 것과 아주 많이 달랐습니다. 자주 다니던 곳은 어디에 무슨 군락지가 있고 어디쯤 가면 흔하지 않은 뻐꾹채가 있고 어디쯤 가면 남산제비꽃이 있다는 것을 훤하게 꿰는데, 장소만 바꿔놓으면 왜 이리 처음 보는 것이 많은지, 그래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공부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기후에 따라 지형에 따라 워낙 종이 다양하게 분포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말입니다.
요즘 산에 올라보면 그늘진 곳은 여전히 딱딱한 얼음 위에 흰눈을 이고 있습니다. 손바닥만한 햇볕 한 조각만 받아도 금새 꽃대를 올릴 것 같은 다년초 풀들은 땅에 바짝 엎드린 채 날이 더 풀리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파리에는 보온용 하얀 솜털을 보송보송 달고 있지요.
그런 것들을 로제트형이라고 하는데 방석모양으로 겨울을 난다고 하여 붙은 이름입니다. 달맞이꽃이나 개망초, 냉이가 대표적이지요.
햇볕이 잘 드는 밭둑에는 국수나물이 새파랗게 올라와 있고 성질 급한 꽃다지는 벌써 노란 꽃대를 피워 올리고 있습니다. 쇠별꽃이나 점나도나물도 땅 위에 파랗게 올라와 있습니다.
개울가에 서 있는 버들강아지는 하얀 솜털을 조금씩 벗고 있는데 마치 털복숭이 짐승의 발톱처럼 삐족하게 눈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햇볕을 받아 반들반들 윤이 나는 눈은 정말 귀엽습니다. 버드나무는 나무 중에 제일 먼저 물을 올립니다. 한창 물이 오를 때 청진기를 갖대 대고 들어보면 물관으로 물 올라가는 소리가 '쭉쭉' 난답니다. 아직 해보지 않았는데 올 봄엔 꼭 청진기를 들고 물오르는 소리를 들어 볼까합니다.
봄에 제일 먼저 꽃을 피우는 생강나무는 꽃눈이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고 진달래의 꽃눈도 조금씩 커집니다. 조금 있으면 빨간 꽃봉오리를 내밀겠죠.
지금 모두 분주합니다. 개울 속의 엽새우도 플라나리아도 게아재비도. 산과 들의 나무와 풀들도 모두 바쁩니다. 다시 소생할 준비를 하는 산과 들의 맥박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봄이오면
안 용 민
겨울
견딘 자들의
봄 인사는 아름답고
양지바른 산마루에
분홍빛 입술을
내미는 진달래
담장 넘어 안쪽에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새 하얀 목련화
어디선가 자꾸
꽃 봉오리는
터지는데
곳곳에 봄은
베일을 쓰고 숨어 있다.
봄이 오면
내 여인의
따스한 손잡고
그들을 마중하러 가려네.
뜨겁고
긴 입맞춤으로
그들의 질투 사려네.
님이여
두꺼운 외투 벗어버리고
하늘하늘 흩날리는
소라빛 옷자락으로
나를 유혹하소서
오수에 졸립던
고양이 눈 확뜨고
두팔 벌려
그대를 맞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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