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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송이 들꽃은 혼자 피지 않는다
이른 아침 상당산성에 도착하자 톡톡 빗방울이 듣기 시작한다. 거기다 바람까지 부는지라 기온이 뚝 떨어진 느낌이다. 일행들은 옷깃을 올리고 단추도 채우며 옷단속을 하기 시작한다. 지난주에 보고 왔던 봄꽃들이 걱정된다. 여름날씨처럼 더웠던 기온이 뚝 떨어지면 여린 꽃잎들도 바짝 추위를 탈 텐데---. 작고 어린잎에 비해 달고 있는 꽃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소담하게 꽃을 피우던 현호색, 잎보다 꽃대가 큰 왜제비꽃, 고개를 잔뜩 떨군 채 해바라기를 하던 할미꽃. 무사히 잘 있을까? 괜스레 조바심이 난다.
상당산성 동장대 부근을 오르기 시작했다. 동장대 부근 철쭉나무 그늘 아래를 보면 수줍은 듯 하얗게 피어있는 키 작은 꽃을 볼 수 있다. 흰제비꽃이다. 여간해서 보기 힘든 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을 찾은 사람들을 반기기라도 하는 것일까. 길가에 올망졸망 피어 하얀 손을 흔들고 있다.
 상당산성을 오를 때마다 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 성곽 위의 길을 보면 사람들의 발길로 인해 반들반들 윤이 날 정도로 닦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꼭 머리카락이 죄다 빠져 버린 민머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그 곳에서 기필코 싹을 내밀고 꽃을 피우는 식물을 많이 볼 수 있다. 오히려 그런 곳을 피해 살아 갈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의 발길에 짓이겨져도 꺾인 허리를 추스르며 곧게 새워 다시 새순을 내밀고, 자라나 꽃을 피우는 생명력 강한 식물들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꼭 그렇지 않은 경우지만, 성곽 위에 용케 사람들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돌 틈이나 난간을 찾아 꽃을 피우는 식물들도 많다. 볕 좋은 곳을 찾는 식물의 본성을 차치하고라도 그들은 사람과 가까이 숨쉬고 싶어한다는 것을 몸으로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성길 위에 돌 틈 사이, 오롯이 피어난 솜나물을 보면 더욱더 그런 생각이 든다. 아직 활짝 피지 않은 상태의 솜나물 꽃은 꽃잎의 뒷면이 자주색이다. 활짝 피었을 때는 노란 수술이 가운데 있으며 꽃잎은 흰색을 하고 있다. 꽃잎의 앞뒤가 다르기 때문에 꽃피는 시기 별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신비한 꽃이다. 상당산성 성곽 위를 오르다 보면 쉽게 솜나물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은 마치 '나 좀 보아주세요' 하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고 있는 것만 같다. 연자주색의 신비스런 색깔로 보는 사람의 눈길을 끌고 싶어하는 솜나물의 몸짓만 보더라도 사람들과 가까이 있고 싶어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다만 어여뻐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눈길일 것이다.
 동문을 지나 오르막길을 가다 보면 소나무 숲이 나온다. 소나무 숲 아래 연분홍 치마를 곱게 차려 입고 방싯방싯 웃고 있는 진달래를 볼 수 있다. 소나무는 보이지 않고 화사하게 치장한 진달래만 보인다. 소나무는 진달래 때문에 얼마나 가슴을 설레고 있을까. 지난주만 하더라도 봉긋한 젖무덤의 젖꼭지처럼 입을 꼭 다물고 있더니 요번에는 만개를 하였다. 진달래 가까이 얼굴을 대면 덩달아 물이 들어, 두 볼이 붉어질 것만 같다. 어쩌면 이렇게 황홀한 색깔일까. 지나가던 나비와 벌도 홀린 듯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한두 방울 내리던 빗줄기는 산성을 도는 동안 굵어지기도 하다가 멈추기도 하다가 다시 가늘게 내리기 시작한다. 마치 이 봄에 꽃을 피우느라 분주한 들꽃들의 타는 목을 축여주는 듯하다. 상당산성의 서문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길에 피어 있는 가녀린 봄맞이꽃도 목을 축이며 젖은 돌담 밑에 함초롬히 피어 있다. '한 송이 들꽃은 혼자 피지 않는다'고 어느 시인이 노래했던가. 그렇다. 들꽃은 대부분 혼자 피지 않는다. 꽃이 작으면 작을수록 무더기무더기 피어 하나의 아름다운 꽃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한다. 혼자만 살아가려 하지 않고 저 혼자 잘 났다고 튀려하지 않는 것을 보면 사람보다 마음 쓰는 것이 더 어여쁘지 않은가.
봄비 오는 날, 상당산성의 들꽃들은 맑게 빛나는 입술 위에 단비를 올려놓으며 더없이 청초하게 빛나고 있다.
사진 자료는 생태교육연구소 <터>에서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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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꽃들이 무리지어 피어 있는 것을 꽃다지라고 하는 줄 알았어요.그러니까... 꽃다지라는 꽃이 있는 거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