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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귀신, 자귀나무

언젠가 버스를 타고 시내에 있는 공원을 지나치다 아주 화려한 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안개에 꽃분홍색을 입힌 듯 아련하게 피어오른 수술이 바람을 타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가느다란 실을 묶어 털방울을 만든 것처럼 생겼습니다. 무척이나 인상적이어서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저렇게 아련한 맛을 주는 꽃이 또 있을까, 하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번역소설에 나옴직한 분위기였지요. 막연히 저 나무 이름이 뭘까, 생각하며 지나친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다음 나무와 꽃에 관심을 갖게 되어 이름을 찾아보니 그것은 바로 '자귀나무'였습니다. 번역소설에 나올만한 이름은 아니었습니다만 그 나무가 순수 우리나라 재래종이라는 것에 내심 반가웠습니다.

자귀나무 꽃은 토속미보다는 도심의 세련미와 우아함이 엿보이는 꽃입니다. 부채처럼 펼쳐진 초록의 이파리 위에 분홍색 꽃은 더욱 자태가 아름답습니다. 자귀나무 잎은 아까시나무 잎처럼 작은 잎들이 모여 하나의 가지를 만듭니다. 양쪽으로 마주난 잎이 오밀조밀 달리게 되는데 꼭 마주 보고 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아까시 잎은 맨 끝에 나온 잎이 짝이 없는데 자귀나무 이파리는 끝에 나온 잎에도 짝이 있습니다. 자귀나무는 밤이 되면 양쪽으로 벌려져 있던 이파리가 한군데로 모아져 합쳐 있게 됩니다. 그러니 짝 없는 잎이 있으면 안되겠지요. 그래서 잠자는 모습이 귀신 같다하여 자귀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거라는 말도 있습니다. 잎이 온도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밤이 되면 오므린다는 것과 에너지를 발산하는 잎의 표면적을 되도록 적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두 잎을 맞대고 밤을 보내기 때문에 합환목, 합혼수, 야합수, 유정수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신혼부부의 창가에 이 나무를 심어 부부의 금실을 빌기도 했답니다.

털실의 수술처럼 하늘로 사뿐사뿐 솟아난 꽃은 바로 수꽃의 수술입니다. 수술의 윗부분은 분홍색이고 아래로 내려올수록 흰색에 가깝습니다. 색의 조화 때문에 더욱 아련한 느낌을 주는가 봅니다. 지난 번 공원에 갔다가 막 꽃을 피우기 위해 수술을 내미는 자귀꽃을 본 적이 있는데 분홍색 수술이 오글오글 말려 있는 게 아니겠어요. 마치 털옷에 일어난 보풀처럼 오글오글 뭉쳐 있다가 때가 되면 하늘을 향해 쭉 피워 올릴 태세였습니다. 활짝 핀 것도 아름다웠지만 막 피기 시작할 때의 모습 또한 앙증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자귀나무는 가을쯤 되면 콩꼬투리 같은 열매가 달립니다. 이것으로 보아 콩과식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잎이 지고 길게 익은 콩꼬투리가 바람에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얼마나 유난스러웠던지 여설목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답니다. 여자의 혀와 같이 시끄럽다는 얘기이지요. 아무래도 남자가 붙인 이름이겠죠. 소가 이 나무의 잎을 무척이나 좋아한다고 하여 소쌀나무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실크나무라고 부른답니다. 한 나무에 이름도 참 많죠? 이처럼 동서양은 물론 동물도 좋아할 정도로 사랑 받은 나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쯤 공원에 나가보면 자귀나무가 꽃을 피워 올리며 여름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을 겁니다. 초록이 지천인 가운데 오롯이 피어난 분홍색 수술을 바람에 날리며 많은 사람들의 눈을 유혹하고 있겠지요. 단옷날 자귀꽃을 따다 베개 밑에 넣어 두었다가 남편의 마음이 좋지 않을 때면 조금씩 꺼내 술잔에 넣어 주었다는 현명한 아내처럼 말이에요.

사진 자료는 생태교육연구소 <터>에서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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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65	동자승의 얼굴처럼 해맑은, 동자꽃	김선영	2003-07-07	19786
64	Re..동자승의 얼굴처럼 해맑은, 동자꽃	김영덕	2003-10-05	20417
동자꽃 김영덕 바람에 찢긴 암자 얼어붙은 풍경소리 애 끓듯 허기에 찬 동자승 눈물 말라 탁발 간 노승 발소리 꿈꾸듯 기다리네 싸늘한 별무리는 솔가지에 걸려있고 움추린 외론 마음 어미 품속 그리며 차디찬 눈 이불 덮고 젖무덤을 더듬네 사바에 두고온 정 목메어 그리면서 찬불송 불러봐도 아련한 어미모습 죽어서 만나는 기쁨 붉게 피어 웃는가 *야생화 이야기 잘 듣고 있습니다.감사합니다.
63	Re..시로 태어난 동자꽃	김선영	2003-10-15	20488
예쁜 시 감사합니다. 녹음이 짙은 숲 속, 그곳에서 발그레한 동자꽃을 발견한 기쁨으로 시를 읽었습니다.
62	Re..동자꽃, 선영씨의 동그란 얼굴...	이경희	2003-07-12	21296
이곳에 들어오는 게 낙이 되었습니다. 담엔 어떤 들꽃을 보여줄라나, 저절로 기대가 되구요. 동자꽃, 플로라 이야길 들으니 가슴이 싸아하군요. 꽃잎이 떨어지지 않고 그냥 제자리에서 녹아버리다니, 다섯 동자들은 줄기로부터 떨어져내리는 게 정말 슬펐나봅니다. 가운데 진주황빛 둥근 무늬가 있군요. 꽃잎도 여러 갈래가 아니네요. 통꽃이라고 하나요? 숲속 백열등같은 동자꽃, 얼른 찾아보고 싶군요. 선영씨 얼굴도 다섯 동자 얼굴도 떠오르겠지요 자귀나무, 야산에 그렇게 흔하게 자라는 나무인 줄 몰랐어요. 공원같은 곳에 일부러 심는 정원수인 줄만 알았죠. 이천 뒷산에서 분홍빛 안개같은 자귀나무 꽃을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61	잠자는 귀신, 자귀나무	김선영	2003-06-26	13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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