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 그 이후?

신이라는 문제가 종교의 문제이고 동시에 죽음의 문제, 죽음 이후의 문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세를 믿지 않죠. 현대적인 사람들은 내세를 잘 안 믿어요. 아니면 막연하게 공란으로 남겨놓고 있습니다.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죽으면 끝이지 뭐, 라고 많이 생각하죠. 『햄릿』에는 유명한 구절, “to be or not be is question.(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이 나올 때, 죽으면 그만이지 했다가, 죽음은 잠과 같고 잠을 자면 꿈을 꾸는데 죽은 다음에도 꿈을 꾸면 어떡하나? 라는 재밌는 구절이 나오죠.


▲ 죽기 전에 야동을 삭제하고 싶다?

죽음 이후에 대해 공란으로 남겨두지만 삶 속에 이 문제가 얼마나 많이 개입돼 있는지를 보여주는 재밌는 일화가 있습니다. 실제로 있던 일인데 한참 인터넷이 많이 보급될 때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에 신문사에서 설문조사를 했어요. 3,40대 직장 남성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해서, ‘당신의 인생이 가령 4,5시간밖에 안 남았다고 해보자. 그럼 제일 해보고 싶은 일이 뭔가?’ 1번이 뭐일 것 같으세요? 1위를 차지한 대답이 ‘얼른 집에 택시타고 가서 PC에 있는 야동 지운다.’예요.

그러니까 ‘죽으면 끝이지’라고 사람들이 생각하지만 죽으면 끝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는 거예요. 내가 남긴 모든 흔적을 사람들이 볼 것이고, 특히 내가 삶 안에서 유지하고 지탱하는 이미지라는 게 있잖아요.


▲ 이름에 금이 가기를 원하는 인간은 없다

저는 그게 1위가 됐다는 게 한편으론 공감하고 한편으론 대단히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식으로 우리가 죽어서 천국을 상상하는 등 상상적 이미지를 더 이상 믿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은 다음에 유지될 것으로서의 나의 삶에 대해 강력한 뭔가를 갖고 있다는 거예요, 무의식적으로. 의식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그게 이름과 관련 있죠. 이름에 금이 가는 짓을 안 하려고 한단 말이에요. 죽은 다음이야 모르죠. 그런데 죽은 다음이 아니라 이 사람 사후에 일어나는 일을 은폐하는 것.


▲ 상징적인 것의 가치

삶에 scene이 있고 obscene이 있다고 했잖아요. obscene은 scene 아래, 무대 아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음란한 것이라고 이해된다고 했는데, 이것들을 계속 가려두려고 하는 거예요.

무의식적인 영역은 obscene한 영역이죠, 내용상으로 보면. 그렇게 해서 자신의 삶이 가진 상징적인 가치, 명예를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죽은 이후의 삶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해지는 것은 실제적인 육체적인 쾌락이 아니라 상징적인 가치죠. 상징적인 삶. 내가 죽은 다음, 내가 없다고 할지라도 계속 유지되어야 하는 어떤 나의 모습은 삶에 계속 들어와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