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학년 때까지 엄마 젖을 먹은 작가 - 박범신
나는 외아들로 커서 맹목적인 사랑을 받았어요. 부자는 아니었지만 어머니는 마침내 희망 하나를 건졌어요. 등불 같은 것이었을 거예요. 나는 국민학교 5-6학년 대까지 엄마 젖을 먹었어요. 학교 갔다 오면 책보라는 것을 던져놓고 엄마한테 달려가서 젖을 먹고 밥을 먹었어요. 집사람은 그래서 당신은 앞니가 나왔다고 해요. 내가 93년부터 3년 동안 소설을 안 쓰려고 있었는데 그때 기억이 떠오르는 거예요.
처음 6개월은 절필한다고 선언했는데 막상 기사화되고 알려지면서 내 마음은 세상이 나를 쫓아 보낸 거 같았어요. 옛날 전두환이 백담사에 있었을 때 무슨 생각이 났나하면 ‘손봐줄 놈’들 생각이 났다고 합니다. 자신에게 상처만 줬던 놈들만 생각이 났다고 합니다. 나 또한 그 6개월은 스스로 글쓰기를 멈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남이 나를 쫓아낸 것처럼 남에게서 받은 상처가 떠올랐어요. 살생부를 만들었지. 그런 마음이 있어요.
▲ 시선의 내면화
그런데 6개월 지나니까 풀리면서 시선이 내면화되는 거예요. 그 산골에 홀로 들어가는 것은 또 다른 실존이라는 거죠. 끝없이 높은 절벽에 걸린 외나무다리를 건너가는 것. 그것은 실존이에요. 단 한번만 잘못되면 천 길 낭떠러지로 위태로운 상황이죠. 그 실존적인 상태가 된다는 거예요. 실존은 내면화예요. 소설에서 내면화가 가장 중요해요. 내면화를 과거로 가는 걸로 할 수도 있어요. 내면화를 지향하려면 인물이나 작가의 위치를 실존적인 위치로 놓아야 해요.
실존적인 위치로 놓는다는 것은 자기 삶이나 자기의 인물들을 위기의 상태로 놓은 거예요. 그 위기는 각자의 세계화와 다르죠. 객관적인 위기 상태가 아니라 위기를 인식하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위기를 인식하고, 실존하면서 내면화는 여기서 생겨나는 거예요. 처음 6개월은 분노하고 화내고, 내가 위기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지만 6개월이 지나니까 내 삶에 대한 실존, 내면화가 된 거죠. 그러다가 불현듯 엄마 젖 먹던 것이 생각나는 거예요. 바로 그걸 통해서 겉으로는 불같이 질주해오던 삶에서 비로소 내부의 다양한 인격들을 내 인생을 본거죠.
▲ 숨 막히는 삶 속에서 어머니의 젖을 떠올리다
30대, 40대에는 마치 달리기 하는 것처럼 질주의 관성이었어요. 자칫하면 굶어죽을 것 같고, 정신없이 뭔가에 내쫓기듯 달려왔어요. 하지만 내 안에서는 한 사람의 인격이 들어있는 게 아니라 다섯 개의 열 개의 인격이 들어 있어요. 그 인격들이 서로 갈등하고 부딪치고 헐뜯고 그러니까 우리가 괴로운 거지. 가만히 거품을 빼보면 내부 속의 다양한 다중 인격들 대문에 괴로운 거야.
왜 나는 40년, 50년을 달리듯이 쫓기듯이 나는 두 계단씩 세 개단씩 올라갔나. 급할 이유가 없는데 나는 그렇게 살았어요. 평생 불안하게 하고 매달리게 했던 것이 내 안에 있는 어떤 것의 인격인가. 그러다가 우리 어머니 젖이 떠올랐어요. 무릎을 쳤어요. 그래 왜 내가 그걸 몰랐지.
▲ 엄마의 빈 젖을 통해 작가가 되다
나는 5,6학년 까지 젖을 먹었지만 한 번도 배불리 먹은 적이 없어요. 옛날 40년 때 가난한 나라 평균수명이 50대를 넘지 않았어요. 어머니의 육체는 지금80대 정도, 얼굴엔 검버섯, 또 나를 안기 전에 7-8년 살은 아이 4명에게 젖을 먹이고 난 다음, 고독하고 신산한 인생이었지요. 나라 자체도 가난하고 육체는 병든 80세 노파지요.
젖은 마치 풍선 빵빵한 것처럼 그랬지요, 나는 탄생할 때, 엄마젖을 먹었을 때 한 번도 내 위장을 충분히 적셔주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어요. 나는 국민학교 6학년 때 젖을 먹었지만 엄마 젖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풍요와 충만의 기억이 엄마에게서 없었던 거야. 그때 인식 속에 없었지만, 내가 엄마 젖이 빈 젖이라고 스스로 인식하고 있지 않았지. 삶 속에 어떻게 관여하고 있는지 몰랐지. 실존적 자리에서 비로소 아, 어머니의 빈 젖이 나의 삶을 굉장히 고통스럽게 지배했다는 것을 알았어요.
나이가 쉰 될 때가지 배불리 먹을 것을 찾아 헤맸구나. 그리고 내 삶에서는 부러진 가위에서 빈 젖에 이르는 것이 지금의 나를 50프로 결정했구나. 내가 여기서 강의하는 것, 눈 빛, 말하고 싶은 것은 모두 빈 젖과 관련 있어요. 나는 작가로 살아오면서 40대 중반까지 몰랐어. 빈 젖이라는 상징되는 삽화라는 것이 나를 어떻게 억압하고 조정하는지 몰랐어. 이것이 채워지지 않는 선험적이고 운명적이고 결정론적인 절필이었던 거예요. 나는 빈 젖 때문에 그 결핍을 쫓아서 흔들리고 있지만 저 어머니의 빈 젖 때문에 나는 작가가 되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