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규정은 부정을 포함한다

스피노자가 말하는 ‘실체’라는 개념은 이렇습니다. 다른 사물의 개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자기 안에 있고 자기를 통해서 인식되니까 그걸 이해하기 위해 다른 게 필요하기 않죠. 자기 충족성을 가집니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무한한 것. 왜냐면 유한은 다른 것을 필요로 합니다. 부정을 필요로 합니다.

유한한 것은, 유한해 지기 위해서는 “뭐는 아니야”라는 부정이 들어가야 유한한 게 되죠. 그러니까 유한은 항상 부정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니까 그 부정이 필요 없는 것. 실체는 부정할 수 없는 거기 때문에 자기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거고 외부에서 그것을 부정할 수 없는 거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무한한 것입니다. 그래서 스피노자의 유명한 말이. 이 맥락에서 “모든 규정은 부정이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얗다”라고 얘기하면 한마디로 뭡니까? 검지 않다는 거잖아요. 빨갛지도 않다. “이건 사람이다“ 이 말은 동물이 아니다.


▲ 무한한 절대자인 신은?

유한하다는 것을 규정하면 부정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절대자인 신(神)은 어떨까요? 그럼 부정을 포함한 것은 뭐가 아니다 라고 이해되는 거니까 다른 것을 통해서 규정되는 것이죠. 다른 것을 통해 이해되는 것이기 때문에 실체의 규정에 어긋납니다. 따라서 유한은 타자(他者)를 전제로 하는데 실체는 자기를 통해서만 인식되니까 절대적으로 무한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한한 것과 유한한 것은 공통 성질이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가 다른 하나를 산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혀 별개의 것이니까 두 개는 관계를 맺을 수 없고 따라서 하나가 다른 하나를 산출할 수 없다. 그러니까 정통 신학에서 신이 유한자를 만들었다? 이런 얘기는 안 맞는 얘기다. 어떻게 무한한 것이 유한한 것을 만드냐? 왜냐하면 무한한 것이 유한한 것을 만들면 그 만큼 그 유한한 것을 만든 존재로써 제한되기 때문에 무한한 게 유한한 것을 만들 수 없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이고. 그래서 실체는 자기 원인적인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죠.


▲ 전통적 신 관념에 반기를 들다

스피노자는 이제 전통적 신에 대한 비판을 제기 합니다. 신에게 지성과 의지를 부여하는 발상을 비판하죠. 신한테 지성과 의지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 모델로 얘기하는 거란 말이죠. 기독교 안에는 갈등이 있다고 했죠. 신의 전지성에 우위를 둘 것이냐? 전능성에 우위를 둘 것이냐? 신의 지성을 강조할 것이냐? 신의 의지를 강조할 것이냐? 전지를 강조하건 전능을 강조하건 둘 다 신을 인간 모델로 생각하는 거고 그런 신 개념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 신은 신의 규정, 무한한 자, 자기 안에 존재하는 자와 맞을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에 대한 이해는 오직 합리적 논증에 기초해서 접근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전통적인 신 개념을 폐기합니다. 어떤 게 전통적인 신 개념이냐? 예를 들면 각자의 개인을 돌보는 개인적인 신. 이게 실존주의적인 신인데. 어떻게 보면 요즘 기독교인들이 고백하는 신은 이런 경우에 가까워요.


▲ 야훼는 피곤해

기도하는 자에게 신이란 사실, 자기 나름의 신입니다. 그래서 야훼는 굉장히 피곤하다 이거죠. 사람들이 다 제각기 자기 방식으로 생각하니까. 왜냐하면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서로 이해관계 당사자인데 어떤 사건이 성사하면 a는 이익을 얻고 b는 손해를 보고. 성사 안하면 b가 이익이고 a는 손해 보는데, 전부 기도하잖아요. 성사되기를 바랍니다. 성사 안 되기를 바랍니다. 신 괴롭죠. 어떻게 할 겁니까? 그러니까 이해관계를 놓고 바라는 신이기 때문에 신은 만인의 신이 될 수가 없죠.

어느 한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는데, 일종의 실존주의적인 신입니다. 또는 전통적인 신 개념이 개인과 세계를 위해 신성한 계획을 가진 인격적인 존재고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바대로 행위를 할 수 있고 기적을 통해서 자연의 법칙을 중지시킬 수 있는. 이런 신 모델이 전통적인 신인데 거기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거죠. 그건 신이 아니라고 보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