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욕 많이 먹는 철학자
에피쿠로스만큼 많은 욕을 먹은 철학자도 드물다. 그를 비난하는 입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에피쿠로스는 대단히 탐욕스러운
사람이었다. 그에 따르면, 에피쿠로스는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토악질을 했고, 언제나 연회에서
술을 진탕 마셨다. 또한 창녀들과의 교류를 탐닉하였으며, 그가 창녀에게 보낸 편지는 매우 음란하다고 한다.
그러나 반대로 에피쿠로스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그의 '절제'를 찬양하였는데, 이들의 말에 의하면 에피쿠로스는 결코
과도한 음주를 하지 않았고, 이따금씩 포도주를 마시는 게 전부였다. 육체적 사랑도 대단히 절제했는데, 에피쿠로스는
사랑의 향락이 아무런 이익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또한 노예들을 인간적으로 존중했기 때문에, 유언장에는
노예를 풀어주라고 했다. 과연 어느 쪽의 말을 믿어야 할까? 두 입장의 말은 완전히 상반된다.
행복을
찾는 두 가지 방법 - 예술과 철학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에피쿠로스가 후기 그리스 철학의 주목할 만한 세계관 중 하나를 개척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쾌락주의와
금욕주의로 일컬어지는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 이 두 진영은 당시 인간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분투한 대표적인
학파였다.
여기서 에피쿠로스는 인간의 행복을 위해 쾌락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예술에 대한 탐구와
철학하기였다. 물론 에피쿠로스가 육체적 향락도 행복의 하나로 보았던 것은 사실이나, 정신의 환희를 더욱 중요시 여긴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가 철학하기를 중요하게 여긴 이유는 인간이 이성적이지 못한 채 쾌락의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이성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최고의 재물."이라고 말했다.
에피쿠로스는 정말 반대편 진영의 증언대로 방탕한 사람이었을까? 혹은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묘사하는 것처럼 절제의
삶을 살았을까? 이 상반된 증언들은 마치 영화 <라쇼몽>을 보는 것처럼 혼란스럽다.
스토아학파의
제논(Zenon)
에피쿠로스와 대척점에 있었던 제논(Zenon)은 금욕주의로 표상된다. 제논은 여러 측면에서 에피쿠로스와 반대편의
입장이었는데, 에피쿠로스가 인간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반면 제논은 '의무'에 관심이 많았다. 또 한편으로
에피쿠로스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받아들여 자연이 가진 우연적 특성을 자연관으로 삼았는데, 제논은 자연을
이루는 것은 엄격한 법칙이라고 믿었다.
과연 이 두 학파 중 하나는 옳고 다른 하나는 틀린 것일까? 이러한 우열을 가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행복만큼이나
절제의 미덕이 소중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오늘날 과학에서 말하는 자연에는 우연에 근거한 혼돈(Chaos)의 특성과
법칙의 결과인 질서(Cosmos)의 모습이 모두 나타난다. 마치 이 모순된 두 가지가 자연에서 발견되는 것처럼,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는 서로 대척점에 있으면서도 그리스 후기 철학을 이루는 세계관으로 아직도 그 이름이 전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