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의 시작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보자. 한 철학자가 있다. 그는 하늘을 햇살을 받으며 하늘을 날아가는 아름다운 새를 보았다. 그는 그 새를 갖고 싶어서 그물을 이용해 어렵사리 그 새를 잡았다. 하얗게 빛나는 그 새를 잡았다는 기쁨에 그물을 펼쳐보자, 그물에 잡힌 것은 하얀 종이에 불과했다. 바람에 날린 종이가 햇빛을 받아 반사되면서 마치 아름다운 새처럼 보였던 것이다. 이것은 마치 장자의 호접몽처럼 모호한 상황인데, 도대체 그 아름다운 새는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철학자는 머릿속에 기억된 그 아름다운 새를 상상하며 생각에 잠긴다.

"새는 없었던 걸까? 있다면 머릿속에만 있는 걸까?"


데카르트
데카르트(Ren Descartes)의 질문은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출발한다. 눈으로 본 것, 손으로 만진 것이 믿음의 근거라는 가정이 깨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더욱 집요하게 질문을 계속한다. 오감을 통한 정보가 오류로 가득한 것이라면, 과연 이성적 추론은 믿을 수 있는가? 그는 악마가 어깨위에 올라타서 '1+1=3' 이라고 속이기만 한다면 인간은 얼마든지 속아서 믿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이른다.
한 잔의 우유를 권하는 아내, 눈앞에 보이는 두 개의 손, 오늘 아침에 먹은 요리. 모두 가짜일 수 있다. 이 엄밀하기 그지없는 질문은 놀라운 것이다. 가상현실이라는 개념이 보편화되어가는 현재, <매트릭스>(1999)와 같은 영화는 설득력 있게 '모든 것이 거짓'일 수 있는 가상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데카르트의 질문은 이보다 300년을 훌쩍 앞선 질문이었다. 그는 그 시절에 이미 가상현실을 상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버트런드 러셀, 데카르트의 질문에 반론을 제시하다
러셀(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은 여기에 한 가지 의문을 덧붙인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에서, 생각이 진행되는 것은 사실이나, 생각의 주체가 '나'인지 어떻게 알 것인가? 따라서 생각의 주체를 '나 자신'으로 결정해버리는 것은 성급하다는 것이다.
다시 이 질문은 어려워졌다. 오감으로 받아들인 정보가 옳은가, 그른가의 문제 이전에 고려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졌다. 이러한 고도의 엄밀성은 서양철학의 매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엄밀성은 복잡한 미궁을 만들어냈고, '나의 존재'에 대한 문제조차도 해결되지 못할 난제로 변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