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운덕 교수의 철학시리즈가 첫발을 내디뎠다. <철학자들>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학기마다 철학자, 혹은 철학자들을 다룰 예정이다. 모든 첫 경험이 중요하듯 첫 철학자도 중요하다. 첫 철학자는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니체다. 좋아하는 것과 아는 것은 다르다. 많은 이들이 니체를 좋아하지만 정작 그와 그의 철학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한다. 양운덕 교수가 니체의 철학 혹은 철학자체를 즐길 수 있게 여러분을 그 안으로 쑤욱 밀어 넣어 줄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모든 첫 경험이 중요하듯 첫 철학자도 중요하다. 첫 철학자는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니체다.
좋아하는 것과 아는 것은 다르다.
많은 이들이 니체를
좋아하지만 정작 그와 그의 철학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한다.
양운덕 교수가 니체의 철학 혹은 철학자체를 즐길 수 있게
여러분을 그 안으로 쑤욱
밀어 넣어 줄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니체는 ‘신의 죽음’을 선언했다. 신의 죽음은 무엇을 뜻하는가? 신의 피조물이었던 인간의 격상을 뜻할까? 신이라는 보편적인 가치 담당자가
죽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보편적 가치를 마련할 수 있는가? 또한 이런 가치는 우리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까? 아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까?
이제 우리의 과제는 진리와 도덕을 넘어서서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고, 뼛속까지 스며든 허무를 배경으로 허무를 넘어서는 길을 찾는
것이다. 우리는 니체에게 어떤 답을 돌려줄 것인가?
니체는 바닥 없는 세계에서 긍정적으로 사는 길을 모색한다. 우리는 니체의
질문들을 우리들의 문제와 관련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도덕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이용되는지, 보편 진리가 어떻게 사고를 제약하는지, 선-악
너머에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지, ‘즐거운 학문(쾌락학)’을 마련할 수 있는지, 힘-의지와 영구 회귀로 허무와 맞서 싸울 수 있는지를! 이와
함께 현대철학에 끼친 그의 영향력을 조감하기 위해서 현대적 니체 해석도 다루고자 한다. 우리는 왜, 무엇을 위한 (반)니체주의자인가?
-『도덕의 계보』 -니체의 도덕 비판 -칸트와 헤겔의 도덕에 대한 인식 -니체 선악의 기원 -가치들의 가치 (가치의 관점) -악인과 선인 -귀족 도덕과 노예 도덕 -인간의 태도 -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양심은 어떤 작용을 하는가 -들뢰즈의 『도덕의 계보』 해석 -금욕주의 -허무를 향한 의지
-들뢰즈의 니체 해석 -니체와 철학의 대결 -원한에서 가책까지 -욕망은 생산이다 -비극적 사고 -현실에 대한 부정적인 사고 -가치 판단의 가치 -의식과 자기 의식 -플라톤 주의의 전복 -복수주의 (다원주의) -차이의 철학 -데카르트의 기계적 세계 -파스칼의 무한 -고통에 대한 인식 -영원회귀의 윤리적 명령 -자기 긍정 -양인가 맹금인가
양운덕 (철학자)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철학과 대학원에서 헤겔 연구(「헤겔 철학에 나타난 개체와 공동체의 변증법」)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구 근·현대 사회철학에서 전개된 개인과 공동체의 상관성이라는 주제를 탐구하면서, 최근에는 질서와 무질서의 상관성에 주목하는 복잡성의 패러다임(모랭), 헤르메스적 인식론(세르), 자율과 창조성의 원천인 ‘상상적인 것’(카스토리아디스) 등을 공부하고 있다. 연구실 ‘필로소피아’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다양한 철학과 문학의 고전들을 폭넓고 깊이 있게 소화하기 위한 모임과 강의를 하고 있다.
- 저서
『살림지식총서 사상의 흐름 세트 - 전5권』(공저, 살림, 2014)
『피노키오는 사람인가, 인형인가?』(휴머니스트, 2012)
『문학과 철학의 향연』(문학과지성사, 2011)
『변증법적 모순』(중원문화, 2009)
『보르헤스의 지팡이(소설 쓰는 철학자 보르헤스 다시 읽기』(민음사, 2008)
『미셸푸코(살림지식총서 26)』(살림, 2003)
『라쁠라스의 악마는 무엇을 몰랐을까』(창작과비평사, 2001)
『비트겐슈타인은 왜 말놀이판에 나섰을까』(창작과비평사, 2001)
『피노키오는 사람인가 인형인가』(창작과비평사, 2001)
『아킬레스는 왜 거북을 이길 수 없을까』(창작과비평사, 2001)
강의가 알차고 흥미롭습니다. 8강 동안 니체와 니체를 만든 사상가들과 이념들을 집중적으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뿌듯한 시간이었어요. 감사드립니다. 특히 도덕의 계보에 대해서 설명하시는 강의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수
잘 들었습니다.
백*환
니체가 어렵기도 하지만, 선생님의 강의도 조금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정말 잘 가르쳐주시는 것 같아요. 어렵기는 한데, 니체에 관한 여느 강의보다 훨씬 이해도가 높았던 것 같아요. 선생님이 하신 철학자에 대한 강의가 몇 개 더 있는 것 같아요. 다 들어보려고요. 기대가 큽니다.
우수
하이데거의 니체 해석
운*애
수업을 통해 하이데거의 니체해석이 황당했습니다. 자신의 '존재론'으로 니체와 대결하는데요. 이상세계, 절대적진리, 이분법을 비판한 니체인데 하이데거는 니체가 오히려 형이상학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하이데거의 니체관점이 궁금하여 저서를 찾아보니 니체강의를 했던 논문을 묶은 저서 .니체 1, 이 있는데요. 재밌는 점은 하이데거가 나치집권시에 대학총장으로 취임하여 삶에 오점을 남겼는데 저서 니체는 자신의 나치참여 반성과 성찰의 기록이라는 점입니다. 또한 니체는 전통형이상학을 극복하려하지만 오히려 완성하고 있는반면 하이데거 자신은 진정으로 전통형이상학을 극복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이데거의 논리가 찝찝하네요. 수업시간에 '존재의 틀로 본 하이데거의 니체해석' 도무지 따라가기가 어려웠습니다. '신의 죽음도 본질이 사라지므로 비본질도 지위를 잃는다, 니체의 사유를 존재와 존재자의 차이를 없앤 존재론의 한 형식으로 본다'고 합니다. 관련 저서인 니체와 니힐리즘을 읽어보면 하이데거의 논리가 인정이 될까요. 힘의 의지도 힘 -의지의 형이상학이라고 하며 이는 허무주의라고 해석합니다. 니체의 사상이 형이상학 깔대기로 모아지네요. 개인적으로 존재의 의미보다 변화와 차이의 의미, 가치를 높이 평가하기에 하이데거의 니체해석이 흥미롭긴하지만 매력적이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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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 권합니다
최*희
교수님의 해박한 지식이 돗보이는 강의입니다. 니체에 국한되지 않고 일반 철학을 공부하는데에 필요한 여러 개념들에 대한 설명도 좋습니다. 니체의 중심사상인 영혼회귀에 대한 설명이 미약한 것이 못제 아쉽습니다. 오프라인 강의에서는 보충이 있는 것 같은데 온라이 강의는 그것이 안되어 아쉽습니다.
5
양운덕 선생님의 강의입니다.
박*미
양운덕 선생님의 강의를 좋아합니다. 선생님 뭔가 푸근한 느낌이 들고 설명도 잘해주셔서 좋아요.ㅎㅎ 깊이도 있고...저도 하이데거가 니체를 해석한 부분이 인상적이네요. 저는 아직 더 공부할 것이 많아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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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운덕 선생님 감사해요ㅎㅎ
송*섭
양운덕 선생님의 강의는 두번째인데 늘 재미있게 듣고 있습니다. 자세한 설명 감사드려요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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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방식으로 니체 읽기
윤*경
니체에 대한 여러 철학자들의 생각을 알 수 있어서 유익한 강의입니다. 철학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니체를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강의를 들으면서 공부를 더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잘 들었습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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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힐링되는 강의
r**wpals11
니체는 요새 부는 힐링 바람을 결코 좋아하지 않겠지만, 이상하게 이 강의를 들으면 힐링이 됩니다. 양운덕 선생님이 제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라서 그럴까요?(제가 딱 그 나이입니다) 선생님 강의를 듣고 있으면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강의 질이 아주 좋습니다. 여러 니체 강의를 들었는데 이만한 콘텐츠를 가진 강의들은 많아도 이런 질을 가진 강의는 못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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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몰락, 형이상학적 기쁨, 음악>
m**chus
양운덕 선생님 1주차 수업 후기입니다.
<비극의 몰락, 형이상학적 기쁨, 음악>
'니체 사상의 가장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 원리나 근거는 없지만 모든 생명체는 힘에의 의지를 통해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자기를 정당화하는 힘을 강화면서 스스로의 의미를 만들어가고 있다.
'비극의 탄생' 그리스 고전 비극에 대한 니체의 독특한 해석을 통해 후기 니체 사상을 가늠할 수 있는 저서라고 볼 수 있다.
아폴론적 원리는 아름다운 가상의 세계를 나타내는 표면적인 세계로서 허무하고 무의미한 삶을 이겨내기 위해 이상화된 미를 추구한 세계이다. 절제와 조화, 질서와 원리를 추구한 이상화된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원리인 것이다.
즉 "아폴론은 개별화의 원리를 밝히는 정령으로서 가상에 의한 구제를, 디오니소스는 신비적 환호성에 의해서 개별화의 속박을 깨뜨리고 존재의 어머니, 사물의 핵심에 이르는 길을 마련하는 원리이다. " 디오니소스적 원리는 혼돈과 도취의 세계로서 '원초적인 하나' 이다.
이러한 두가지 원리의 대립이 그리스 비극의 내적인 대립항이자 비극 자체를 풍성하게 만드는 원리이다. 즉 비극의 몰락을 통해 아폴론적인 가상이 무너지면서 삶의 본질(즉, 고통과 허무)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음악은 표상을 넘어선 세계로서 원초적 세계를 표현하는 이념이다. 개체가 몰락하는 환희를 음악 정신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디오니소스적 예술은 개별화의 원리 배후에 있는 전능한 의지를 표현하는 예술, 모든 현상의 피안에 존재하며 어떤 파괴에도 굴복하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표현한다. 비극적인 것이 형이상학적 기쁨을 주는 것은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인 지혜가 형상의 언어로 번역되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소크라테스의 이성은 비극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유리피데스의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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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도덕적 의미에서의 진리와 거짓에 관하여>
m**chus
양운덕 선생님의 <우리들의 니체 읽기> 2주차 수업 후기입니다.
<비도덕적 의미에서의 진리와 거짓에 관하여>
"수많은 태양계에서 쏟아 부은 별들로 반짝거리는 우주의 외딴 어느 곳에 언젠가 영리한 동물들이 인식이라는 것을 발명해낸 별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세계사'에서 가장 의기충천하고 또 가장 기만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한 순간일 뿐이었습니다. 자연이 몇 번 숨쉬고 난 뒤 그 별은 꺼져갔고, 영리한 동물들도 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니체는 진리를 보는 태도, 즉 관점주의를 제시했다.
따라서 진리는 없다. 니체에 의하면 진리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사라지면 진리도 없는 것이다. 인식(보편 타당한 앎. 즉, 진리)이란 것은 인간이 살아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진리보다 삶이 앞선것이다. 진리가 인간을 앞서고 넘어서, 인간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과연 인간의 지성이 인간 너머까지 갈 것인가? 기존의 철학은 삶을 무시하고 진리를 추구했다. 하지만 삶이 진리보다 앞선다.
칸트는 '선험적 형식'으로서의 인식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인식은 경험과 함께 시작되지만 모든 인식이 경험으로부터 나오지는 않는다."
이를 바탕으로 니체는 각 종의 인식 형식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차이, 다양성, 관점의 개별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인식의 가장 일반적인 효과는 착각이다.......개체 보존을 위한 수단으로서 지성은 자신의 주된 힘을 착각(기만)을 통해 전개한다."
"그들의 지각(감각)은 어느 곳에서도 진리에 이르지 못하고 오직 자극을 수신하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다...... 자연은 열쇠를 던져버렸다."
즉 진리란 것이 어디에 쓰는 것인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실제로 진리 속에 얼마나 많은 불순물이 섞여 있는지.., 이러한 모든 것이 현실이라면 우리에게 진리 충동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이상한 일이라고 니체는 말한다. "정황이 이렇다면, 진리를 향한 의지는 도대체 세계의 어느 곳에서 나온 것인가!"
니체는 파르메니데스의 존재와 비존재의 세계관이 아닌 헤라클레이토스의 생성과 변화의 세계관을 따르면서 이 세계를 생성 이외의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니체의 진리 비판은 우선 인간의 언어로 부터 시작한다. "언어의 입법은 또한 진리의 첫번째 법칙을 제공한다.(즉 언어 속에서 진리가 만들어진다.)....... 그는 진리가 가져다주는 삶을 보존하는 편안한 효과들을 욕망한다."
"언어의 규약들은 어떤 상황에 있는가? 그것들은 인식과 진리감각의 산물들인가? 표시와 사물들은 일치하는가? 언어는 모든 실재와 일치하는 표현인가?"
"그렇다면 진리는 무엇인가? 유동적인 한 무리의 비유, 환유, 의인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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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의 계보>
m**hus
양운덕 선생님의 <철학자들 I - 우리들의 니체 읽기> 3주차 수업 후기입니다.
<도덕의 계보>
니체의 도덕 비판
칸트는 <실천이성비판>을 통해 완전한 도덕, 보편적 도덕을 말한다. 즉 도덕적 의도, 도덕적 내면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반면 헤겔은 도덕과 윤리를 분리하며 도덕적 내면성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규제하는 윤리가 중요하다고 하였다. 즉 공동체의 생활양식인 에토스를 강조하였는데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극 <사천의 선인>의 예에서 나타나듯이 브레히트와 헤겔은 개인을 넘어서는 공동체의 윤리적 태도를 중요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개인적 윤리는 제한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고 공동체의 윤리는 보편적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인가?
니체는 이 모든 것들에 망치를 가져다 댄다. 니체는 다음의 3가지 질문을 통해 도덕성 자체를 공격함으로써 개인적 도덕과 사회적 도덕이 지닌 허구성을 공격한다. (도덕에 대한 심리학적 비판)
1. "선/악 이라는 판단은 올바른 것인가?"
니체에게 선/악과 우/열은 다르다. 선/악은 기독교식 도덕 (노예의 도덕)이고 우/열은 강한 자의 도덕 (주인의 도덕)이다.
여기서 "가치의 관점(perspective)"가 만들어지며 삶의 태도가 만들어진다.
선/악은 어떤 기원과 파생을 지니고 있을까. 인간은 어떤 조건에서 선악이라는 가치의 문제를 생각했는가. 니체에 따르면 도덕주의자들은 욕망을 억제(제한)해야 하기 때문에 도덕은 인간을 약하게 한다고 말한다. 즉 (선/악의) 가치판단이 우리의 삶에 봉사하는지, 아니면 우리의 삶이 가치판단에 봉사하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치판단이 삶의 빈곤과 퇴화의 징조는 아닌가 니체는 묻고 있다. 즉 '가치들의 가치'를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니체에 따르면 선/악이라는 판단은 '원한감정'이며 타자부정을 앞에 세워서 자신을 긍정하는 방법이다. 서양철학은 근본적으로 주어+술어로 구분된 언어적 착각 때문에 주체와 행위자, 즉 실체와 속성이 분리되어 있는 구도라는 것이다. 언어는 자극, 이미지, 소리, 개념의 다른 것들을 같게 만드는 은유이며 (자극->이미지->소리->개념) 따라서 니체에게 행위자라는 개념은 상상적 허구인 것이다.
이러한 '원한의 추론'이 인간다운 태도 (즉 기독교적 태도)인 것으로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며 동시에 인간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즉 주인의 태도는 긍정이며 노예의 태도는 부정을 통한 긍정으로서 이 노예의 태도에서 도덕이라는 것이 고안되어 나오게 된다.
2. "죄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 양심이라는 것은 과연 어떤 작용을 하는 가."
니체는 양심의 가책을 인간이 원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사회 속에 살면서 스스로를 공격하려고 하는 공격충동으로 보고 있다. 즉 양심은 도덕적 장치이기도 하지만 양심이 강할 수록 자신을 학대하는 가학적 장치, 즉 공격성의 개념으로 보고 있다. 이 부분은 푸코의 <감시와 처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3. "금욕주의적 이상은 무엇을 뜻하는 가?" 니체는 금욕주의의 본질이라는 것은 없고 금욕주의적 태도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즉 금욕주의자들에게 삶은 목표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한 다리 정도 밖에 되지 않으며 삶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적대적인 태도와 관련한 삶에 대한 원한 감정이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허구이며 제한된 관점을 인정해야지만 다른 관점을 생각할 수 있다. 우리의 관점은 기본적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관점을 가지는 것, 보다 많은 눈을 가지는 것이 풍성의 표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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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저편
운*애
강의듣고 적은것과 개인적으로 읽은부분 정리했네요. 정리하는 의미에서 매주 올리려고 합니다.^^
진리에의 의지 불변하는 궁극적인 진리가 있는가. 니체는 진리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누가 진리를 만들고 진리를 어떻게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지 관심을 가졌다. 그는 ‘가치에 가치를 묻는’ 위대한 사건이고 사상이었다. - 진리를 향해 왜 달려가는가 - 진리에 가치가 있는가 - 진리가 선한가 - 진리가 진리 아닌 것 보다 삶을 즐겁고 건강하게 만드는가 니체는 관점주의를 얘기한다. 삶을 보는 관점은 무수히 많다.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 세상을 보는 눈은 단순하지 않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처럼 하나의 진리, 하나의 관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귀함이란 무엇인가? 거리의 파토스 니체는 귀족적인 정신을 긍정적으로 보았는데 ‘거리의 파토스’가 생길 수 밖에 없다. 만물이 평등함은 서로의 차이를 없애버리는 것이며 생명의 본질에 위배된다. 모든 생명체는 힘에의 의지이기 때문에 ‘착취’는 살아있는 것의 본질이다. ….. 감상적인 허약함을 배격해야만 한다 : 생명 그 자체는 본질적으로 이질적인 것과 좀더 약한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며, 침해하고 제압하고 억압하는 것이며 냉혹한 것이고, 자기 자신의 형식을 강요하며 동화시키는 것이며, 가장 부드럽게 말한다 해도 적어도 ‘착취’이다 선악의 저편 , 273 주인의 도덕과 노예의 도덕 도덕의 두 유형 중 ‘주인의 도덕’을 가진 고귀한 인간은 스스로를 가치를 결정하는 자라고 느끼기에 타인의 인정은 불필요하며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는 자다. “고귀한 인간 역시 불행한 사람을 돕지만, 그러나 거의 동정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넘치는 힘이 낳은 충동에서 돕는다. “276 이는 그리스로마시대의 ‘자기배려’ 개념과 닮아있다. 성인남성의 자기배려는 내적 성찰, 자기연마로 나타나는 자기의 ‘좋음’이 타인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니체가 말하는 ‘복된 이기심’과도 통한다. 노예의 도덕은 ‘선’과 ‘악’의 대립을 발생시키며 강한 자의 덕에 원한을 가진다. 강한 자는 힘을 행사하지 않을 수 있는데 행사하므로 ‘나쁨’이며 위험하다. 상반되는 나는 선하다. 노예의 도덕은 ‘외부’을 필요로 하며 타자를 통해 내가 존재하고 가치가 매겨진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 수 없다. 타인의 평판에 기댄다. “고귀함이란 …….. 믿음이다. 그것은 고귀한 영혼이 자기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어떤 근본적인 확신이며, 구할 수도 없고 찾을 수도 없으며 아마 잃어버릴 수도 없을 것인 그 무엇이다. 고귀한 영혼은 자기자신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있다. “304 고귀함은 천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신에 대한 영원한 사랑이 아닐까. 니체의 운명애.
13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부
운*애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 첫 번째 텍스트 '세 변화에 대하여' 를 읽으며 양운덕샘의 자세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정신의 세가지 변신인 낙타, 사자, 어린아이는 단계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한 평생 낙타처럼 짐깨나 지는 정신으로 현실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살 수 도 있구요. 사자의 정신으로 현실에 저항하며 자유쟁취에 대한 에너지를 쏟으며 살 수도 있네요. 관습을 상징하는 '용'과 한판승부도 펼치면서요.
어린아이의 정신이 중요한것은 새로운 가치의 창조가 이루어집니다. 어린아이는 망각, 새로운 시작점, 놀이,최초의 운동,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자동)입니다.
어린아이 되기가 최고같지만 낙타의 정신으로 사는 것도 필요합니다. 책임질 일을 책임지면서 고달픈 삶을 인내할 필요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맹목적인 복종과 삶을 무겁게 만드는 짐을 지며 즐거울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현재 행복하다면 어린아이를 지향할 필요는 없겠죠.. 그러나 삶이 즐겁지 않고 무겁다면 변신이 필요합니다.
'배후세계를 신봉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현실이 괴롭고 힘들기때문에 또 다른 세계를 꿈꾸게 되기도 합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처럼 참된 세계가 따로 있다고 믿고 싶기도 하구요. 기독교의 도덕은 현재의 삶을 중요하게 보지 않습니다. 니체는 '지금, 여기' 이 대지의 삶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이성중심주의자들인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에 대하여' 에서도 영혼을 중시하는 자들을 공격합니다. 신체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육체, 정신, 의지를 내포하며 다양성, 복함체입니다. 어린아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신체이자 영혼이다. 하나의 의미를 지닌 다양성입니다.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에서 니체는 피로 쓴 글만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 피와 잠언으로 쓰는 사람은 그저 읽히기를 바라지 않고 암송되기를 바란다." 게으름을 피워가며 책을 뒤적이는 자를 미워합니다. 위버멘쉬는 특정 인간을 지칭하기 보다는 나를 넘어서는 것을 말합니다. 스스로 극복해야하는 개인적 목표를 삼죠. 우리에게는 천개의 길, 천개의 목표가 있습니다. 하나의 목표라면 위버멘쉬이겠지요. 스스로를 고양시키고 고귀하게 만드는 삶을 위해서 위버멘쉬는 꼬옥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