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 살수록 모르는 게 있다. 어렸을 적엔 나이가 어느 정도 먹으면 적어도 어떻게 살아야겠 다는 생각 때문에 흔들리지 않을 줄 알았다. 누구보다 삶의 방향을 확고하게 잡았다고 생각했기에 열심히 살면 될 줄 알았다. 헌데 살아보니 인생이라는 게 확실한 게 어디 있으며 정해진 길 또한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안다고 해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없이 흔들리면서 가는 게 삶이라는 것을 불혹의 나이 넘어서 절절이 느끼고 있으니, 불혹은 아마도 이렇게 흔들림이 많으니 그러지 말라고 누군가 부러 지어놓은 말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흔들리다가 다잡고 다시 살아가는 게 우리네 일상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무척이나 힘들다. 매일매일도 그렇거니와 앞으로 살아갈 일을 생각하면 더더욱 막막해질 때가 있다. 요즘처럼 가을이 깊어지는 시간이면 더욱 마음을 달래지 못한다.

   그러던 차에 창녕의 우포늪을 가게 되었다. 70여만 평의 드넓은 늪지가 펼쳐져 있는데 끝이 아스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상상을 초월한 넓이였다. 우리나라 최대의 자연 늪지라는 말이 실감났다. 지는 해를 받은 억새가 하얗게 반짝이고 자맥질하느라 꽁지를 하늘로 쳐든 오리떼들이 유유히 헤엄치는 천상의 낙원 같은 곳이었다. 습지와 육지가 적당히 넘나들며 질펀히 펼쳐져 있어서 동식물이 살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이루고 있었다.

   저만치 늪 한 가운데 쓰러진 나무 등걸 위에 물닭 두 마리가 날개를 말리며 서 있다. 부리로 날개를 부비다가 물에 비친 제 그림자 한번 보고 하늘 한번 보고 옆에 있는 짝도 보고. 평화로웠다. 서쪽으로 기우는 햇살을 등에 지고 서 있는 물닭 두 마리가 새삼 부러웠다.

   그렇게 오랫동안 우포늪을 바라보았다. 부대껴오던 속이 좀 가라앉는다. 그동안 무수한 자맥질로 힘겹기만 하던 하루하루의 고달픔이 드넓은 우포의 품에서 그대로 잦아드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욕심내지 말고 담담히 살라고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물길이 손짓하고, 그 위에 빼곡히 누워 있는 마름과 어리연이 말하고 있다.

   그러다가 우포늪 언덕에 까맣게 익어가는 도깨비바늘을 보게 되었다. 아무것도 막아줄 것이 없는 언덕에 피어있던 도깨비바늘은 비바람에 시달린 탓인지 웃자란 줄기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바람에 수없이 시달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씨앗은 까맣게 말라서 사방으로 벌어져 날을 잔뜩 세우고 있다. 씨앗 바늘 끝에 이우는 햇살이 걸렸는데 반짝거림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씨앗은 무언가 닿으면 사정없이 들러붙어 멀리 가려고 잔뜩 벼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살아남기 위해서 가시를 날카롭게 벼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모지락스럽게도 가스러졌다.

   도깨비바늘을 보며 마치 나를 보는 듯 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둥그스름해지고 여유 있는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뭔가에 쫓기듯 초조하고 조급해하는 내가 씨앗 끝의 바늘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날을 잔뜩 세우고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바라보는 내가 보였다. 순간 콧날이 시큰했다.

   그동안 왜 그렇게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며 쓰려야 했나, 이제야 알겠다. 내 속에 무수히 돋아난 가시들 때문에 흔들릴 때마다 견딜 수 없이 아팠던 것이다.

   고개를 들어 멀리 우포늪을 바라보았다. 숨을 크게 들이 쉬며 우포늪의 여유와 널따란 품을 가슴에 들였다. 먼 이국땅에서 날아오는 새들도 무상으로 받아주고 이곳에 터전을 이루며 살고 있는 무수한 생명들을 말없이 보듬은 우포가 말한다. 도깨비바늘 씨앗처럼 그렇게 날 세우지 말고 너그럽고 따뜻하게 가라고, 날을 세우면 세울수록 아픈 것은 바로 그대라고. 해가 지고 있다. 물비늘이 쉼 없이 반짝거린다. 가을은 더욱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