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이 가장 예쁠 때는 봄꽃이 막 지고 새잎이 튀는 4월과 5월 사이가 아닌가 싶다. 봄빛에 말갛게 세수한 듯 투명하게 빛나는 새순을 볼 때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이즈음이면 엉덩이 붙이고 한 곳에 머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눈을 사로잡는 꽃들이, 연초록 새 잎사귀로 깨어나는 산들이 바깥으로 나오라고 끊임없이 유혹한다.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해 내달린 산길에서 하얀 바위말발도리를 만난다. 질펀하고 물렁물렁한 땅도 많은데 하필 바위 틈바구니에서 자라고 있다. 꽤 여러 그루를 보게 되었는데 하나같이 바위 위에 자리 잡고 있다. 하얀 튀밥을 달고 있는 것처럼 가지 위에 오종종 피어난 꽃잎은 순결해 보이는 한편 무척 고집이 세보이기도 하다. 물렁하고 기름진 땅보다는 딱딱한 바위 틈바구니만이 자신의 신념을 지켜줄 수 있다는 듯 고결해보이기까지 하다.
   사람이 살다보면 스스로를 벼랑 끝까지 밀어 붙여야만 속이 풀릴 때가 있다. 끝이 보일 때까지 깊이 가라앉고서야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고 생각할 때 겨우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며 숨을 쉰다. 그제야 비로소 이리저리 부대끼던 시끄러운 속이 좀 가라앉고 정갈해지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바위말발도리도 자신을 팍팍한 바위 속으로 밀어 넣어야만 비로소 깨끗해짐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이기지 못하는 듯, 바위 난간에 자라며 오가는 사람들에게 눈길을 보낸다.
   바위말발도리는 산지 바위틈에서 자라는 높이 1미터 정도의 낙엽관목이다. 산길을 오르다 보면 사람 눈높이에 딱 맞아, 꽃 피는 시기인 4월말과 5월 사이에 볼 수 있다. 다섯 개의 하얀 꽃잎이 깔때기 모양으로 수술을 감싸고 있는 작고 앙증맞은 꽃이다. 하얀 꽃잎마다 가장자리에 오글오글 주름을 잡아 한껏 멋을 부린 것이 매화말발도리와는 다르다
   바위말발도리는 작은 양의 물로도 살 수 있으며 건조한 곳을 좋아한다. 그래서 바위 위에서도 잘 자라는 것이다. 바위 중에서도 특히 벼랑 위의 난간을 좋아하는 것은 햇볕을 무척 좋아한다는 증거이다.
   말발도리라는 이름이 붙게 된 연유는 열매 모양이 말굽의 편자 모양을 닮았기 때문이다.
   어느덧 봄꽃이 지고 연초록 잎사귀가 막 돋아날 즘, 깊은 산 속 바위틈에 하얗게 손 흔드는 꽃을 보면 반갑게 인사하시라. 그 꽃도 사람의 발길과 눈길이 그리워 사람을 향해 길가나 벼랑 위에 까치발 뛰며 눈길을 보내는 것이니.
   바위말발도리를 보며 걸었던 그 산길과 함께했던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오글오글 주름져 귓가에 맴돈다. 이제 바위말발도리를 보면 어느 한 때의 봄 풍경이 가슴 아프게 와 박히겠다. 그리고 그 때의 그림 속 같은 사람들이 눈물 나게 그리워지겠다. (200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