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8년 5월 3일 새벽, 마드리드 외곽 프린시페 피오 언덕. 전날 시민들이 나폴레옹의 점령군에 맨손으로 맞섰고, 그 대가로 밤새 붙잡힌 사람들이 이 언덕에 줄지어 세워졌다. 프랑스군은 재판도 없이 총을 겨눴다. 죽은 이가 몇이었는지는 지금도 정확히 세지 못한다. 그로부터 6년 뒤, 예순여덟의 늙은 화가가 이 장면을 2.6미터 높이의 캔버스에 옮겼다. 전쟁화라면 으레 영웅의 말발굽과 나부끼는 깃발을 그리던 시대에, 그는 정반대의 것을 그렸다. 승리도, 명분도, 서사도 없는 순수한 도살(屠殺)을.
이 그림이 미술사를 갈라놓았다고들 한다. 왜 그런가. 답은 그림 한복판에 무릎 꿇지도, 도망치지도 않고 두 팔을 활짝 벌린 흰옷의 남자에게 있다.
하나. 영웅이 사라진 자리
그때까지 서양의 전쟁 그림에는 규칙이 있었다. 화면 중앙에는 말을 탄 장군이 있어야 했고, 죽음은 저 멀리 연기 뒤로 물러나 있어야 했다. 자크루이 다비드가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을 그렸을 때(『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1801), 영웅은 뒷발로 일어선 백마 위에서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다. 전쟁은 위대한 개인의 무대였다.
고야는 그 무대를 통째로 걷어냈다. 「1808년 5월 3일」에는 영웅이 없다. 이름을 남길 장군도, 후세가 기억할 지휘관도 없다. 남은 것은 이름 없이 죽는 사람들과, 이름 없이 죽이는 사람들뿐이다. 미술사가 케네스 클라크는 이 그림을 두고 "혁명적이라 부를 수 있는 최초의 위대한 그림"이라 했다(케네스 클라크, 『그림을 보는 법(Looking at Pictures)』, 1960). 무엇이 혁명이었나. 전쟁에서 영광을 빼버린 것이다. 그리고 영광이 빠진 자리에 무엇이 남는지를, 눈을 돌리지 못하게 들이민 것이다.
둘. 얼굴을 가진 자와 얼굴을 지운 자
그림을 오래 들여다보면 한 가지 비대칭이 눈에 들어온다. 총을 맞는 쪽과 쏘는 쪽이 전혀 다르게 그려져 있다.
희생자들에게는 저마다 얼굴이 있다. 두 팔을 벌린 흰옷의 남자는 공포와 항의가 뒤엉킨 눈으로 정면을 응시한다. 그 옆의 수도사는 고개를 숙인 채 기도하고, 누군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이미 쓰러진 시체는 피 웅덩이 속에서 눈을 뜬 채 굳어 있다. 하나하나가 다른 표정, 다른 자세, 다른 죽음이다.
반대편 총살대는 그렇지 않다. 프랑스 병사들은 등을 보인 채 한 덩어리로 서 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똑같은 군모, 똑같은 각도로 겨눈 총, 똑같이 앞으로 내민 다리. 사람이라기보다 하나의 기계, 방아쇠를 당기는 장치처럼 보인다. 고야는 죽이는 자에게서 얼굴을 지워버렸다.
이 대비는 그저 극적 효과가 아니다. 20세기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윤리의 출발점을 '얼굴(visage)'에서 찾았다. 타인의 얼굴은 나에게 무언(無言)의 명령을 내린다는 것이다. 그 명령은 "너는 나를 죽이지 말라"이다(에마뉘엘 레비나스, 『전체성과 무한』, 1961). 눈앞에 마주 선 얼굴은 그 자체로 폭력에 대한 저항이며, 그를 하나의 사물로 취급하지 못하게 막는 벽이다.
그렇다면 사람을 죽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얼굴을 보지 않으면 된다. 고야의 총살대가 등을 돌리고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들은 희생자의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다. 마주하지 않기에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 얼굴을 지운 자만이 얼굴 가진 자를 쏠 수 있다는 이 잔인한 진실을, 고야는 철학책보다 150년 앞서 캔버스에 못박아 두었다.
셋. 십자가 없는 순교자
흰옷의 남자를 다시 보자. 두 팔을 벌린 자세, 캔버스 앞으로 쏟아지는 노란 빛, 그리고 그의 오른손 손바닥에 희미하게 찍힌 검은 자국. 미술사가들은 오래전부터 이 자국을 예수의 손에 남은 못자국(성흔, stigmata)의 흔적으로 읽어 왔다(로버트 휴스, 『고야(Goya)』, 2003). 두 팔을 벌린 자세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의 도상 그대로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여기에는 십자가가 없다. 신도, 구원의 약속도, 사흘 뒤의 부활도 없다. 그를 비추는 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성스러운 빛이 아니라, 땅바닥에 놓인 네모난 등불 하나다. 인공의 빛, 총을 겨누기 위해 켜 둔 실용적인 조명일 뿐이다.
고야는 순교의 형식을 빌려오되 그 의미는 비워버렸다. 이 남자는 신앙을 위해 기꺼이 죽는 성인이 아니다. 그저 어제까지 마드리드 거리를 걷던 평범한 사람이고, 오늘 아침 영문도 모른 채 총구 앞에 세워졌을 뿐이다. 그의 죽음에는 아무 보상이 없다. 근대(近代)란 바로 이런 세계다. 하늘이 침묵하고, 고통이 아무런 뜻으로도 번역되지 않는 세계. 고야는 종교화의 가장 성스러운 도상을 가져와, 신이 사라진 시대의 헐벗은 죽음을 그렸다.
넷. 왜 지금 이 그림인가
「1808년 5월 3일」이 그린 것은 이백 년 전 스페인의 하룻밤이다. 그런데 이 그림은 그 뒤로도 계속 다시 그려졌다. 마네는 이 구도를 그대로 빌려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1868)을 그렸고, 피카소는 「한국에서의 학살」(1951)로 그 계보를 이었으며, 20세기 최대의 반전(反戰) 그림인 「게르니카」(1937) 역시 이 언덕에서 출발했다.
왜 화가들은 자꾸 이 언덕으로 돌아왔을까. 고야가 발견한 것이 특정한 하룻밤의 사건이 아니라, 근대 폭력의 구조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얼굴을 지운 조직이 얼굴 가진 개인을 대량으로 처리하는 방식 말이다. 훗날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법정에서 이 구조를 다시 만난다. 수백만을 죽음으로 보낸 아이히만이 괴물이 아니라 그저 성실한 관료였다는 사실, 그가 저지른 것은 '생각하지 않음'이었다는 관찰이 그것이다(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963).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명령을 처리로 바꾸는 순간 누구든 저 총살대의 병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그림은 낡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화면 너머의 얼굴을 지우며 산다. 뉴스 속 사망자 숫자, 통계로 처리되는 재난, 이름 대신 사건번호로 불리는 사람들. 얼굴을 지우면 마음이 편해진다. 고야는 바로 그 편안함을 거부하라고, 흰옷 남자의 눈을 우리 정면에 들이민다. 저 눈과 마주친 이상, 우리는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다.
그림 앞에 서는 일은 결국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다. 그리고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윤리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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