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나 아렌트가 1961년 예루살렘에서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하며 '악의 평범성' 개념을 형성해가는 과정을 가상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역사적 사실에 문학적 상상력을 더해 아렌트의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유리 상자 안에 앉아 있는 그 남자는 보통이었다. 놀라울 정도로 평범했다. 한나 아렌트는 재판정 뒤쪽에서 그를 관찰했다. 아돌프 아이히만. 유대인 600만 명을 죽음으로 내몬 수송 책임자. 그녀가 상상했던 괴물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마주한 것은 중년의, 다소 왜소한, 안경을 쓴 평범한 남자였다.
"피고인은 증언대로 나와주십시오."
법정의 긴장감은 목을 조여왔다. 아이히만은 기계적으로 일어나 증언대로 걸어갔다. 그의 움직임에는 죄책감도, 후회도 없었다. 단지 공무원처럼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뿐이었다.
그는 말했다. "저는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아렌트는 펜을 들고 노트에 적었다. '이것이 전체주의의 진정한 공포인가?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사고를 멈추는 순간?'
재판장이 물었다. "당신은 자신의 행동이 수백만 명의 죽음으로 이어질 것을 알고 있었습니까?"
아이히만은 안경을 고쳐 쓰며 대답했다. "저는 규칙을 지키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것이 제 의무였습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예루살렘의 햇빛이 법정의 먼지를 비추었다. 아렌트는 그 빛 속에서 솟아오르는 생각을 느꼈다. 악이란 항상 악마적인 것이 아니라, 때로는 생각의 부재, 사고 중단의 결과일 수 있다는 깨달음.
오후 재판에서, 검사는 아이히만에게 유대인 어린이들의 죽음에 대해 질문했다. "당신은 그들이 죽음으로 향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까?"
아이히만은 다시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저는 수송을 담당했습니다.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제 관할이 아니었습니다."
아렌트는 사고의 부재, 판단의 중단이 얼마나 깊은 악을 낳을 수 있는지 그 순간 명확히 보았다. 이것은 단순한 무지가 아니었다. 의도적인 사고 중단이었다.
밤이 깊어갔다. 호텔 방에서 아렌트는 타자기 앞에 앉았다. 창밖으로 예루살렘의 불빛이 흩어져 있었다. 그녀는 타자기 키를 눌렀다.
"우리가 마주한 것은 새로운 형태의 악이다. 심오한 악의가 아닌,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평범함에서 비롯된 악."
그녀의 손가락이 잠시 멈췄다. 이 개념이 가져올 논쟁을 예상했다. 아이히만을 악마화하는 것이 더 쉬울 테니까. 하지만 진실은 더 복잡했다. 더 불편했다.
몇 주 후, 재판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아렌트는 이제 확신했다. 아이히만은 사디스트가 아니었다. 그는 유대인들을 증오하지도 않았다. 그는 단지 자신의 경력을 위해, 승진을 위해, 인정받기 위해 명령을 따랐을 뿐이었다.
아렌트는 마지막 문장을 적었다. "악의 평범성은 우리에게 경고한다.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말라. 질문하는 것을 멈추지 말라. 우리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성찰하는 것을 멈추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는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