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 철학의 지층과 고원들
이 강의는 난해한 것으로 평가되는 들뢰즈의 철학에 접근할 수 있는 분명하고 유효한 길을 제시할 것이다. 다루는 텍스트들은 주로 초, 중, 후기에 걸친 들뢰즈의 전 시기의 저작들이다. 이 여정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들뢰즈가 사상적 고투를 통해 철학과 삶에서 무엇을 새롭게 열어 나가려고 했는지, 그 핵심을 분명하게 그려내 보려 한다.
수강료 : 49,000원 (적립5% : 최대2,450 원)
강사 : 조정환
구성 : 총 14강
교재 : 강의록 제공
수강 기간 : 6개월
지원사항 :
총 10명 참여
 
윤*미 님
김*정 님
이*민 님

이 강의는 난해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들뢰즈의 철학에 접근할 수 있는 분명하고도 유효한 길을 제시할 것이다. 다루는 텍스트들은 주로 초, 중, 후기에 걸친 들뢰즈의 전 시기의 저작들이다. 이 저작들 속에서 들뢰즈는 잠재성과 현실성을 두 층으로 하는 자신의 독특한 존재론과 표현개념을 일관되게 정립하고 이 지층론적 사유에 기초하여 기호, 의미, 감각 등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후기의 사회철학과 정치철학에서 이 지층론적 사유는 다채롭고 자유로운 고원의 사상으로 발전된다. 이 여정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들뢰즈가 사상적 고투를 통해 철학과 삶에서 무엇을 새롭게 열어 나가려고 했는지, 그 핵심을 분명하게 그려내 보려고 한다.

 


들뢰즈는 1925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들뢰즈에게는 특별하다 할 사건이 없다. 굳이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면 1995년에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죽었다는 얘기정도. 95년도에 아파트에서 투신자살을 하고 나서, 언론에서는 왜 죽었는가, 왜 하필 자살을 했는가 하는, 들뢰즈의 죽음에 대해 그의 삶 보다 더 많이 이야기 했다.
오늘날 우리나라 철학계에 있어서 들뢰즈가 하나의 유행인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들뢰즈를 비난하는 사람들 또한 만만치 않다. ‘안티 들뢰즈’에 대한 이야기에는 들뢰즈가 철학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더 이상 생각을 발전시킬 수가 없었다는 식의 비난과 한편으로는 센세이셜한 것을 좋아하는 철학자로서 뭔가 주목을 끌기 위한 연기를 했다는 소문이 있다.

 

들뢰즈는 1991년경 이후로, 적극적인 집필 작업이라거나 사회활동을 하기가 어려웠었고, 80년대 말에 텔레비전 방송에서 영화에 관한 프로그램을 조금 진행한 것이 사회적 활동의 거의 마지막이었다. 90년대에 들어서는 가타리와 함께『철학이란 무엇인가』를 펴내, 자신의 철학사상에 대한 총정리를 했다. 그 이후로 ‘맑스의 위대함’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지는 못했다. 들뢰즈 최후의 유작에 대한 소문들은 많이 돌았지만, ‘맑스의 위대함’은 들뢰즈가 좀 더 자신에게 힘이 있다면, ‘맑스의 위대함’이라는 책을 써보고 싶다는 수필형식의 짧은 글모음이었을 뿐, 실질적으로 원고로 남아 있는 것은 없다. 그런데 원고가 있다라는 소문이 많이 돌았고, 그것이 많은 사람들한테 주판 이전의 원고로 읽혔다라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지금까지는 그 모든 것들이 소문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는 들뢰즈가 갖고 있는 어떻게 보면 이중적 취급, 즉 프랑스 주류 철학계에서는 계속 외부로 밀쳐지고, 왜 한국이나, 일본 등에서는 굉장히 영향력 있는 철학가로 남아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프랑스의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파리 고등사범과 같은 일류대학을 나온 것에 반해 들뢰즈는 별로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 프랑스 사회의 엘리트주의를 생각해 볼 때, 8대학 출신과 고등사범 출신들의 격하가 심해 들뢰즈는 사망 직후 프랑스에서 그 존재성이 희미해졌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들뢰즈가 획득한 영향력은 다른 어떤 외부적인 것들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닌, 전적으로 사유의 힘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된다.

 

들뢰즈는 존재론에서 잠재성과 현실성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이 말이 수수께끼 같은 말이고 또 사람마다 해석하는 방식이 다르다. 잠재성과 현실성이라는 개념은 그 자체가 우리가 새롭게 끊임없이 해석해 냄으로써 우리 삶에 도움이 되게끔 만들어 나가야 할 그래서 해석 그 자체가 개념의 창조 과정이 되어야 할 그러한 것이다.

‘A는 A다’ 라는 정의가 아니라, 잠재성과 현실성이란 개념을 더듬어 가면서 ‘이건 뭐지?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저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어떤 효과가 나나타고, 저렇게 생각해보면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가 하는 해석과 의미의 다양성을 열어 놓은 것이다. 우리가 생각할 때 마다 개념 자체가 변이되고 달라지는 것이 바로 들뢰즈 철학의 핵심인 것이다.

 

들뢰즈를 이해하기란 사실 쉬울 수도 있는 문제다. 이유는, 들뢰즈의 철학사상 중 지층과 고원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그 중 지층이라는 개념이 들뢰즈의 거의 전 저작들에서 반복적으로 거론되기 때문이다.

그의 사상은 3개의 단층들로 이루어 졌다. 들뢰즈 철학을 이해하기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이 3개의 층을 확인하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층들의 변주를 이해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베르그손 같은 경우에도 역원뿔형의 기본 도식이 있다.

이 도식은 기본적으로 성층의 구도로 이루어져 있다. S가 현재라고 하면, 이 현재의 지점이 액추얼 한 것이고, AB 이 부분이 버추얼한 것이다. 이 버추얼한 것은 아주 깊은 곳이고, 이 존재론적 층위는 한정이 없는 무한히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인데, 편이 상 우리가 여기에 표시한 것이다. A에서 A2부분으로 수축되어가는 과정이 있고, 이 가운데 층위가 하나 형성이 되는 것이다. 『차이와 반복』에서는 AB를 이념이라고 부른다. A1B1과 A2B2를 강도라고 부르고, S를 개체라고 한다. 그런데 『베르그손주의』에서는 AB를 기억, A1B1과 A2B2를 회상으로, S는 현재의 접점이라고 이야기한다.
어떻게 보면 도식은 상당히 간단한 것이다. 그런데 이 도식이『베르그손주의』와『차이와 반복』에만 적용된 것이 아니라, 들뢰즈의 모든 책에서 이 도식이 그대로 적용이 되고 있다. 즉, 크게 보면 버추얼한 것과 액추얼한 것은 이원론이고, 그 이원론은 이 강도의 장이라고 하는 초원론적 장을 경유하기 때문에 3층으로 갈라지고, 이것들은 다시 일회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기본적으로. 셋으로 갈라진 이것은 두 개의 표현이며, 이 두 개라는 것은 하나의 표현인 것이다.

 

베르그송주의를 우리는 이원론적 일원론이라고 했다. 두 개의 갈라지는 하나. 그래서 일원론적 이원론일수도 있고, 이원론적 일원론일수도 있는데, 이원론적 일원론에 더 방점이 찍힐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회적인 것들이 두 개로 갈라지고, 3층으로 나누어지는 이 과정, 이러한 변주들은 동일한 패턴의 반복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생성해 가면서 창조적인 작업으로 나타나게 된다.

기억, 회상, 현재의 접점은 생명과 물질이라고 하는 두 이름으로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럴 때는 이원론으로 되는 것이다. 그러나 생명과 물질의 이 이원론은 사실 생명이라고 하는 단일한 것이 폭발력을 가지고 쏘아지긴 했지만, 점점 속도가 저하되면서 응고되는 과정에서 하나의 물질로 나타난다고 보기 때문에 결국은 일원적인 것이다.

 
제1강 지속, 기억, 생명 - 베르그송 주의 (1) 중에서
제7강 의미의 논리 중에서
제13강 토론 및 정리(1) 중에서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_F.엥겔스
『감각의 논리』_들뢰즈
『겸손한 목격자』_다나 J. 해러웨이
『광기의 역사』_푸코
『광염 소나타』_김동인
『국가』_플라톤
『니체와 철학』_들뢰즈
『들뢰즈 사상의 진화』_마이클 하트
『들뢰즈-맑스주의』_니콜래스 쏘번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_칼 마르크스
『마주침의 유물론』_루이 알튀세르
『맑스의 위대함』_들뢰즈
『물질과 기억』_베르그손
『베르그송주의』_들뢰즈
『순수이성 비판』_칸트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_들뢰즈
『스피노자의 뇌』_들뢰즈
『시네마 Ⅰ, Ⅱ』_들뢰즈
『신학-정치론』_스피노자
『실천이성 비판』_칸트
『앙띠 오이디푸스』_들뢰즈
『에티카』_스피노자
『의미의 논리』_들뢰즈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_베르그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_마르셀 프루스트
『주름』_들뢰즈
『차이와 반복』_들뢰즈
『창조적 진화』_베르그손
『천개의 고원』_들뢰즈
『철학은 무엇인』_들뢰즈
『카프카』_들뢰즈
『판단력 비판』_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