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X철학
  • 『안티고네』
  • 죽은 자를 묻을 권리 — 법·양심·저항의 철학
  • 소포클레스

  • 1. 오빠의 시신 앞에서

    왕의 명령은 분명했다.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은 매장해서는 안 된다. 들판에 내버려 두어 새와 짐승이 뜯어 먹게 하라. 이것은 법이다. 어기는 자는 죽는다.

    안티고네는 이 명령을 듣고 언니 이스메네에게 말한다. 나는 오빠를 묻겠다. 함께 하겠느냐. 이스메네는 거절한다. 법을 어길 수는 없다. 우리는 여자이고, 약하고, 혼자다.

    안티고네는 혼자 간다.

    소포클레스(Sophocles, 기원전 496~406경)가 기원전 441년경 아테네 시민들 앞에서 초연한 이 비극은 단순한 가족애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근원적인 철학적 물음을 던진다. 인간이 만든 법이 신이 명한 법과 충돌할 때, 우리는 어디에 복종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 선택의 대가는 무엇인가.

    2,4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물음은 살아 있다.


    2. 두 법 사이에서 — 자연법과 실정법의 충돌

    안티고네가 크레온에게 맞서며 하는 말은 서양 철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 중 하나다. "당신의 명령은 제우스께서 내리신 것이 아닙니다. 지하의 신들과 함께 사는 정의의 여신도 인간들 사이에 그런 법을 정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신의 포고령이 신들의 확고하고 불문의 법률을 무시할 만큼 강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안티고네가 말하는 '신들의 불문법'은 오늘날의 언어로 자연법(natural law)이다. 인간이 제정하기 이전에, 어떤 입법자도 없이, 이미 존재하는 법. 죽은 자를 묻어주어야 한다는 의무, 혈육을 버리지 않는다는 도리, 신성한 것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경계. 이것들은 어떤 왕도 폐지할 수 없는 법이라고 안티고네는 주장한다.

    반면 크레온이 내세우는 법은 실정법(positive law)이다. 국가가 제정한 법, 주권자의 명령, 공동체의 질서를 위해 만들어진 규범. 크레온은 폴리네이케스가 조국을 배신하고 외적을 끌어들인 반역자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매장의 예우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판단한다. 국가의 존립을 위협한 자를 국가가 처벌하는 것은 정당하다.

    두 법 모두 자신의 논리를 갖는다. 그리고 두 법은 충돌한다.

    이 충돌을 철학적으로 가장 날카롭게 분석한 것이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의 『정신현상학』(Phänomenologie des Geistes, 1807)이다. 헤겔은 안티고네를 단순히 인간법 대 신법의 대립으로 읽지 않는다. 그는 이 비극을 인류(Sittlichkeit, 인륜)의 두 계기, 즉 가족의 원리와 국가의 원리가 맞부딪히는 장면으로 해석한다. 가족은 개인을 그 개별성 그대로 사랑하고 보호한다. 국가는 개인을 보편적 시민으로서, 공동체의 규칙 안에서 규율한다. 안티고네는 가족의 논리를, 크레온은 국가의 논리를 각각 극단까지 밀어붙인다. 그리고 헤겔에게 비극이란 바로 이 두 정당한 원리가 서로를 파괴하는 사태다. 어느 쪽도 틀리지 않았기에, 어느 쪽도 살아남지 못한다.


    3. 크레온의 논리 — 국가는 왜 법 앞에 예외를 두지 않는가

    크레온을 단순한 독재자로 읽으면 안 된다. 그는 나름대로 일관된 정치철학을 가진 통치자다.

    크레온의 논리는 이렇다. 국가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 법이 지켜지지 않으면 국가는 무너진다. 법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따라서 법 앞에서는 친구도 적도, 가족도 반역자도 같은 기준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감정이 법보다 앞서는 순간, 법의 권위는 끝난다.

    이 논리는 낯설지 않다. 우리가 매일 마주치는 논리다. 원칙을 예외 없이 적용해야 공정하다. 특수한 사정을 봐주기 시작하면 기준이 무너진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문제는 크레온이 이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일 때 발생한다. 그는 반대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아들 하이몬이 시민들이 안티고네를 동정한다고 전하면, 크레온은 내가 시민들의 눈치를 봐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경고를 보내도 뇌물에 눈이 먼 예언자라고 일축한다. 자신의 판단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순간, 그는 교정 불가능한 권력이 된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전체주의의 기원』(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1951)에서 전체주의 권력의 핵심을 모든 반대 의견을 체계적으로 소거하는 능력에서 찾았다. 크레온은 전체주의자가 아니지만, 그의 권력 행사 방식은 이 방향을 향해 미끄러진다. 일인의 판단이 다수의 판단을 압도하고, 이의 제기 자체가 불충으로 취급될 때, 공동체의 자기 교정 능력은 마비된다. 결국 크레온을 파국으로 이끄는 것은 그의 악의가 아니라 그의 교정 불가능성이다.


    4. 안티고네의 저항 — 시민 불복종의 원형

    안티고네의 행위는 철학사에서 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의 원형으로 반복적으로 인용된다.

    시민 불복종의 고전적 정의는 19세기 미국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2)의 에세이 「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 1849)에서 나온다. 소로는 노예제를 지지하는 정부의 세금 납부를 거부하고 감옥에 갔다. 그의 논지는 단순하다. 정의롭지 않은 법에 복종하는 것은 불의에 공모하는 것이다. 양심이 법보다 우선한다.

    마틴 루서 킹(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은 「버밍엄 감옥에서 쓴 편지」(Letter from Birmingham Jail, 1963)에서 이것을 더 정교하게 다듬었다. 정당한 법과 부당한 법을 구별해야 한다. 부당한 법, 즉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거나 다수가 소수에게 일방적으로 부과하는 법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비폭력적으로, 처벌을 감수하면서 불복종하는 것이 도덕적 의무다.

    안티고네는 이 요건을 모두 충족한다. 그는 몰래 행동하지 않는다. 크레온에게 직접 자신이 했다고 밝힌다.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처벌을 피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그 행위를 선택한다.

    그런데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이 이상적인 시민 불복종의 모델과 한 가지 지점에서 미묘하게 어긋난다. 안티고네는 자신의 저항이 공동체를 설득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더 나은 법을 만들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는 그냥 오빠를 묻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것을 행한다. 그에게 저항은 전략이 아니라 본능이다. 의무가 아니라 존재의 양식이다.


    5. 이스메네의 선택 — 생존과 복종 사이의 현실주의

    이스메네는 비겁한 인물인가.

    흔히 그렇게 읽힌다. 언니 안티고네가 영웅적으로 저항할 때 이스메네는 물러선다. 극의 결말에서 그가 함께 죽겠다고 나설 때 안티고네는 냉정하게 거절한다. 이스메네는 비극의 주변부 인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스메네의 논리를 정면으로 들여다보면 다르게 보인다. "우리는 여자입니다. 남자들과 싸우도록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더 강한 자들에게 지배받고,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에도 복종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굴복이 아니다. 이것은 현실에 대한 냉정한 인식이다. 권력의 비대칭, 젠더의 제약, 혼자 저항했을 때의 효과 없음. 이스메네는 불의를 정당하다고 생각해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저항의 가능성을 계산하고 복종을 선택한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는 『존재와 무』(L'Être et le Néant, 1943)에서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았다(condamné à être libre)고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은 선택을 피할 수 없다. 복종 역시 하나의 선택이다. 이스메네는 저항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지, 선택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스메네의 선택을 비난할 수 있는가.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기를 선택하는 것, 감당할 수 없는 저항보다 지속 가능한 삶을 택하는 것—이것은 비겁인가 지혜인가. 소포클레스는 이 물음에 단순한 답을 주지 않는다. 두 자매는 같은 사랑에서 출발하여 다른 선택을 한다. 그리고 두 선택 모두 그 선택자를 파괴한다. 안티고네는 죽고, 이스메네는 혼자 남는다.


    6. 하이몬의 목소리 — 민주주의적 이성의 호소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은 안티고네의 약혼자다. 그는 아버지에게 안티고네의 처벌 결정을 재고해달라고 청한다. 그런데 그가 아버지 앞에서 하는 말이 흥미롭다.

    하이몬은 안티고네를 사랑하기 때문에 구해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테베 시민들이 수군거리고 있다고 전한다. 많은 사람들이 안티고네가 가장 명예로운 일을 했는데 처벌받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그리고 덧붙인다. "아버지, 다수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주십시오."

    이것은 단순한 여론 소개가 아니다. 이것은 군주에게 민의(民意)를 제시하는 행위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이몬은 한 인간의 판단이 절대적일 수 없다는 인식론적 겸손을 요구한다. "사람이 혼자서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공허한 일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기원전 384~322)는 『정치학』(Politica)에서 군주정보다 공화정이 우월할 수 있는 근거 중 하나로 집합적 판단의 우수성을 들었다. 한 사람의 탁월한 판단보다 여럿의 평균적 판단이 더 많은 오류를 걸러낼 수 있다는 것. 하이몬이 아버지에게 요청하는 것은 정확히 이것이다. 혼자 결정하지 말고, 들어달라.

    크레온은 듣지 않는다. 그리고 파국이 온다. 소포클레스는 이것을 통해 하나의 정치적 메시지를 극 안에 새긴다. 반론을 차단하는 권력은 자기 파괴의 씨앗을 그 안에 품는다.


    7. 신탁과 운명 —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그리스 비극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적 긴장이 있다. 자유의지와 운명의 문제.

    안티고네의 집안은 저주받은 가문이다. 아버지 오이디푸스는 신탁이 예언한 대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비극적 왕이었다. 오이디푸스가 몰락한 뒤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는 서로 싸우다 함께 죽었다. 안티고네는 이 파탄 난 가문의 딸이다. 그는 처음부터 비극을 운명으로 타고났다.

    그렇다면 안티고네의 선택은 자유로운 선택인가, 아니면 운명의 실현인가. 그는 저항을 선택했는가, 아니면 저항하도록 이미 정해져 있었는가.

    이 물음은 그리스 비극의 핵심 긴장이다. 오이디푸스는 신탁에서 벗어나려 했기 때문에 오히려 신탁을 실현했다. 모르고 저지른 일이 가장 큰 죄가 되었다. 의도와 결과 사이의 이 아찔한 간극이 그리스 비극을 단순한 권선징악과 구별한다.

    현대 철학은 이 문제를 다른 언어로 다시 묻는다. 구조결정론(structuralism) 대 주체의 자유. 우리가 자신이라고 부르는 것이 얼마나 사회적·역사적·생물학적 조건의 산물인가.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 1918~1990)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Ideological State Apparatuses)의 개념을 통해, 우리가 자유롭게 행동한다고 믿는 순간조차 이미 이데올로기가 우리를 호명(hailing)하고 있다고 주장했다(『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 1970). 그렇다면 안티고네가 신들의 법을 따른다고 믿으며 행동할 때, 그것은 자율적 선택인가 아니면 신화적 이데올로기의 호명에 응답한 것인가.

    소포클레스는 이 물음을 해소하지 않는다. 비극은 바로 이 해소 불가능성 위에 세워진다.


    8. 테이레시아스의 경고 — 예언자는 왜 항상 늦는가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크레온에게 경고한다. 새들이 이상하게 날고, 제단에 불이 붙지 않는다. 신들이 노했다. 결정을 바꾸어라.

    크레온은 처음에 거부한다. 예언자가 뇌물을 받고 거짓말을 한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테이레시아스의 구체적 예언 앞에서 결국 마음이 흔들린다. 뒤늦게 안티고네를 구하러 간다. 이미 늦었다.

    테이레시아스라는 캐릭터는 그리스 비극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오이디푸스 왕』에서도 그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권력자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진실을 말하는 자와 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자 사이의 이 비극적 불일치.

    이것은 철학적으로 파레시아(parrhesia), 즉 담대한 진실 말하기의 문제다. 미셸 푸코는 말년의 강의에서 파레시아 개념을 상세히 분석했다(『담론과 진실』, Discourse and Truth, 1983~84). 파레시아스트(parrhesiastes), 즉 진실을 담대하게 말하는 자는 그 진실이 청자에게 불편하더라도, 자신에게 위험이 따르더라도 말한다. 테이레시아스는 이 파레시아스트의 전형이다. 눈먼 예언자가 보는 진실을, 눈 뜬 왕은 보지 못한다.

    권력은 진실을 듣기 어렵게 만든다. 권력 주변에는 듣고 싶은 말만 하는 사람들이 모인다. 왕이 거부하면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이다. 테이레시아스만이 위험을 감수하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말은, 항상, 너무 늦게 받아들여진다.


    9. 죽음의 선택 — 안티고네의 죽음은 승리인가 패배인가

    안티고네는 동굴 속에 산 채로 갇혀 죽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된다. 그는 그곳에서 스스로 목을 매 죽는다. 하이몬은 그의 시신 곁에서 자결한다. 하이몬의 어머니 에우리디케도 이 소식을 듣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안티고네의 죽음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한 가지 독법은 비극적 패배다. 그는 결국 크레온의 권력 앞에 죽었다. 법은 바뀌지 않았다. 그의 저항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다른 독법은 도덕적 승리다. 안티고네는 굴복하지 않았다. 크레온에게 무릎 꿇지 않았다. 그리고 극의 결말에서 파멸하는 것은 안티고네가 아니라 크레온이다. 아들을 잃고, 아내를 잃고, 텅 빈 왕좌에 남겨진 크레온이야말로 진정한 패자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도덕 형이상학 정초』(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1785)에서 도덕적 행위의 가치는 결과가 아니라 의무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정언명령(kategorischer Imperativ)은 결과와 무관하게 의무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이다. 안티고네의 행위는 이 칸트적 의미에서 순수하게 도덕적이다. 그는 성공할 것을 계산해서 저항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옳기 때문에 했다. 설령 죽더라도.

    그런데 안티고네 자신은 죽음 앞에서 흔들린다. 극 안에서 그는 자신의 운명을 비통해하고, 결혼도 아이도 갖지 못하고 죽는 것을 슬퍼한다. 영웅적 결단을 내린 자의 의연함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두려움과 슬픔이 그의 마지막 독백에 담겨 있다. 소포클레스는 안티고네를 관념의 화신이 아닌 살과 피를 가진 인간으로 그린다. 그것이 이 비극을 2,400년 후에도 우리의 가슴을 울리게 만드는 이유다.


    10. 지금 여기서 — 안티고네는 매일 태어난다

    안티고네는 고대 아테네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서 반복되는 이야기다.

    국가 권력이 법의 이름으로 부당한 것을 명령할 때, 그 명령에 양심으로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치 독일에서 유대인을 숨겨준 사람들, 군사독재 시절 금지된 책을 읽고 나눈 사람들, 오늘날 불의한 법에 맞서 광장에 서는 사람들. 이들은 모두 안티고네의 후손이다.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1956~)는 저서 『안티고네의 주장』(Antigone's Claim, 2000)에서 안티고네를 젠더와 친족 규범에 도전하는 퀴어적 주체로 재독해한다. 안티고네는 여성이 정치적 발언권을 갖지 못하는 공간에서 공적으로 말하고 행동한다. 그는 허용된 젠더 역할을 초과한다. 그리고 그 초과 자체가 기존 규범이 얼마나 자의적인지를 드러낸다.

    여기서 더 나아가 생각해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안티고네들이 있다. 공익제보자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 내부고발자들. 이들은 법을 어기는 자들이지만, 더 높은 법을 위해 법을 어긴다. 그리고 국가는 이들에게 크레온의 방식으로 응답한다. 법을 어겼으니 처벌한다.

    안티고네를 읽는다는 것은 이 물음과 정면으로 마주서는 것이다. 당신은 크레온인가, 안티고네인가. 아니면 이스메네인가. 어느 쪽도 틀린 답이 아니다. 하지만 어느 쪽을 선택하는가는 당신이 어떤 인간인지를 결정한다.

    법이 우리를 만드는가, 우리가 법을 만드는가. 소포클레스는 이 물음을 2,400년 전에 던졌다. 그리고 아직 우리는 대답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