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X철학
  • 『악의 꽃』
  • 아름다움은 왜 악에서 피어나는가 — 권태·심연·근대성의 철학
  • 샤를 보들레르

  • 1. 독자에게 고발장을 보내는 시인

    책은 독자를 고발하며 시작한다.

    "위선적인 독자여—나의 동류여—나의 형제여!(Hypocrite lecteur,—mon semblable,—mon frère!)"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1867)가 『악의 꽃』(Les Fleurs du Mal, 1857)의 서시(序詩) 「독자에게(Au Lecteur)」에서 던진 이 한 줄은 근대 문학의 역사를 바꾼 선언이다. 시인은 독자를 위로하거나 교훈을 주려 하지 않는다. 그는 독자가 자신과 다르지 않다고, 아니 정확히 같다고 말한다. 우리는 모두 악 앞에서 전율하면서도 그것에 끌리는 존재들이다.

    이 책은 출판 즉시 기소되었다. 1857년 8월, 프랑스 법원은 『악의 꽃』에 포함된 여섯 편의 시가 공중도덕과 종교를 해친다는 이유로 삭제 판결을 내렸다. 보들레르는 벌금형을 받았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재판이 이 책을 불멸의 고전으로 만들었다. 금지된 것은 욕망의 대상이 된다. 보들레르는 이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무엇이 이 시집을 위험하게 만들었는가. 단순히 에로티시즘이나 신성모독 때문이 아니다. 보들레르가 건드린 것은 더 근본적인 것이었다. 아름다움과 선함이 반드시 함께 간다는 믿음. 예술은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전제. 그는 이것을 정면으로 부수었다.

    여기서 시작한다.


    2. 권태라는 괴물 — 스플린과 이상

    보들레르 미학의 핵심 개념은 스플린(spleen)이다. 이것은 단순한 우울이 아니다.

    원래 spleen은 비장(脾臟)을 뜻하는 영어 단어다. 중세 유럽 의학은 비장이 우울한 체액을 생성하는 기관이라고 믿었다. 영어권에서 이 단어는 짜증, 분노, 울적함을 뜻하게 되었다. 보들레르는 이 단어를 프랑스어로 그대로 가져와, 근대인의 실존적 조건을 가리키는 철학적 개념으로 격상시켰다.

    『악의 꽃』 2부의 제목이 「스플린과 이상(Spleen et Idéal)」이다. 이 제목 자체가 하나의 변증법이다. 스플린은 현실에 짓눌린 존재의 권태와 혐오다. 이상(Idéal)은 그 현실을 탈출하려는 열망이다. 보들레르의 시들은 이 두 극 사이에서 진동한다.

    시 「스플린 IV(Spleen IV)」에서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희망은 패배한 박쥐처럼 벽에 부딪히고, 앙갚음하려는 욕망 없이 단두대의 도끼가 내리꽂힌다고. 스플린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상태, 욕망의 욕망마저 사라진 상태다. 이것은 단순한 슬픔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 슬픔에는 그것을 벗어나려는 에너지라도 있다. 스플린에는 그것조차 없다.

    이 개념을 철학적으로 가장 잘 해명한 것은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1813~1855)의 실존 철학이다. 키르케고르는 『이것이냐 저것이냐』(Enten-Eller, 1843)에서 미적 실존 단계를 분석한다.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미적 인간은 필연적으로 권태에 도달한다. 쾌락은 반복될수록 강도를 잃는다. 더 강한 자극을 찾아야 하지만, 그 자극도 곧 식는다. 이 악순환의 끝이 바로 절망이고, 보들레르의 스플린이다.

    그러나 보들레르는 키르케고르처럼 이 상태에서 신앙으로 도약하지 않는다. 그는 그 심연 안에 머무르면서 아름다움을 발굴한다. 이것이 보들레르의 급진성이다.


    3. 악으로부터 꽃을 — 예술과 추(醜)의 철학

    제목 자체가 역설이다. 악의 꽃(Les Fleurs du Mal). 꽃은 아름답고 선한 것의 상징이다. 악(le Mal)은 도덕적으로 나쁜 것, 고통, 질병을 동시에 의미한다. 그렇다면 악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보들레르 이전의 미학은 대체로 아름다움과 선함을 동일시했다. 플라톤(Platon, 기원전 427~347)의 전통에서 참된 아름다움은 선함과 진리와 함께 이데아의 영역에 속한다. 근대 신고전주의 미학도 이 원칙을 이어받았다. 예술은 도덕적으로 고양된 주제를 다루어야 한다.

    보들레르는 이것을 뒤집었다. 아름다움은 선에서만 오지 않는다. 악에서도, 추함에서도, 죽음에서도, 오물에서도 아름다움은 추출될 수 있다. 시 「腐屍(Une Charogne, 1857)」에서 화자는 연인과 산책하다 길에서 썩어가는 짐승의 사체를 발견하고 그것을 묘사한다. 구더기가 끓고 악취가 진동하는 그 부패하는 몸을. 그리고 그 묘사는 섬뜩할 만큼 아름답다.

    이것은 단순한 충격 효과가 아니다. 보들레르는 이 시를 통해 아름다움의 근거를 해체한다. 아름다움은 대상의 속성이 아니라 변환의 능력이다. 추한 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그것이 예술이다.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은 『미학 강의』(Vorlesungen über die Ästhetik, 1835~38)에서 예술의 임무를 이념의 감각적 현현(顯現)으로 보았다. 그러나 보들레르가 현현시키는 것은 헤겔적 이념이 아니다. 그것은 근대 도시의 심연, 인간 실존의 부패와 욕망과 죽음이다. 보들레르는 헤겔의 틀을 가져오되 그 내용을 급진적으로 대체했다.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가 훗날 『비극의 탄생』(Die Geburt der Tragödie, 1872)에서 제시한 디오니소스적 원리가 여기서 선취된다.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고통과 황홀경, 파괴와 창조가 동시에 일어나는 힘이다. 아폴론적 조화와 질서만으로는 예술의 깊이에 도달할 수 없다. 보들레르의 시들은 바로 이 디오니소스적 심연에서 길어 올린 것들이다.


    4. 근대 도시와 산책자 — 파리라는 지옥

    보들레르가 살았던 19세기 중반 파리는 극적인 변화를 겪고 있었다. 오스만(Georges-Eugène Haussmann, 1809~1891) 남작의 대규모 도시 재개발로 중세의 골목들이 허물어지고 대로가 뚫렸다. 산업화가 가속되었고, 노동자 계급이 도시로 밀려들었으며, 빈부 격차가 극적으로 벌어졌다. 부르주아의 번영과 빈민의 절망이 같은 거리 위에서 공존했다.

    보들레르는 이 도시를 걸으면서 시를 썼다. 그는 플라뇌르(flâneur), 즉 도시 산책자였다. 목적 없이 도시를 배회하며 거리의 군중을 관찰하는 인물. 카페, 홍등가, 시장, 공원, 빈민가—보들레르의 시들은 이 모든 장소를 배경으로 한다.

    발터 베냐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아케이드 프로젝트』(Das Passagen-Werk, 1927~1940, 미완)에서 보들레르를 근대성(modernity)의 핵심 증인으로 분석했다. 베냐민에게 보들레르의 플라뇌르는 단순한 한량이 아니다. 그는 상품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도시를 탐색하는 탐정이고, 새로운 도시 경험의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안테나다.

    시 「군중(Les Foules)」에서 보들레르는 이렇게 쓴다. 군중 속에 목욕하는 것은 시인에게 최고의 쾌락이라고. 시인은 군중 속에서 자신을 잃으면서 동시에 모든 타인을 자신 안에 품는다. 이것은 19세기 낭만주의 시인들이 꿈꾸던 자연 속의 고독과 정반대다. 보들레르의 시인은 자연이 아니라 도시 속에서, 고독이 아니라 군중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이 새로운 도시 경험은 기존의 미학 언어로는 포착되지 않았다. 보들레르는 새로운 언어를 발명해야 했다. 그리고 그 언어가 근대 시의 출발점이 되었다.


    5. 상응(correspondances) — 감각들이 서로 말을 건다

    보들레르 미학의 또 다른 핵심 개념은 상응(correspondances)이다. 이것은 그의 시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소네트의 제목이기도 하다.

    시 「상응(Correspondances)」은 이렇게 시작한다. 자연은 하나의 신전이고, 그 기둥들은 때로 혼란스러운 말을 내뿜는다. 인간은 상징의 숲을 지나며, 그 숲은 친밀한 눈길로 인간을 바라본다.

    상응의 개념은 두 층위로 작동한다. 첫째, 수직적 상응이다. 지상의 사물들은 그 너머의 초월적 세계와 조응한다. 향기, 색채, 소리는 각각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더 높은 실재의 상징이다. 이것은 신플라톤주의적 전통이며, 스웨덴보리(Emanuel Swedenborg, 1688~1772)의 신비주의 철학에서도 영향을 받은 것이다.

    둘째, 수평적 상응이다. 감각들은 서로 교환 가능하다. 향기가 색깔처럼 느껴지고, 소리가 촉감처럼 작용한다. 이것이 공감각(synesthesia)이다. 보들레르는 "어떤 향기들은 어린아이 살결처럼 신선하고, 오보에처럼 부드러우며, 초원처럼 푸르다"고 썼다. 후각, 촉각, 청각, 시각이 하나로 용해된다.

    이 공감각적 상응의 철학은 이후 상징주의 운동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폴 베를렌(Paul Verlaine, 1844~1896), 아르튀르 랭보(Arthur Rimbaud, 1854~1891), 스테판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 1842~1898)로 이어지는 프랑스 상징주의는 보들레르가 열어놓은 문을 통해 들어왔다.

    철학적으로 이 개념은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미학, 특히 『판단력 비판』(Kritik der Urteilskraft, 1790)의 숭고(sublime) 개념과 대화한다. 칸트에게 숭고는 감각을 초월하는 이성의 능력이 드러나는 경험이다. 보들레르에게 상응은 감각들이 서로 침투하며 감각 너머를 암시하는 경험이다. 칸트가 이성을 통해 초월로 가려 했다면, 보들레르는 감각의 극한을 통해 그곳에 닿으려 했다.


    6. 사탄의 미학 — 악의 낭만화인가, 신학적 도발인가

    『악의 꽃』에서 가장 논란을 일으킨 부분은 사탄에 관한 시들이다. 「사탄의 성도들에게 올리는 기도(Les Litanies de Satan)」에서 보들레르는 사탄을 찬미한다. "오 가장 지혜롭고 아름다운 천사여, 운명이 배반한 신이여!"

    이것은 신성모독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

    보들레르의 사탄주의는 단순한 악의 예찬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역신학(counter-theology)이다. 기독교 전통에서 사탄은 신에게 반란을 일으킨 존재, 타락한 천사다. 그런데 보들레르에게 사탄은 이 타락 속에서 어떤 고귀함을 갖는다. 사탄은 굴복하지 않는 자,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온몸으로 살아내는 자다.

    이 해석에는 낭만주의 전통이 깔려 있다.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의 『실락원』(Paradise Lost, 1667)에서 사탄은 때로 비극적 영웅의 면모를 지닌다.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는 밀턴이 자신도 모르게 사탄 편에서 썼다고 말했다. 낭만주의 시인들, 바이런(Lord Byron, 1788~1824)이나 퍼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 1792~1822)는 사탄을 자유와 반항의 상징으로 수용했다.

    보들레르는 이 전통을 계승하지만 더 나아간다. 그에게 사탄은 근대적 예술가의 알레고리다. 창조적 인간은 신의 질서에 도전해야 한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않고, 아름다움을 위해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그리고 그 대가로 추방과 저주를 받는다. 보들레르 자신이 그 삶을 살았다.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Hegel)의 변증법으로 읽으면, 보들레르의 사탄은 부정(negation)의 원리다. 기존 질서에 대한 부정이 없으면 새로운 종합이 없다. 예술은 이 부정의 힘에서 나온다. 안전하고 도덕적인 예술은 새로운 것을 낳지 못한다.


    7. 여성과 에로스 — 잔느 뒤발과 욕망의 이중성

    보들레르의 시들에는 여러 여성이 등장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인물은 잔느 뒤발(Jeanne Duval, 1820경~1862경)이다. 아이티 출신의 혼혈 여성인 그녀는 보들레르와 거의 20년 가까이 격렬하고 고통스러운 관계를 이어갔다. 보들레르는 그녀에게 매혹되었고, 그녀에게 모든 것을 탕진했으며, 그녀를 원망했고, 그녀 없이는 살 수 없었다.

    「검은 비너스(La Vénus noire)」 연작으로 불리는 잔느 뒤발 관련 시들은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뒤엉킨 욕망의 언어로 가득하다. 시 「이국의 향기(Parfum exotique)」에서 화자는 연인의 풍만한 가슴에 눈을 감고 눕는다. 그 체취에서 이국의 섬이 펼쳐지고, 태양이 타오르며, 나무들이 향기를 발산한다. 관능적 경험이 상상적 여행으로 변환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의 언어로 이 시들을 읽으면, 에로스(삶의 충동)와 타나토스(죽음 충동)의 역동이 선명하게 보인다. 프로이트는 『쾌락 원칙을 넘어서』(Jenseits des Lustprinzips, 1920)에서 인간 심리에 쾌락을 향하는 에로스와 파괴와 소멸을 향하는 타나토스가 공존한다고 주장했다. 보들레르의 시에서 사랑은 항상 죽음 옆에 있다. 연인의 몸은 아름답지만 곧 부패할 육체다. 쾌락은 최고조에서 소멸을 암시한다.

    또한 보들레르의 여성 묘사에는 당대의 인종주의적 시선이 개입해 있다는 비판도 정당하다. 잔느 뒤발을 이국적 타자로 대상화하는 방식은 19세기 유럽 식민주의의 시선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 1935~2003)가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1978)에서 분석한 서양의 타자 구성 방식—이국을 에로틱하고 신비롭고 위험하게 상상하는—이 보들레르의 시편에도 작동한다. 위대한 시인도 자신이 속한 시대의 편견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8. 우울과 이상 사이 — 보들레르와 실존주의

    보들레르는 실존주의보다 한 세기 앞에 살았지만, 그의 시들은 실존주의 철학이 체계화한 문제들을 이미 경험적으로 탐색하고 있었다.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는 1947년 보들레르론을 썼다. 거기서 그는 보들레르를 혹독하게 비판했다. 보들레르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근원적으로 바꾸려 하지 않고 그 안에서 몸부림쳤다는 것이다. 그는 자유를 원했지만 그 자유의 대가를 지불하길 거부했다. 사르트르의 보들레르는 나쁜 믿음(bad faith, mauvaise foi)의 전형이다.

    그러나 이 비판은 지나치게 가혹하다. 보들레르는 자신의 불가능한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시 「여행(Le Voyage)」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끝난다. "죽음이여, 늙은 선장이여, 때가 왔다! 닻을 올리자! 이 나라가 지겹다. 죽음이여, 항해하자!" 이것은 체념인가, 아니면 새로운 미지를 향한 도전인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의 언어로 읽으면 다르게 보인다. 카뮈는 『시지프 신화』(Le Mythe de Sisyphe, 1942)에서 부조리한 세계에서 자살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탐구했다. 부조리를 직시하면서도 그것에 굴복하지 않는 것. 시지프는 바위를 정상까지 굴려 올리고, 바위는 다시 굴러 내려온다. 그러나 카뮈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고 말한다.

    보들레르의 스플린과 이상의 진동은 이 카뮈적 부조리와 정확히 공명한다. 이상은 있지만 도달할 수 없다. 현실은 견딜 수 없지만 탈출할 수도 없다. 그 불가능한 상황 안에서 시를 쓰는 것—그것이 보들레르의 저항 방식이었다.


    9. 근대성의 발명가 — 보들레르가 열어놓은 문

    보들레르 자신이 「현대 생활의 화가(Le Peintre de la vie moderne)」(1863)라는 에세이에서 근대성(modernité)이라는 개념을 정식화했다. 근대성이란 "일시적인 것, 순간적인 것, 우발적인 것"이다. 예술은 영원한 것만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순간의 파리, 지금 이 거리의 군중, 지금 이 찰나의 빛—이것들이 예술의 대상이다.

    이것은 당시로서는 급진적 선언이었다. 고전주의 미학은 시간을 초월하는 보편성을 추구했다. 보들레르는 시간 안에, 역사 안에, 도시의 유동성 안에 예술의 근거를 두었다.

    이 선언은 이후 예술사의 방향을 바꾸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보들레르의 이 원칙을 회화로 실천했다.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1832~1883)는 보들레르의 절친한 친구였고, 마네의 그림들은 보들레르적 근대성의 시각적 번역이다. 문학에서는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1821~1880), 에밀 졸라(Émile Zola, 1840~1902)가 각자의 방식으로 이 근대성의 감수성을 이어받았다.

    20세기에는 T. S. 엘리엇(T. S. Eliot, 1888~1965)이 보들레르를 근대 시의 창시자로 공언했다. 엘리엇의 「황무지(The Waste Land, 1922)」는 보들레르의 「군중」에서 직접 가져온 구절을 포함한다. "군중이 런던 브리지 위로 흘러갔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음이 그토록 많이 망쳤으리라 생각지 못했다." 이 구절은 단테의 지옥과 보들레르의 파리 군중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10. 지금 여기서 — 스플린의 시대, 우리의 꽃

    보들레르가 살았던 1857년 파리와 2026년의 세계는 얼마나 다른가.

    겉으로는 전혀 다르다. 우리에게는 스마트폰이 있고, 소셜 미디어가 있고, 넷플릭스가 있다. 권태를 느낄 틈이 없을 만큼 자극이 넘쳐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보들레르가 진단한 스플린은 오늘날 더 만연해 있다. 심리학자들은 도파민 과잉 자극이 역설적으로 의욕 상실과 무감각을 낳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 많은 자극, 더 큰 권태. 보들레르의 공식이 여전히 작동한다.

    소셜 미디어 피드를 스크롤하는 행위는 보들레르적 플라뇌르의 디지털 버전이다. 목적 없이 도시를 배회하던 산책자가 이제 피드를 배회한다. 거리의 군중 대신 이미지의 군중이 있다. 거기서도 같은 감각이 생겨난다. 공허함과 매혹, 혐오와 흥미, 지루함과 열망.

    보들레르의 가장 중요한 유산은 예술과 도덕의 분리가 아니다. 그것은 보다 근본적인 것이다. 아름다움은 우리가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곳에만 있지 않다는 것. 고통 속에도, 추함 속에도,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것들 속에도 아름다움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능력이 예술이다.

    독자에게 고발장을 보내며 시작했던 그 시인은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자신의 심연을 본 적이 있는가. 그 심연 안에서 꽃을 찾으려 한 적이 있는가.

    그 물음 앞에서 우리는 여전히 "위선적인 독자, 나의 동류, 나의 형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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